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야구 10개 구단의 초반 판도가 엇갈리고 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국내 최고 인기스포츠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프로야구가 본격적인 시즌 출발에 나섰다. 지난 1일 개막전을 시작으로, 각 구단마다 12~14경기를 치르며 워밍업을 마친 것이다. 하지만 각 구단별 표정은 완전히 엇갈리고 있다. 물론 아직 극초반이지만, 희비가 크게 교차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국내 프로야구 특성상 각 구단의 모기업들도 울고 웃고 있다.

◇ 화끈한 두산 베어스, 구단주에 기운 팍팍

4월 18일 현재, 초반 1위를 달리고 있는 구단은 두산 베어스다. 그냥 1위가 아니다. 13경기를 치르며 무려 9승 1무 3패의 압도적인 성적을 내고 있다. 승률이 7할5푼에 달할 정도다. 지난해 3위로 시즌을 마친 뒤 넥센 히어로즈와 NC 다이노스, 삼성 라이온즈를 차례로 물리치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위엄을 올해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두산 베어스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김현수라는 대들보를 잃었음에도 더욱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존 야수들의 성장과 새로운 용병투수 보우덴의 강력함으로 투타의 짜임새가 더욱 단단해졌다.

물론 두산 베어스가 7할5푼의 승률을 시즌 내내 유지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현재 순위 1위도 아직은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다.

▲ 지난 2014년 사내 야구대회에서 시구를 하고 있는 박정원 회장. <사진=뉴시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산그룹은 두산 베어스가 그 어느 때보다 기특하게 느껴질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새롭게 두산그룹을 이끌게 된 박정원 회장에 있다. 두산그룹의 ‘4세 경영 시대’를 연 박정원 회장은 지난 3월말 공식 취임하며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았다.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는 박정원 회장은 지난 2009년부터 두산 베어스의 구단주를 맡고 있기도 하다. 두산 베어스가 현재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가장 큰 비결인 이른바 ‘화수분 야구’가 그의 작품이다. 이에 재계에서는 박정원 회장이 두산 베어스의 ‘화수분 야구’를 두산그룹 전반에 이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산 베어스가 시즌 초반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덕분에 박정원 회장을 향한 기대감과 관심도 더욱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기업에 대한 의존성이 높은 국내 프로야구에서, 대기업들이 기대하는 이미지 제고 및 홍보효과를 120% 수행하고 있는 두산 베어스라 할 수 있다.

▲ 지난 5일 열린 kt 위즈의 홈 개막전에서 관중들이 가상현실(VR) 생중계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새로운 피’ kt, 야구장이 달라진다

‘통신’이란 공통 분모를 지닌 SK 와이번스, LG 트윈스, kt 위즈 역시 산뜻한 스타트를 끊었다. SK와이번스는 2위, LG 트윈스는 3위, kt 위즈는 공동 5위에 각각 올라있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역시 ‘막내’ kt 위즈다. 지난해 처음 1군 무대를 밟았던 kt 위즈는 올 시즌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베테랑 선수들을 적절히 영입하면서 무게감이 확실히 달라졌다. kt 위즈는 지난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에 빠지며 “프로 수준이 아니다”라는 악평까지 받았지만, 지난 시즌 내내 발전을 거듭하더니 올 시즌엔 ‘5강’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kt는 당초 기대와 우려보다 야구단이 빠르게 안정을 찾으면서 조금은 여유를 찾게 됐다. 여기에 통신·IT 기업의 특성을 잘 활용하며 마케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개막전 시구에 ICT를 활용하는가하면, 가상현실(VR) 모바일 생중계를 진행하는 등 기존 ‘형님 구단’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신선한 마케팅이 돋보인다.

한때 ‘왕조’라는 칭호가 붙었지만 지금은 다소 힘이 떨어졌다는 평을 받는 SK 와이번스 역시 마케팅을 한층 강화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홈구장에 세계 최대 크기의 전광판을 설치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상황이다. 전광판의 힘인지 시즌 초반 성적도 기대 이상으로 좋다.

▲ 강호찬 넥센타이어 대표이사와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 <사진=뉴시스>
◇ 영웅과 거인의 변화, 안정을 찾아라

넥센 히어로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분위기도 긍정적이다.

먼저 모기업이 없이 ‘야구 회사’로 운영되고 있는 넥센 히어로즈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엄청난 변화를 맞았지만, 큰 흔들림 없이 빠르게 안정을 찾은 모습이다. 넥센 히어로즈는 지난 시즌 강정호에 이어 올 시즌엔 박병호, 유한준, 벤 헤켄, 손승락 등 핵심선수들이 팀을 떠났고, 차세대 주축으로 평가받던 한현희, 조상우마저 부상으로 전력에서 제외됐다. 때문에 ‘꼴찌 1순위’라는 평을 받았지만, 새로운 얼굴들이 맹활약을 펼치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숱한 논란 끝에 새롭게 둥지를 튼 홈구장 고척 스카이돔도 우려했던 것 보단 큰 시행착오 없이 운영되고 있다.

