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오는 413일이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일인지는 알고 있지? 출근할 때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역 입구에서 지지자들이 정당과 후보자의 이름을 외치면서 한 표를 호소하는 모습들을 보면 선거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네. 하지만 난 솔직히 이번 선거에 별로 흥이 나지 않네. 왜냐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가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청년실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주요 정당들의 선거 공약에서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일세. 그나마 일반 유권자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원외 진보정당들인 녹색당과 노동당의 기본소득공약이 있어서 다행이라고나 말할까?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말인 기본소득(basic income)은 국가가 모든 사회구성원들에게 자산조사나 근로조건 등과 관계없이 일정액을 개인 단위로 지급하는 소득보장제도일세. 소득이나 재산이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일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또는 일을 하려는 의사가 있든 없든,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기 위한 장치로 서구에서는 오래 전부터 논의되었던 정책이네.
 
일도 하지 않는데 돈을 준다니 그런 정책이 가능하겠냐고? 물론 앞으로 많은 논의들이 있겠지. 하지만 이 제도가 좌파만의 어젠다가 아니라는 게 중요하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비난했던 토마스 모어나 토마스 페인 등이 먼저 기본소득을 생각했던 건 맞지만, 우파들도 필요성을 자주 거론하는 제도이거든.
 
예를 들면, 신자유주의 사상의 원조인 프리드리히 하이예크도 일정 수준의 기본소득을 모든 사람에게 보장하는 일, 달리 말해 스스로를 부양할 능력을 잃어도 일정한 선 이하로 생활수준이 떨어지지 않게 해주는 일, 이는 단순히 모든 사람을 위한 보호 차원을 떠나 위대한 사회의 한 요소로서 반드시 필요하다. 위대한 사회는 자신이 태어난 사회의 특정 집단에 대해 개인이 스스로의 문제 해결을 위해 이것저것 요구할 필요가 없는 사회라고 말한 적이 있었네. 물론 하이예크가 말하는 위대한 사회는 복지국가가 아니고 개인의 자유, 시장 원리, 법의 지배, 작은 정부 등 신자유주의 원리에 기반을 둔 사회야.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생활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충분한 대책을 세울 수 없을 때, “일정 수준의 부에 도달해서 모두를 부양할 능력이 있는 사회라면 보호를 제공할 수 있다는 거지.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도 1960년대에 모든 시민의 생계비를 보장하는 마이너스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제안했네. 정해진 최저 생계비보다 적게 버는 사람에게 그 차액을 국가보조금으로 메워주자고 주장했지. 만약 4인 가족에 2000만원까지 소득 공제가 되고 마이너스소득세율이 50퍼센트라면, 1000만원을 버는 사람은 정부로부터 모자라는 1000만원에 0.5를 곱한 500만원을 받아 소득이 1500만원이 되네. 소득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도 마이너스 과세 소득 대상이 2000만원이므로, 거기에 0.5를 곱한 1000만원을 정부로부터 받는 거지. 이렇게 마이너스 소득세는 어떤 사람의 소득이 기준선보다 낮을 때 그 중 일부를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 제도일세.
 
자기 규제적이고 자기 수정적이며 자기 충족적인 시장 메커니즘을 신봉하는 우파 경제학자들도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유가 뭘까? 무엇보다도 기술혁신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고용 없는 성장, 노동시장 내 이중구조 심화 등으로 노동과 소득을 연결시키는 케인즈주의 복지전략으로는 막을 수 없는 소득보장의 사각지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야. 게다가 기본소득이 자본주의 체제의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한 제도라는 것도 알고 있거든. 지금 세계 경제는 고용 시장의 위축과 불안, 그로인한 임금 정체와 하락 등으로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약화되어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있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이 확대되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소비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거지. 게다가 정보화와 자동화의 급격한 진전으로 기계가 노동자들을 계속 대체하고 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성원의 절대 다수가 구매력을 잃어버리면 그 체제 자체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는가?
 
지난 1월 스위스에서 현재의 산업적·기술적 국면을 ‘4차 산업혁명으로 규정한 제46차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된 미래고용보고서는 인공지능(AI)과 로봇공학,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3D 프린팅, 나노기술, 유전공학 분야에서의 기술 혁신으로 앞으로 5년간 전 세계에서 일자리 500만 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네. 인공지능 로봇 등의 발전으로 일자리 210만 개가 새로 생기고 710만 개가 사라진다는 거지. 단순노동을 요구하는 일자리들은 없어지고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일자리만 늘어난다는 거야. 지금도 전 세계가 청년 실업으로 고통 받고 있는데 점점 더 많은 일자리들이 사라질 것이라니그래서 클라우스 슈밥 WEF 회장은 고용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지 않는 한 정부는 항구적인 실업증가와 불평등, 소비감소에 따른 불황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네.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정부가 돈을 준다는 게 아직 낯설고, 잘못 운용되면 노동자들의 일하려는 의지를 감퇴시키고 노동시장 이탈을 촉진시켜 사회 전체의 생산력을 떨어트릴 것이라는 우려가 많은 기본소득이지만, 이제 우리 사회도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된 것 같네. 점점 악화되고 있는 일자리 문제를 계속 방치할 수는 없지. 기본소득은 스위스, 핀란드, 네덜란드, 미국 등에서도 이미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주제일세. 스위스에서는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위한 시민단체 모임이 기본소득을 도입하자는 헌법개정안을 126,000명의 서명을 받아 연방의회에 제출했으며, 핀란드에서는 20155월 총선에서 승리한 중도연합 정부가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발안을 준비하고 있네. 그들의 논의가 우리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 아무튼 투표 잘 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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