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7 18:43 (목)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인터뷰] 박주민 “4년 후 꽃가마, 비겁하게 느껴졌다”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인터뷰] 박주민 “4년 후 꽃가마, 비겁하게 느껴졌다”
  • 소미연 기자
  • 승인 2016.04.30 2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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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17번째 인재영입 인사로 발탁된 박주민 당선자. 그는 20대 총선에서 서울 은평갑 선거구에 출마해 54.9%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사진=김현수 기자>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박주민(서울 은평갑)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는 11년차 변호사다. 이른바 ‘세월호 변호사’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우리 사회 굵직한 사건들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 제주 해군기지 갈등, 밀양 송전탑 사건,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등 지역과 사안을 마다하지 않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유는 없었다. 도움이 필요한 시민들 곁에 서는 게 삶의 기쁨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박주민 당선자는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변호사로서 느낀 한계는 새로운 물음을 가져왔다. 바로 ‘정치’다. 정치가 제대로 됐다면 “고통 받는 분들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박주민 당선자가 문재인 전 대표의 영입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다. 물론 쉽지 않았다. 그는 투표일을 24일 앞두고 전략공천을 받았다. 지역기반이 약했고, 시간도 짧았다. 어려운 선거로 점쳐졌지만, 총선 결과는 압승이었다. 54.9%의 득표율이 그의 총선 성적표다. 20대 국회 등원을 앞둔 박주민 당선자를 지난 29일 서울 은평구 서부병원 사거리에 위치한 선거사무소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박주민 당선자는 전략공천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우려에 대해 “오래 살면 잘 알 수는 있지만, 문제 해결 능력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원주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는 방식으로 지역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면서도,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위해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 선거를 치러본 소감이 궁금하다.
“많이 힘들었다. 공익변호사로 살아왔던 지난 시간 동안 저를 내세워본 적이 없다. 하지만 선거는 저를 팔아야 했다. 그 차제가 익숙하지 않더라. 대원외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는 얘기도 원치 않았지만 어필이 된다고 하니까 해야 했다. 그런 부분들이 낯설고 어려웠다. 게다가 체력적으로도 굉장히 힘들었다. 입당하고 공천 받을 때까지 두 달여 동안 여러 상황들로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선거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체력적으로 소진한 상태였다. 투표일까지 24일을 버티는 게 정말 힘들었다.”

-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
“극과 극이다. 야성이 강한 곳인 만큼 당연히 당선될 줄 알았다는 분도 계셨지만, 공천과 선거 그리고 이곳에 와서 적응하기까지 그간의 사정을 잘 아시는 분들은 선거 결과에 놀랐다고 하셨다. 저는 진짜 공천을 못 받을 줄 알았다. 운동권은 안 된다, 변호사는 너무 많다는 얘기가 지도부 회의석상에서 공공연하게 나오지 않았나. 그래서 마음고생을 좀 했다. 제가 공천 마지막 날 출마 선거구가 정해졌는데, 전날까지 아무 소식도 없었다. 그래서 영입인사들 단체 카톡방에 출마를 못할 것 같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저도 모르는 공천 소식을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 주어진 시간이 짧았다. 하지만 상대 후보와 큰 표 차로 이겼고, 그래서 놀랐다는 얘기가 나왔다.” 

- 은평구민들의 반응은 어떻게 느꼈나.
“처음 지역 주민들은 두 가지 이유에서 당황하신 것 같다. 첫째, 익숙한 이미경 의원이 컷오프 된 점. 둘째, 대체자로 온 저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극복이 됐다. 이미경 의원이 컷오프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저를 받아주셨고, 적극 도와주셨다. 조직은 정말 헌신적으로 선거운동에 임했고, 외부에서도 저에 대한 이야기들이 회자되면서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 결국 그런 부분이 서울지역 유일한 야권 단일후보로 이어진 것 같다.
“은평구가 정치에 워낙 관심이 많은 곳이다. 야성이 높다. 저뿐 아니라 국민의당 김신호 후보에게도 단일화에 대한 요구가 많았다. 그 요구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심지어는 ‘너희 단일화 안하면 여당을 찍겠다’고 얘기하신 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양측이 오랜 시간 동안 합의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이에 따른 여론조사 결과에 김신호 후보가 잘 받아주셨다.”

▲ 박주민 당선자는 문재인 전 대표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했지만, 같은 당 소속의 박원순 서울시장과도 가까운 사이다. 지역의 발전 사업을 위해선 서울시의 협조가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향후 은평갑의 청사진에 박주민 당선자의 활약이 기대되고 있다.

