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해 구속된 신현우 전 옥시 대표. 그는 풀무원에서 11년 넘게 사외이사로 재직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온 나라를 분노케 하고 있다. 옥시 등 가습기 살균제 생산 및 판매 업체에 대한 비난과 함께 이를 방치한 정부 측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 와중에 가습기 살균제와는 무관한데도 안절부절 하는 곳이 있다. 바로 ‘바른 먹거리’를 표방하는 풀무원이다.

◇ 자수성가 신화의 몰락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서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낳은 곳이자 숱한 논란을 일으킨 옥시. 신현우 전 대표는 이 옥시를 통해 ‘자수성가 신화’를 이룬 인물이다.

신현우 전 대표는 OCI(당시 동양화학공업)에서 신입사원으로 출발해 1991년 생활용품사업부인 옥시 대표 자리에 올랐다. 2001년 옥시가 영국계 다국적 기업 레킷벤키저엔브이에 매각된 뒤에도 대표를 맡은 그는 2005년 OCI 부회장으로 복귀하며 옥시를 떠났다. 2010년 OCI에서 퇴임한 그는 불스원을 인수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화려했던 그의 과거는 완전히 구겨졌다. 신현우 전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해 지난 14일 구속돼 구치소에 수감됐다. 이번 사태와 관련된 첫 구속의 불명예를 안았다. 사태가 불거지기 시작한 때부터 5년이나 흐른, 뒤늦은 구속이지만 말이다.

신현우 전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과 함께 오히려 안전하다고 허위광고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단순히 대표로서의 책임을 넘어 소비자를 현혹하는 광고 문구를 만드는데 개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증거를 인멸한 정황까지 포착됐다.

특히 오랜 세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해온 그는 ‘거짓 사과’ 논란으로 피해자는 물론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신현우 전 대표는 지난달 검찰에 출석하는 과정에서 취재진에게 둘러싸여 침통한 표정으로 “피해자와 유가족분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합니다”라는 사과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취재진으로부터 벗어난 직후 자신의 변호사에게 “내 연기 어땠어요?”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신현우 전 대표 측은 “‘연기’가 아닌 ‘얘기’였다”고 해명했지만, 세간의 시선은 차가웠다.

신현우 전 대표를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그의 혐의와 책임을 규명하고, 처벌을 내리는 일은 이제 시작 단계이기 때문이다. 신현우 전 대표 뿐 아니라 가습기 살균제 사태 전반의 문제도 이제 막 수면 위로 떠오르는 중이다.

◇ 11년 넘게 풀무원 사외이사 재직

이런 상황에서 가습기 살균제와는 전혀 무관한 풀무원이 속을 태우고 있다. 신현우 전 대표와의 관계 때문이다.

신현우 전 대표는 지난 2005년 3월 풀무원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옥시 대표가 끝무렵이다. 이후 그는 2008년과 2011년, 2014년 등 3차례 재선임됐다. 2011년부터는 감사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그가 풀무원 사외이사에서 물러난 것은 지난 2일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해 검찰의 수사를 받기 시작하면서 사외이사 자리를 내놓았다. 그의 풀무원 사외이사 재직기간은 11년을 훌쩍 넘는다.

‘바른 먹거리’를 표방하는 풀무원이 신현우 전 대표를 장기간 사외이사로 둔 것이 적절한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2014년 3번째 재선임은 가습기 살균제를 둘러싼 논란이 많이 알려진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사외이사 자격 검증 부실’이란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기업 이미지 훼손이다. 청결과 안전성이 가장 중요한 식품업체에게 가습기 살균제 사태 같은 일은 재앙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그 사태의 핵심 인물이, 책임이 막중한 사외이사로 무려 11년 넘게 재직했다는 사실은 그동안 쌓아온 풀무원의 이미지에 오점을 남기고 있다. 지난 2월 10년 연속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에 선정된 게 무색해 보인다.

<시사위크>는 신현우 전 대표의 사외이사 선임 배경 등 풀무원 측의 입장을 듣고자 연락을 취했으나 담당자와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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