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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원 당선자 인터뷰] “노무현의 가르침, 서민 위한 정치로 보답”
[강병원 당선자 인터뷰] “노무현의 가르침, 서민 위한 정치로 보답”
  • 소미연 기자
  • 승인 2016.05.23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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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병원 당선자는 겸손을 잊지 않았다. 그는 20대 총선 승리에 대해 ‘민심’으로 설명하며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신내 행운식당 둘째아들’을 뽑아줬더니, 우리 지역 초중고를 나온 ‘토박이’를 뽑아줬더니 역시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는 게 강병원 당선자의 각오다. <사진=김현수 기자>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강병원(은평을)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는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 최초로 현역 입대한 그는 병장 만기 제대 후에도 주변의 예상을 깨고 정치가 아닌 직장을 택했다. 직장을 그만 두게 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문이었다.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언론을 통해 알게 된 게 전부다. 하지만 무작정 캠프로 찾아갔다. 당시를 떠올린 강병원 당선자는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까이에 있었지만 정작 정치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것은 건설노동자 3년차에 접어들어서다. 강병원 당선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임을 앞두고 청와대를 나온 뒤 미장방수를 배우며 공사판에서 지냈다. 그곳에서 만난 방수반장의 이야기에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에 못 미치는 이웃들의 고된 삶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래서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간절함이 통했던 것일까. 강병원 당선자는 20대 총선에서 수차례 이변을 일으키며 정치권의 이목을 끌었다. 경선에선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역임한 임종석 전 의원을 꺾었고, 김제남 정의당 의원과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했다. 본선에선 5선의 이재오 무소속 의원과 12년간 표밭을 다져온 고연호 국민의당 후보를 제쳤다. 20년 만의 현역 교체이자 새로운 젊은 일꾼의 등장이다. 기적을 일군 강병원 당선자를 지난 20일 국회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강병원 당선자는 서울대 총학생회장,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경력보다 ‘연신내 행운식당 둘째아들’로 불리는 게 더 좋았다. 전북 고창이 고향인 그는 10살 되던 해에 서울로 올라와 어머니와 함께 지냈던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털어놨다.

- 당내 경선에서부터 본선까지 정말 치열했다. 선거를 치른 소감이 어떤가.
“선거가 끝났다고 해서 생활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선거 끝난 다음날에도 당선 감사 인사를 하다 보니 선거 전과 일정이 같더라. 때문에 특별하게 ‘선거에서 이겼다’, ‘당선됐다’고 느껴볼 틈이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경선에서 이겼을 때가 제일 짜릿했던 것 같다. 단일화 협상에 나설 때는 ‘노무현 정신’을 되새기며 마음을 비우고 임했다. 반면 본선에선 걱정을 많이 안했다. 뛰면 뛸수록 지역의 민심이 느껴졌다. ‘바뀌어야 한다’, ‘새로운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지역의 바람이 컸다. 주변에서 보시기에, 제가 안 될 것이란 생각을 많이 하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저와 저를 믿고 도와준 분들은 이런 바닥 민심을 절감했다.

하지만 강병원의 승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우리 국민들이 만든 선거 결과다. 선거를 시작할 때만 해도 더민주가 제1당이 될 거라 생각도 못하지 않았나. 3당이 많은 의석을 차지할 줄도 몰랐다. 깜짝 놀랄 만한 결과였고, 은평도 마찬가지다. 민심이 만든 승리다. 그래서 앞으로가 중요한 것 같다. 4년 후에는 강병원의 선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연신내 행운식당 둘째아들’을 뽑아줬더니, 우리 지역 초중고를 나온 ‘토박이’를 뽑아줬더니 역시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이것이 저의 당선 소감이자 각오이기도 하다.”

- 슬로건이었던 ‘연신내 행운식당 둘째아들’에 대한 얘기가 빠질 수 없는데.
“선거를 준비하면서 고심을 많이 했다. 당 대 당 대결이 아닌 인물 중심 선거구도로 가야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치적인 구호를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인물이 부각될 수 있는 구호를 찾았고, 그 과정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에서 ‘연신내 행운식당 둘째아들’이 나왔다. 일단, ‘연신내’라는 말에서 우리 지역에 있는 유권자들이 편안하게 느낄 것 같았다. 우리 동네 아닌가. ‘식당 아들’이라는 점에선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실 식당 아들이 거창한 경력은 아니잖나. 실제로도 처음엔 ‘연신내 행운식당 둘째아들’이라고 소개할 때 웃으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가 달라졌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 청와대에서 근무한 행정관이라는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저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됐던 것 같다. 그래서 행운식당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식당이냐고 궁금해 하는 분들도 많았다.”

