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시사위크] 지난 7일 서울에 도착한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 13명의 집단탈북 사태는 적지 않은 파장을 던졌다. 철저한 상호감시와 통제 속에서 어떻게 이 정도 규모의 집단 이탈이 가능했느냐는 관심과 함께 북한 김정은 체제에 균열이 생긴 것 아니냐는 측면에서다.

이와 함께 이들의 서울행이 결행되고 공개된 시점이 한국 총선을 며칠 앞둔 민감한 시기였다는 점에서 선거에 북한 변수를 의도적으로 끌어들이려는 ‘북풍’시도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13명의 북한식당 여종업원 일행은 현재 경기도 시흥의 보호시설에서 관계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정원과 경찰·통일부 등 해당부처 베테랑 조사관들이 탈북동기와 구체적인 신상 등에 대한 심도 있는 파악이 가능한 합동신문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위장귀순 여부를 가려내기 위한 고도의 기술이 동원된 전략신문도 포함된다. 그만큼 우리 정부 당국이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은 이들의 서울 도착 닷새만인 지난 12일 조선적십자회 중앙위 대변인 명의의 담화에서 “전대미문의 유인 납치행위”라고 주장했다. 담화는 “괴뢰패당이 조작한 이번 집단 탈북 사건은 공화국에 대한 중대한 도발이며 우리 인민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또한 북한 송환을 요구하기도 했다. 북한도 이번 탈북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음이 드러난다.

북한 당국은 누구보다도 이번 사태의 전모를 잘 파악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탈북행렬에 함께하지 않고 잔류한 북한 종업원이나 중국 저장성 닝보를 관장하는 북한 공관원, 식당 운영에 관여한 중국 측 관계자들을 조사한 내용을 통해서다. 13명의 북한 종업원들을 강제로 납치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중국 당국의 협의아래 서울로 데려온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북한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란 얘기다. 이 때문인지 북한 당국의 대남비난이나 송환요구는 의례적인 담화 발표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은 이번 사태를 주민들이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 때문인지 대외 선전매체를 통해서만 내보내고 있다. 성분 좋은 해외 북한식당 종업원들이 집단으로 한국행을 선택했다는 게 알려지면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 벌어진 북풍 논란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의 핵심을 중심으로 놓고 들여다보면 북풍 의혹에 알맹이가 없음이 드러난다는 점에서다.

물론 이들의 탈북이 대북제재의 영향 때문이란 정부 당국의 설명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경영난 등이 닥쳤다 해도 20대 초반의 여종업원들까지 탈북행렬에 오를 사안은 아니란 점에서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북풍을 위해 우리 정부가 만들어낸 듯 주장하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 정보 당국이 북한 고위인사 한 두 명의 한국행을 은밀하게 기획하고, 그 결행시기를 한국의 선거 등 정치 일정에 맞췄다면 북풍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타당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번의 경우는 13명의 북한 식당 종업원이 의기투합하지 않고는 결행이 어려운 문제다. 과거 집단탈북 사태의 경우를 살펴보면 일가족 사이에서도 보안누설이나 신고 등을 우려해 사위나 일부 가족을 남겨두고 온 경우도 있었다. 출신이나 생각이 다를 수 있는 13명이 보위부의 비밀 감시원이 포함돼있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뜻을 모았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기획탈북’ 등의 주장을 내놓는 건 어불성설이다.

정말 13명의 식당 종업원들을 우리 국가정보기관이 치밀하게 기획하고, 북한을 따돌린 채 중국 당국과의 물밑 협상까지 거쳐 성공적으로 한국에 데려왔다면 정보기관의 능력을 세계 수준으로 재평가 해줘야 할 일이다.

정부 당국도 언론 브리핑 등을 통해 우리 관계당국이 일정부분 개입했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는 북한 종업원들이 탈북을 결심하고 우리 현지 공관 혹은 관계자에게 도움을 요청해왔다는 것이지 멀쩡히 일하고 있는 13명을 북한 주장대로 유인하거나 납치한 것은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망명사태를 처리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당사자의 자유의사다. 중국 정부도 이번 사태를 처리하면서 북한 종업원들의 이 같은 의사를 확인했고, 허가했기 때문에 제3국을 경유한 한국행에 동의해준 것이다. 북한 종업원들이 합법적인 북한 여권을 갖고 있었고, 비자 또한 소지한 상태라 이들의 중국 출국을 막을 수 없었다는 건 중국 당국의 극히 의례적인 공개입장일 뿐이다. 남북관계의 민감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중국 공안당국이 북한 식당종업원 13명이 집단적으로 해외로 이동하는 걸 파악하지 못했다는 건 믿기 어렵다.

선거가 끝났고 북풍 논란도 수그러들고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북한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사태는 선거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실망감과 비판 여론을 누를 수 있는 이슈는 없었다. 김정은이 총선 한 달 전인 3월 9일 핵탄두를 들고 나와 위협하고 뒤이어 선전포고성 협박을 연이어 가했는데도 꿈쩍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이나 사회 일각에서 북풍몰이 주장을 하고 나선 건 유감이다. 혹시 성숙한 국민의식은 북풍을 낡은 시대의 유물로 여긴지 오래됐는데도, 일부 언론이나 세력이 구시대의 프레임으로 탈북사태를 들여다본 건 아닌지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런 주장을 제기하고 있는 언론이나 세력이 과연 2000년 4월 남북 정상회담 합의 발표 때 북풍 비판을 얼마나 했는지 돌아봤으면 한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남북 간 장관급 비밀접촉을 통해 ‘6월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사실을 총선 며칠 전 발표했다. 철저한 비밀유지가 가능한 사안이고, 총선을 마친 뒤 발표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서둘러 발표한 배경에 대해 어떤 문제제기를 했는지 반추해보라는 얘기다.

총선은 끝났다. 이제 얼마 후면 탈북 종업원 13명에 대한 조사결과가 발표되고 구체적인 탈북정황과 스토리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또 한국사회에 정착한 이들이 자신들의 얼굴을 드러내고 생생하게 탈북기를 들려줄 시기도 올 것이다.

북한 이슈를 선거에 써먹은 과거 정권의 ‘북풍 만들기’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같은 맥락에서 사안의 핵심을 들여다보지 않고 편향적인 시각에서 제기하는 북풍의혹도 설 자리를 찾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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