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스바겐의 4월 월간판매량이 곤두박질쳤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몰락의 시작인가, 일시적인 현상인가. 폭스바겐의 4월 국내 판매량이 곤두박질쳤다. 전 세계를 뒤흔든 배출가스 조작 파문과 미지근한 후속 조치로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도 국내판매량 만큼은 견고함을 유지했던 폭스바겐의 기세가 확 꺾인 것이다.

폭스바겐의 지난 4월 국내 시장 판매량은 784대. 불과 한 달 전인 3월의 3663대에 비해 5분의 1에 불과하다. 개별소득세 혜택 종료로 자동차 시장 전반이 비교적 부진했던 지난 1월(1660대)에 비해서도 절반 이하다. 심지어 배출가스 조작 파문 직후 이례적으로 낮은 판매량을 기록했던 지난해 10월의 947대보다도 적다.

판매량 추락으로 경쟁사에 비해 순위 역시 뚝 떨어졌다. 폭스바겐은 벤츠, BMW, 아우디 등 다른 독일차 브랜드와 함께 탄탄한 ‘빅4’를 형성하고 있었다. 3월에도 벤츠, BMW에 이어 3위에 올랐던 폭스바겐이다. 하지만 4월엔 6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 전까진 상대가 되지 않았던 포드(979대) 및 토요타(977대)에게조차 밀렸다. 지난해 10월 5위에 올랐던 것을 제외하고, 근래에 볼 수 없었던 수모다.

정작 폭스바겐은 덤덤한 표정이다. 폭스바겐 관계자는 “골프와 티구안의 물량 부족이 4월 판매량 급감 원인이었다”며 “5월에는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계약은 원활하게 이뤄졌지만, 출고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4월 계약 현황에 대해선 함구했다.

◇ 프로모션의 함정

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단순히 물량 부족만을 원인으로 꼽기엔 석연찮은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받는 것은 바로 프로모션이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배출가스 조작 파문을 일으킨 직후부터 파격적인 프로모션 공세를 이어왔다. 높은 할인율과 함께 다양한 무이자 할부 프로그램을 가동한 것이다. 4월엔 이 같은 프로모션이 축소되면서 판매량이 곤두박질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때문에 이전의 폭스바겐 판매량은 ‘프로모션 효과’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대대적인 프로모션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수입차 뿐 아니라 자동차 업계 전반에서 판매량이 크게 늘거나 줄어드는 것은 프로모션의 영향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토마스 쿨 폭스바겐 코리아 사장. <사진=뉴시스>
폭스바겐은 지난해 10월 판매량이 947대까지 떨어졌다가 11월엔 4517대로 껑충 뛰었다. 한 달 사이에 최저 판매량과 최대 판매량을 오간 것이다. 이번에도 5월에는 평소 판매량을 회복하거나 그 이상을 기록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문제는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 않다는 점이다. 배출가스 조작 관련 뒷수습엔 미적지근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프로모션을 통해 판매량만 높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폭스바겐은 배출가스 조작 문제에 따른 국내 보상안을 아직까지 마련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구체적인 현금 보상안이 나온 것과 대조된다. 뿐만 아니다. 폭스바겐이 우리 환경부에 제출한 ‘리콜계획서’는 두 차례나 퇴짜를 맞았다. 폭스바겐은 결함 원인을 단 두 줄로 작성하는가하면, 배출가스 조작 사실을 쏙 빼기도 했다.

이에 대해 폭스바겐이 말로만 사과할 뿐, 실제로는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 출석한 토마스 쿨 폭스바겐 코리아 사장이 보여준 언행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토마스 쿨 사장은 국감에서 배출가스 조작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이후 핵심적인 내용은 뺀 채 같은 말만 반복해 빈축을 샀다.

폭스바겐의 충격적인 4월 판매량은 몰락의 신호탄일수도, 일시적인 수급 미스매치일수도 있다. 하지만 폭스바겐의 무성의한 태도가 판매량 하락에 영향을 끼친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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