- 전략공천 우려를 표시하는 것 중 하나가 지역에 대해 잘 모를 것이란 판단 때문인데.
“제가 은평구에 왔을 때도 그런 우려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지역에서 20년, 30년 사신 분보다 제가 잘 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역구 현역 이미경 의원이 그간 축적해온 성과와 데이터를 물려받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여기에 공동체의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프로젝트를 접목시킬 계획이다. 오래 살면 잘 알 수는 있지만, 문제 해결 능력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 은평갑 지역구 의원으로서 계획과 포부에 대해 말해 달라.
“은평구는 재정자립도가 22위다. 그만큼 경제적 기반이 약하다는 뜻이다. 발전이 정체됐다. 그런데 한편에선 뉴타운으로 대대적인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그야말로 혼돈이다. 때문에 원주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는 방식으로 지역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면서도,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위해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다. 10여 년 간 숙원사업이었던 몇 가지를 마무리 지을 계획이다. 이미 이미경 의원이 꽤 진척을 시켜놓았다. 이제 마무리 단계이자 시작 단계라 할 수 있다. 오늘도 수색동에 있는 변전소를 지중화하기 위한 MOU를 체결하고 왔다. 그걸 제가 뚝딱 해온 게 아니라 이미경 의원이 지난 몇 년간 해온 일이다. 숙원사업을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는 동시에 지역의 생기를 불어넣어 ‘찾아오고 싶은 은평’을 만들고 싶다.”

- 앞으로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관계도 중요한데.
“친하다.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기 전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나. 그 과정에서 국정원으로부터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했는데, 당시 그 사건의 변호를 제가 맡았다. 이를 계기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공보물에 실린 사진도 박원순 시장이 신경을 많이 써줬다. 다음 일정까지 미뤄가면서 사진을 더 찍자고 붙들었다. 나중엔 박원순 시장의 비서실도 어떤 사이냐고 묻더라. 총선 다음날인 4월14일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인데, (박원순 시장에게) 전화가 왔다. 당선 축하한다고. 그래서 제가 아직 개표 진행이 남았다고 하니까, (박원순 시장이) ‘한 번도 역전되지 않았다’면서 ‘걱정하지 말라’고까지 하더라.” 

- 문재인 전 대표로부터는 연락이 없었나.
“특별한 메시지를 받은 것은 없다.”

▲ 박주민 당선자는 ‘문턱이 없는 정치’를 꿈꿨다. “시민들이나 주민들이 정치에 쉽게 관여하고, 참여하고,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그는 “주민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이슈화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문재인 전 대표가 직접 정치입문을 권유한 인재영입 17호로 알려졌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두 가지의 두려움이 있었다. 하나는, 입당 후 저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자기규정이다. 정치하려고 공익변호사로 살아왔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겠나. 또 하나는 실패할 가능성이다. 당시 야권이 분열되면서 더민주가 굉장히 위축돼 있었고, 여당이 총선에서 200석까지 차지할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주변에서도, 저 역시도 지금 들어가면 죽는 것이라 생각했다. 원치 않는 자기규정까지 당하면서 입당했는데, 결과가 실패로 끝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첫 번째 고민은 비교적 쉽게 극복했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중시하면서 살아오지 않았으니까. 두 번째 고민은 주변에서 4년 후에 꽃가마 타고 들어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런 생각에 흔들릴 때마다 제가 비겁하다고 느껴지더라. 성공하든 실패하든 힘들 때 들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 정치 입문을 결심한 계기는 없었나.
“제가 변호사로 11년차다. 지난 10여년 동안 줄곧 정치가 제대로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다. 변호사가 되면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변호사도 한계가 있더라.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밀고 들어올 때 소송을 했지만 패소했다.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에서도 제가 복직시킨 분은 한분도 없었다. 세월호 가족들 옆에 있었지만 경찰이 불법적으로 그분들을 가로 막을 때 뚫어드린 적은 없었다. 실패의 연속이었고, 그때마다 한계를 느끼면서 정치가 제대로 됐다면 이렇게 고통 받는 분들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입당 제안을 받았던 것이다.”

- 앞으로 하고 싶은 정치는.
“문턱이 없는 정치를 하고 싶다. 시민들이나 주민들이 정치에 쉽게 관여하고, 참여하고,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는 그 의견을 전달해 정치적으로 이슈화하고 싶다. 그것이 주민을 위한 정치이자 주민의 편에 선 정치라고 할 수 있겠다. 아울러 지역 주민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기대에 부응하도록 정말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겠다. 누구보다 말씀을 경청하고, 뜻에 맞는 정치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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