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나는 자꾸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묵은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려봐도/ 진보단체 사이트를 이리저리 뒤져봐도/ 나는 왠지 무언가 크게 잃어버린 느낌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공단 거리를 걸어봐도/ 촛불을 켜봐도, 전경들 방패 앞에 다시 서봐도/ 며칠째 배탈 설사인 아이의 뜨거운 머리를 만져봐도/ 밤새 토론을 하고 논쟁을 해봐도/ 나는 왜 자꾸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까// 조용히 눈을 감아본다/ 분명히 내가 잃어버린 게 한 가지 있는 듯한데/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도 날마다 반복해서 읊조리는 송경동 시인의 <혁명>이라는 시일세.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오만했던 새누리당이 과반의석 확보는커녕 원내 제1당도 되지 못하는 참패를 당한 것에 고소해 하지만, 나는 자꾸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편하지가 않구먼. 그래서 시인처럼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압축적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잃어버렸거나 잊은 것을 찾아보았지.
 
잃어버렸거나 잊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 가장 아쉬운 게 염치인 것 같네. 염치(廉恥)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야. 맹자가 말한 수오지심이지. ‘지금 여기서살고 있는 우리들 거의 모두가 염치를 모르고 살고 있네. 특히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고위공직자, 대기업인, 지식인들이 부끄러움을 잊고 잃은 지는 꽤 오래되었어. 지금 이 시각에도 언론에 오르내리는 이른바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행동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사회가 혁명같은 철저한 자기반성 없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이야.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나에게는 우리 사회의 우경화 추세의 확인이 가장 큰 충격이었네. 극우 편향의 여당과 정치적 경제적으로 보수적인 두 야당이 전체 300석 중 283석을 가져가는 걸 보면서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퇴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두 야당을 진보라고 잘못 믿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미국의 민주당보다도 더 보수적인 자유주의 정당일 뿐일세. 그러니 그런 정당에서 버니 샌더스처럼 자신을 민주사회주의자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지.
 
그러면 우리 사회는 어쩌다가 이런 보수일변도의 정치 지형을 가지게 되었을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고통의 원천인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인권, 환경과 생태, 노동, 여성 등 진보적 이슈를 의회 내에서 다루고,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키는 데 앞장 서야 할 진보정당들은 왜 교섭단체도 만들지 못했는가?
 
나는 우리 사회의 우경화와 진보정당들의 좌절도 거대정당들의 몰염치와 많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네.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이 얻은 정당득표수는 1719891표로 전국득표율은 7.23%일세. 만약 국회의원 전원을 비례로 뽑는다면 전체 의석이 20석이 넘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득표율이야. 녹색당, 민중연합당, 노동당까지 합치면 진보정당들 득표수는 200만 표가 넘어. 그런데도 국회의원은 정의당 6명뿐일세. 선거제도가 잘못 된 거지. 다음 총선에서 만약 국회의원의 절반만이라도 비례로 뽑는다면 진보정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을 거야. 그렇게 되면 국회 내에서 논의되는 의제들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걸세. 하지만 기득권을 지키려는 몰염치한 거대 정당들이 쉽게 양보할까? 제도를 바꾸려면 시민들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데
 
동국대학교 김낙년 교수의 한 논문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일하는 사람들 중에 50%가 넘는 사람들이 월 100만원도 벌지 못하고 있는 한심한 나라일세. 그런데도 일하는 빈곤층의 고통을 덜어줄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일에 정부도 국민도 별로 관심이 없는 참 희한한 나라이기도 하네.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만 원이 넘으면 뭐하나. 중위소득이 100만원도 안 되면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숫자일 뿐일세.
 
겨울밤/ 노천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며 우리는/ 서로의 집이 되고 싶었다/ 안으로 들어가/ 온갖 부끄러움을 감출 수 있는/ 따스한 방이 되고 싶었다/ 눈이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바깥이 되고 싶었다.
 
김광규 시인의 <밤눈>인데, 참 따뜻한 시지? 서로에게 집이 되고, 따스한 방이 되고, “서로의 바깥이 되어주는 염치있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살고 싶네. 우리처럼 이순이 넘은 사람들이 저런 세상에서 살다가 웃으면서 갈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오는 30일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20대 국회에서는 그런 나라를 만들려고 애쓰는 의원들을 자주 보기 힘들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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