▲ 강병원 당선자의 공약에는 거창한 토건이나 개발사업은 없다. 하지만 돌아가신 어머니가 꿈꿨을 행복한 삶을 떠올리며 주거의 질,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방점을 찍었다.

- 지금은 행운식당이 없어졌다.
“그렇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하셨던 식당이다. 아마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일흔 다섯이셨을 텐데, 제가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된 94년에 돌아가셨다. 벌써 22년 전이다. 그래도 이 시절이 제게는 가장 행복했다. 아버지는 제가 4살 되던 해에 돌아가셔서 기억에 남는 일이 없다. 서른셋에 홀로 되신 어머니께서 형과 저를 할아버지댁에 맡기고 혼자 서울로 올라와 식모살이부터 온갖 궂은일을 하셨다. 단칸방이라도 얻을 수 있는 돈이 모이고서야 어머니께서 저희 형제들을 서울로 부르셨다. 구파발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가 제 나이 10살이었다.

어머니와 몇 년을 떨어져 살던 아이가 가족들과 함께 모여 살게 됐으니 얼마나 좋았겠나.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그 시절을 잊지 말자는 마음가짐을 슬로건에 담았다. 또 저희 어머니께서 저와 형을 키우면서 꿈꾸셨던 행복한 삶이 있지 않았겠나. 저희 어머니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꿈꿨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자, 그것이 제가 정치인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이정표로 삼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은평을은 지난 20년간 여당이 독주해온 지역이다. 현황을 진단했을 때 지역 내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은평을 지역은 주거와 교육이 중심인 곳이다. 하지만 정작 주민들의 주거 여건이 나쁘다. 어린 시절에 봤던 단독주택이 빌라로 교체됐다. 그 과정에서 인구 밀도가 높아졌으나, 길은 좁고 주차난이 심각해졌다. 물론 뉴타운이라고 해서 새롭게 변화된 곳도 있지만 뉴타운을 제외한 곳은 여전히 나쁜 상황이다. 만약에 정치와 행정을 하시는 분들이 미래를 내다보고 20년을 이끌어왔다면 좀 더 쾌적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런 부분에서 지역 주민들의 요구가 많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 은평을이 새로운 시작점을 맞았다. 구상하고 있는 은평을의 청사진이 궁금하다.
“이제는 토건사업이라든지 개발사업이라는 게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물론 낙후된 지역에서 재개발을 위한 조합을 결성하고 추진하는 분들의 경우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다 도와드릴 것이다. 이와 달리 재개발이 힘든 지역도 있다. 그런 지역의 경우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주거의 질,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런 연장선에서 녹지를 많이 확보하는 방안과 구와 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 강병원 당선자는 20대 국회에 제출할 1호 법안으로 ‘차별금지법’을 꼽았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동일처우가 골자다. 그는 “현재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가 50%가 된다”면서 “소득의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도 서울혁신파크에서 서울기록원 기공식을 다녀왔다. 혁신파크가 보다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될 것 같다. 여기에 국립한국문학관이 유치되고, 어린이 복합 문화 공원과 청소년들을 위한 쉼터 등이 만들어진다면 주거와 교육의 중심으로 불리는 은평의 수식어에 훨씬 더 어울리지 않겠나. 주민들의 삶도 훨씬 더 행복해질 것이다.”

- 은평을의 지역 발전 외에 20대 국회에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소득의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차별금지법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없애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도 최저임금 인상과 동일 노동에 따른 동일 임금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더민주는 오래전부터 이 얘기를 해왔고, 국민의당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3당 모두가 일치된 의견 아닌가. 요즘 ‘협치’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하는데,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20대 국회가 첫 번째 법안으로 이 내용을 다루고 합심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이 각별하다. 첫 만남은 어땠나.
“종합상사 대우 생활을 마치고 벤처기업을 다니고 있을 때다. 2002년 언론을 통해서 대선 후보로 나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처음 접했다. 저런 분이 우리나라 대통령이 된다면 대한민국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돕고 싶었다. 직장에 사표를 내고 무작정 여의도에 있는 캠프로 찾아갔다. 용케도 받아주셨다. 처음에 정책본부라는 곳에서 일을 했고,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에 수행비서로 발탁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차를 타고 전국을 다녔다.”

- 당시 유력한 대선 후보는 따로 있었다. 왜 ‘노무현’이었나.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없었다. 제가 살아온 흔적이 그랬다. 무엇보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기존의 정치인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슴이 뛰었다.”

