오스트리아 규제기관 “통신사 인수합병, 소비자 요금인상으로 이어져”
KT 등 경쟁사 “섣부른 인수합병, 소비자 요금인상으로 직결” 우려
SK텔레콤 “보고서 일부만 발췌해 입맛에 맞게 재편” 반박

▲ 사진은 지난달 24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서울호텔에서 열린 ‘SKT-CJ헬로비전 인수합병’ 공청회 모습. <사진=시사위크>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통신사 간의 인수합병으로 인해 소비자의 이동통신요금이 두 배 가까이 뛰었다는 보고서가 발표돼 이목을 끌고 있다. 당장 국내의 경우,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를 두고 논란이 뜨거운 상황이어서 관심이 집중된다.

물론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합병은 이동통신사-방송사업자 간 합병으로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 업계에선 장기적으로는 시장 집중화에 따른 요금 인상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을 쏟아내며 맹공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어서 향후 파장이 주목된다.

◇ 오스트리아 규제당국 “통신사 인수합병, 소비자 요금 인상으로 이어져”

KT에 따르면 최근 오스트리아 방송통신규제기관(RTR)은 지난 3월 14일 보고서를 통해 “지난 2012년 오스트리아 이동통신시장 4위 사업자 ‘H3G(Hutchison Three Austria)’와 3위 사업자 ‘Orange Austria’ 간 인수합병의 영향을 평가한 결과, 2013년과 2014년에 걸쳐 당국의 예상치를 뛰어넘는 심각한 요금인상이 초래됐다”고 발표했다.

앞서 지난 2012년, 오스트리아 이동통신시장 4위 사업자 ‘H3G(Hutchison Three Austria)’는 3위 사업자 ‘Orange Austria’를 인수 합병했다. 당시 합병으로 인해 H3G는 T-Mobile과 2위 자리를 놓고 경쟁할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EU 반독점 당국은 사업자 수가 3개로 줄어드는 것에 따른 경쟁 약화와 요금 인상을 우려했지만, 보유 주파수(2.6GHz) 일부를 매각하고 10년간 네트워크 용량의 최대 30%에 해당하는 도매 접속을 최대 16개 MVNO에 제공하는 등의 조건을 달아 합병을 인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그러나 3년이 지난 후, 조건부 합병의 결과는 오스트리아 가계통신비 부담 급증으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 [표] 10개 유럽 국가와 오스트리아의 평균 신규 가입자 요금 비교 <출처=RTR, 제공=KT>

오스트리아 방송통신규제기관(RTR)이 3월 14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통신사 조건부 합병 이후 △스마트폰 이용자의 경우 요금이 50~90% 인상됐고 △데이터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는 ‘피처폰(일반 휴대전화)’ 이용자의 요금은 22~31% 인상된 것으로 조사됐다. 10개 유럽국가의 신규 스마트폰 가입자 요금 평균이 계속 하락 추세를 보이는 것에 반해, 오스트리아는 합병 이후인 2013년과 2014년 오히려 상승세를 보였다.

◇ RTR 보고서, 글로벌 통신업계 큰 관심

이 같은 오스트리아 규제 당국의 보고서는 글로벌 통신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업계에선 이번 보고서가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방송ㆍ통신기업 간 인수합병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적 권위의 경제전문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3월 14일 “유럽연합(EU) 반독점위원회가 오스트리아 규제 당국의 보고서에 주목하고 있으며, 영국 이동통신사 간의 합병 승인에도 ‘빨간불’이 켜졌다”고 보도했다. 4월로 예정된 최종 결정에서 EU가 합병을 불허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영국 4위 이통사인 ‘3UK(Hutchison Three UK)’는 3위 사업자인 ‘O2’를 105억파운드에 인수합병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며 현재 인가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인가되면 합병법인의 시장 점유율은 40% 이상으로 뛰어 오른다.

영국 유력지 ‘가디언’은 지난 2월 방송통신분야 규제기관인 ‘ofcom’의 Sharon White 의장이 “일반 소비자와 기업 고객의 가격이 인상되고 통신시장의 균형을 무너뜨릴 것”이라며 강력히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EU 당국은 2015년 덴마크 2위 이동통신사업자 텔레노르(Telenor)와 3위 텔리아소네라(Teliasonera) 의 인수합병도 불허한 바 있다. 인수합병으로 사업자 수가 줄어 소비자 선택권의 축소, 요금 인상, 혁신서비스 저해를 부를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 [표] 2011~2014년 유럽 각국의 스마트폰 이용자 요금 비교 <출처=RTR>

◇ SKT-CJ헬로비전 인수에도 영향 미칠까

국내에서는 인수 허가절차를 앞두고 있는 SK텔레콤에 관심이 집중된다. SK텔레콤은 CJ헬로비전에 대해 인수를 추진중이다. 업계에서는 이동통신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케이블 1위 사업자인 CJ헬로비전를 인수할 경우, 시장 지배력이 더욱 강화될 것을 지적하면서 강한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SK텔레콤이 케이블 1위 사업자인 CJ헬로비전의 가입자를 대상으로 유무선 결합상품 판매를 통해 가입자 확대에 나설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시장 집중화에 따른 요금 인상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통신업계에서는 유럽 규제 당국의 조건부 승인이 소비자 요금 인상을 막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국내 규제당국이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을 결코 가벼이 봐서는 안 될 이유”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대해 SK텔레콤 측은 “경쟁사에서 제기하는 사례는 이동통신사 간의 합병으로, 이번처럼 이동통신사-방송사업자의 합병이 아니라는 점에서 적절치 못한 사례”라는 지적이다.

SK텔레콤은 “해당 보고서는 오스트리아 이동통신 시장에 본격적으로 MVNO(알뜰폰, 이동통신 재판매)가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이전의 시장에 대해 분석한 것으로, 오히려 2015년 말 행한 가격 정책 덕택에 실제 요금은 합병 전 수준까지(2011년보다 10%더 낮은 수준) 떨어졌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경쟁사가 오스트리아 규제 기관 리포트 중 일부만 발췌해 입맛에 맞게 재편했다는 것이다.

▲ [표] 2011~2014년 유럽 각국의 비(非)스마트폰 이용자 요금 비교 <출처= RTR>

SK텔레콤은 특히, 이종간 합병의 경우 이미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 7건의 허가를 받은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SK텔레콤에 따르면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15일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가 미국 케이블 TV 3위 업체 차터가 2위 사업자 타임워너를 인수하며, 강력한 2위 사업자가 되는 딜에 대해 찬성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현재 1위 사업자는 컴캐스트인데 양강 구도 형성을 위해 FCC에서도 긍정적인 눈길로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SK텔레콤은 “한국은 해외와는 달리 유료방송 요금에 대해 정부의 직접적은 승인 절차를 거치는 바, 사업자의 인위적 요금인상 가능성은 없다”면서 “해외의 규제와 국내 규제 수준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동일하게 비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SK텔레콤은 당초 4월 1일을 목표로 CJ헬로비전 인수 합병을 추진했으나 정부의 인허가 심사가 길어지면서 계획된 일정을 맞추지 못하게 됐다. 심사 장기화로 SK텔레콤의 콘텐츠 투자계획 등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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