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동시에 ‘87년 체제 개헌론’에도 불이 붙었다.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개헌’이 다시 화두다. 현재 대한민국의 헌법은 대통령 단임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골자로 하는 ‘87년 체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87년에 개정된 헌법은 승자독식·지역주의라는 단점을 안고 있어 매 정권마다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정작 개헌은 자칫 국정을 마비시키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늘 물거품이 돼왔다. 하지만 이번 20대 국회가 여소야대로 꾸려지면서 개헌론에도 다시 힘이 실리고 있다.

개헌 논의에 시동을 건 것은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다. 정 전 의장은 퇴임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87년 체제’를 극복해야 할 구조적 전환기”라며 “역사가 바뀌고 시대의 요구가 바뀌면 헌법을 그에 맞게 바꿔내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개헌을 강조한 바 있다.

정세균 신임 국회의장도 여기에 힘을 보탰다. 정 의장은 20대 국회 개원식에서 “내년이면 소위 ‘87년 체제’의 산물인 현행 헌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된다”며 “개헌은 결코 가볍게 꺼낼 사안은 아니지만 언제까지 외면하고 있을 문제도 아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청와대의 국정 운영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던 여권에서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부여당인 새누리당이 20대 총선 참패의 결과를 안은 데다 여권에 이렇다 할 차기 대선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개헌 불가피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관측이다.

◇ 20대 총선 결과가 개헌 바로미터

인명진(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목사는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14차 국가전략포럼에 참석해 “4·13 총선을 통해 개헌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 이미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87년 정치체제 핵심인 대통령 5년 단임제를 30년간 시행하면서 6명의 대통령을 배출했지만, 이들 중 성공했다고 평가할 만한 대통령은 없다”고 즉각적인 개헌 논의를 시작할 것을 주문했다. 국가전략포럼은 한반도선진화재단·세계평화포럼 등 6개 보수성향의 사회단체가 연합해 만든 단체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친박계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은 “앞으로 대선까지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며 “국민투표까지 한다면 개헌 역사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박계인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 역시 “개헌 문제는 늘 정권 말기 또는 정권 초기라서 미뤄져 왔다”며 “이제 개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국회가 새로 시작했으니 개헌 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해야 할 때”라고 동의했다.

하지만 개헌 논의가 아직 정식 공론화되지는 않은 만큼 또 다시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회의론적 시각도 적지 않다. 실제로 지난 19대 국회에서는 개헌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국회의장 직속으로 꾸려진 헌법개정자문위원회가 ‘6년 단임 분권형 대통령제·양원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까지 내놓았지만 그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개헌 방향을 두고 여야가 엇갈린 주장을 펴고 있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정치권 일부는 대통령이 외교·국방 등 외치를 담당하고 총리가 내각을 총괄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선거제도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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