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혐오가 죽였다”라고 적힌 피켓이 눈길을 끈다.<뉴시스>
[시사위크=이민지 기자]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사건’의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묻지마 범죄’로 결론짓고 피의자를 검찰에 송치했지만, 이번 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특히 ‘묻지마 살인사건’의 범행 장소가 ‘남녀 공용 화장실’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중화장실의 남녀화장실을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 남녀가 분리되지 않은 공중화장실은 성폭력을 비롯해 다양한 범죄에 무방비 노출돼 있다. 이번 ‘묻지마 살인’에 앞서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한 PC방에선 남녀공용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있던 여성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던 A씨(27)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공중화장실에서만 매년 평균 2000건의 범죄가 발생한다. 이 중 성폭행과 같은 성관련 범죄는 3분의 1이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사회각계에서는 남녀화장실의 분리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서고 있다.

행정자치부에서 조사한 전국공중 화장실 표준데이터에 따르면 122개 시·군·구 공중화장실은 1만2875곳으로, 이 중 남녀 칸이 분리되지 않은 곳은 13.4%(1724곳)에 해당된다.

이에 정부는 지난 23일 전국의 민간화장실을 공공기관 관리를 받는 개방화장실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2004년 이후 지어진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에 대해서만 남녀를 구분해 짓도록 되어있다. 이전에 지어진 소규모 민간 건물을 대상으로는 남녀 화장실 분리를 강제할 수없는 상황이다.

▲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 피의자의 현장 검증 모습이다.<뉴시스>

이에 행자부는 조만간 주요 지자체 관계자들과 함께 민간 건물 화장실 개선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각 지자체에선 이미 지역 내 공중화장실 실태 전수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다 적극적인 움직임도 포착된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공중화장실의 남녀화장실 분리를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새로 발의할 법안에는 2004년 1월 29일 이전의 건물과, 경찰청 범죄 통계상 성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풍속업소 및 다중 이용시설은 규모와 상관없이 남녀화장실 분리 의무화 조항을 적용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심 의원은 20대 국회 개원 직후 이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다만 일부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화장실’만 바꾼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과 유사 범죄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화장실 분리 유도는 해결 방안으로 미흡하며 근본적인 안전 대책과 생명존중, 인격존중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헤럴드경제과의 인터뷰에서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사건이 벌어졌으니 분리시키고, 가해자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하니 앞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경제와 배척을 강화하겠다는 대책을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해자는 마음만 먹으면 화장실의 남녀 분리 여부와 큰 상관없이 어디서든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상황에서 남녀 화장실 분리가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없다”며 “정신질환을 앓으며 우리 사회에서 또 다른 소수자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경찰과 정부의 해결방식은 또 다른 폭력”이라고 덧붙였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여성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사건은 성차별적 사회 구조가 낳은 젠더폭력”이라면서 “사건 기저의 여성혐오적 사회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언제든 유사 범죄가 일어날 수 있으니 그것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17일 강남역 인근 주점 건물 계단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을 수차례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피의자 김모(34) 씨를 26일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조현병(정신질환)’에 의한 범죄에 해당하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로 결론을 지었다. ‘조현병’은 망상이나 환청, 정서적 둔감 등의 증상과 더불어 사회적 기능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이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