-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나.
“소탈하셨다. 우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말할 때 원칙과 상식, 특권 파괴 등 거창한 표현들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제가 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말 소탈했다. 우리와 전혀 다름이 없는 모습이라 좋았다. 대통령이 되고서도 국민들과 편하게 포장마차에서 술도 한잔씩 할 것 같았다. 우리 주변에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애로사항들에 대해 바꿔주는 그런 새로운 정치를 하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강병원 당선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부터 퇴임할 때까지 지근거리에서 정치를 배웠다. 바로 준비와 경청의 자세다. 무엇보다 ‘국민이 대통령이다’라는 대통령의 철학에 대해 깊이 공감을 표시하며 “저 역시 제대로 (정치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 수행비서에서 청와대 행정관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곁에서 보고 느끼고 배운 정치는 무엇인가.
“수행 시절에는 꼼꼼한 모습을 배웠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자리를 가기까지 필요한 자료를 모두 챙기셨다. 본인 스스로 사유를 많이 하신 것 같았고, 궁금하게 있으면 상대가 누구라도 직접 전화해서 자문을 구하는 일에 마다하지 않으셨다. 인수위 시절에는 경청의 자세를 배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항상 사람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으셨다. 일례로, 인수위에 있을 때 제가 제안을 하나 했다. 같이 근무한 사람이 500~600명 정도 됐는데, 보통 인수위 마무리 시점에서 단체 사진을 한 장 찍는다. 그런데 이것을 당시 노무현 당선인과 1대1로 찍는 게 어떻겠느냐 말씀을 드렸는데, 흔쾌히 수락하시고 실제로 모든 사람이 악수를 하고 개별로 사진을 찍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국민이 대통령이다’라는 말을 참 좋아하셨다. 청와대에 계실 때도 몸소 보여주셨던 분이다. 제가 청와대에서 맨 처음 맡은 업무가 총무비서관실 관람 담당이었다. 연간 30만명 정도가 청와대에 구경을 오시는데, 제가 그 업무를 맡고 보니 대통령의 철학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경호 때문에 거리가 있던 부분들까지도 보다 가까이 관람객들이 볼 수 있도록 관람 코스를 바꿨다. 뿐만 아니다. 대통령이 경내를 차량으로 이동하실 때는 통제를 하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오히려 본인께서 차량을 멈추셨다. 창문을 열어 손을 흔들었고, 바쁘시지 않을 때는 차량에서 내려 덕담 한 말씀도 해주고 가셨다. 그래서 저도 청와대에 오시는 수많은 관람객들을 대통령이라 생각하고 업무를 했던 기억이 난다.”   

- 벌써 7주기다. 당선증을 받아든 지금 이전과 사뭇 다른 심경일 것 같다.
“참 그리운 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는 정치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아마 정치를 하려거든 제대로 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저 역시 제대로 (정치를) 해보고 싶다. 행운식당 둘째아들이 건설노동자로 있으면서 보고 느낀 서민의 삶,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치열하게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곱씹으면서 ‘노력한 만큼 땀 흘린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고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를 위해선 그분들의 권리가 지켜질 수 있는 좋은 법을 만드는 게 중요한데, 이제 국회의원이 됐으니 그런 법을 만들 수 있지 않겠나.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 노무현 전 대통령께 배웠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7주기를 앞둔 강병원 당선자의 가슴은 먹먹하다. 그는 “대통령께서 상식이라는 표현을 많이 하셨다. 국회에도 상식이 맞는 정치가 필요하다”면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 폐기,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과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강조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유지, 그 유지를 이어가는 길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대통령께서는 상식이라는 표현을 많이 하셨다. 국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예를 들어서, 19대 국회에서 박근혜 정부가 노동개혁이라는 이름하에 기간제를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려했고, 파견을 확장하려 했다. 저는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은 몇 달 할 일을 하는 게 맞다. 2년 동안 같은 일을 하는데 왜 비정규직인가. 더욱이 그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린다는 얘기가 말이 되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큰데, 비정규직을 더 늘리겠다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비정규직을 줄일 수 있는 뱡향으로 가는 게 맞지 않나.

가습기 살균제 문제도 그렇다.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자기의 가슴을 쳤겠나. 우리가 진상규명을 하고 국가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반성을 해야 한다. 이번을 계기로 삼고 안전을 위한 법 정비도 필요하다. 그래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하자는 게 아닌가. 세월호도 마찬가지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특조위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진상규명할 수 있도록 기간을 연장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상식에 맞는 정치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씀하셨던 상식에 맞는 원칙, 특권도 없애려고 했던 그런 모습들이 더욱 그리워지는 5월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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