이에 메인 스폰서사인 넥센타이어도 싱글벙글이다. 넥센타이어는 그간 히어로즈 구단을 통해 상당한 마케팅 효과를 봤다. 그러나 지난 시즌을 마친 뒤 계약이 끝났고, 히어로즈의 몸값이 치솟으면서 양측의 이별이 유력했다. 하지만 히어로즈가 일본계 금융업체인 J트러스트와 계약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강한 반대 여론에 부딪히면서 넥센타이어와 히어로즈 구단은 운명처럼 다시 손을 잡게 됐다. 넥센타이어로서는 야구단을 직접 운영하는 대기업만큼 돈을 쓰지 않으면서, 그만한 마케팅 효과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지난 2년간 심각한 내홍을 겪으며 팬들로부터 외면 받았던 롯데 자이언츠도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진 모습이다.

롯데 자이언츠는 지난 2년간 구단주 등 경영진과 현장의 마찰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수년 간 이어진 구조적 문제가 결국은 곪아 터진 것이었다. 또한 롯데그룹은 지난해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갈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안팎으로 혼란스럽기만 했던 롯데 자이언츠와 롯데그룹이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을 거치며 롯데 자이언츠는 다시 중심을 잡게 됐다. 신동빈 회장이 구단주로서 직접 야구단을 챙기고 있다. 아울러 롯데그룹 역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모습이다.

롯데 자이언츠로서는 팬들에게 쇄신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시즌이고, 롯데그룹으로서도 회사 이미지를 위해 롯데 자이언츠의 활약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전망은 밝다. 롯데 자이언츠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외부 영입을 통해 약점으로 지목됐던 불펜을 대폭 강화했다. 충분히 5강 이상의 성적을 낼 수 있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초반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 도박 파문에 휩싸인 삼성 라이온즈 윤성환(왼쪽)과 안지만이 지난 3일 사죄의 뜻을 밝히고 있는 모습.
◇ 뒤숭숭한 삼성, 초상집 된 한화

이처럼 대부분의 구단들이 긍정적인 분위기지만, 조금 다른 곳도 있다. 삼성 라이온즈와 한화 이글스다.

먼저 지난 시즌까지 5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새 역사를 썼던 삼성 라이온즈는 어딘가 찜찜한 상황이다. 이번 시즌 새로운 홈구장 ‘라이온즈 파크’의 문을 열었지만 분위기는 ‘산뜻함’과 거리가 있다.

지난해 불거진 도박파문의 후유증이다. 팀의 전설적인 마무리투수였던 임창용은 불명예스럽게 팀을 떠났다. 역시 핵심선수라 할 수 있는 윤성환과 안지만은 경찰 수사가 길어지는 가운데, 마운드 복귀를 선택했다. 구단은 아직 유·무죄가 가려지지 않았다는 입장이고, 당사자인 두 선수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팬들의 반응은 그리 달갑지 않다. 삼성 라이온즈의 구단 분위기도 어딘가 처져있는 느낌이다.

특히 삼성 라이온즈 세 선수의 도박파문은 모기업인 삼성그룹의 이미지에도 적잖은 타격을 줬다. 5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이루고, 5년 연속 통합우승을 남겨둔 상황에서 터진 도박파문은 영광의 시기에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았다. 문제는 이것이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수사결과에 따라 더 큰 후유증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삼성 라이온즈의 노심초사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 <사진=뉴시스>
한화 이글스는 더 이상 나쁠 수 없는, 최악 중에서도 최악의 시즌 초반을 맞고 있다.

13경기를 치른 한화 이글스는 2승 11패, 승률 1할5푼4리로 순위표 맨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압도적인 꼴찌다.

단순히 현재 경기력과 순위만 문제라면, 그래도 희망을 가질법하다. 130경기가 넘게 남았기 때문이다. 주요 선수들이 부상을 당한 상태고, 몇몇은 복귀를 앞두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한화 이글스는 현재보다 미래가 더 암울하다. 더 깊은 수렁으로 자꾸만 빠지고 있는 독수리다.

한화 이글스가 겪고 있는 문제의 중심엔 김성근 감독이 있다. 그의 독단적인 방식이 내홍은 물론 외부의 불만과 우려를 사고 있다. 최근의 ‘송창식 벌투 논란’은 한화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김성근 감독의 투수 운용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김성근 감독은 경기 도중 건강상의 이유로 갑자기 사라졌다. 시즌을 시작한지 보름 만에 투수코치가 팀을 박차고 나갔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로선 이 사태가 어디까지 치달을지, 혹은 어디부터 해결책을 찾아가야 할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한화 이글스는 비록 ‘만년 꼴찌’라는 좋지 않은 별명을 갖고 있지만, ‘팬심’ 만큼은 그 어느 구단보다 두텁다. 특히 2014년부터 선수단 보강이 대폭 이뤄지고, 지난 시즌부터는 김성근 감독까지 부임하면서 가장 뜨거운 인기를 끌었다. 지난 시즌 중반엔 재밌는 경기로 ‘마리한화’라는 좋은 별명까지 얻은 한화 이글스다. 이처럼 팬들의 사랑과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클 수밖에 없다.

모기업인 한화그룹 입장에서도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야구팬들의 응원을 그룹CF에 활용했을 정도로 ‘야구단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현재 한화 이글스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한화그룹 특유의 이미지인 ‘끈끈한 의리’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렇듯 시즌 초반 프로야구 판도에 엇갈리고 있는 각 기업들의 표정이 가을엔 또 어떻게 달라져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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