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먼저 최근에 한국과 미국에서 일어난 두 사건을 보고 이야기하세. 둘 다 이전에는 흔하지 않았던 잔인한 범죄들이네.

2016517일 새벽 033분경, 강남역 근처에 있는 주점에서 일하는 34세의 김 씨는 직장에서 가까운 노래방의 화장실에 들어가서 30분 이상 범행 대상을 기다린다. 남성 6명은 그냥 보내고, 새벽 17분경에 들어온 23세 여성을 주방용 식칼로 좌측 흉부를 찔러 살해한다. 경찰 조사에서 김 씨는 평소 여자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해 왔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에 의하면, 김 씨는 2008년부터 최근까지 조현병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2016612(현지시간) 새벽 2시 경,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인 오마르 마틴(29)은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 있는 유명 게이 전용 나이트클럽인펄스에 들어가 총기를 난사한다. 이 사고로 50명이 숨지고 53명이 다쳤다. 2977명의 사망자를 냈던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인명 손실을 낸 최악의 참사로 기록될 이번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들은 대부분 클럽에서 춤을 추고 놀던, 범인 또래의 평범한 젊은이들이었다. 아직 정확한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번 사건의 범인 마틴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고, 평소에 동성애를 혐오했다고 한다. 마틴의 아버지는 아들이 마이애미 시내에서 남성 2명이 키스하는 모습을 보고 마구 화를 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서울과 미국의 올랜도에서 약 한 달간의 시차를 두고 발생한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두 사건의 희생자들이 여성과 성적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라는 거네. 사회학자들은 인종, 성별, 국적, 종교, 성적 지향, 장애, 노인, 소수민족 등 특정 집단에 증오심을 가지고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이나 테러를 가하는 범죄행위를 증오범죄(hate crime)라고 부르네. 최근 강남역 사건의 범행 동기가 여성혐오(misogyny)냐 아니냐로 논쟁이 격화되면서 혐오범죄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많아졌지.
 
증오범죄는 자신의 삶에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 이유를 사회적 약자들인 특정 집단에 대한 근거 없는 적대감이나 편견에서 찾고, 그 집단에 대한 증오심으로 다양한 방식의 폭력을 행사하는 범죄 행위야. 이번 올랜도 사건처럼 사회적 약자가 다른 약자들을 공격하는 경우들도 많지. 미국에서는 1991년부터 증오범죄를 공식범죄 통계의 한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매년 5000건 이상의 증오범죄가 발생하고 있다고 하네. 물론 우리나라 경찰에서는 아직 증오범죄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지 않네.
 
그러면 왜 한국과 미국에서 이런 증오범죄가 늘어나고 있을까? 2016년 현재 전 세계에서 미국과 가장 닮은 나라가 어딘지 아나?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난 한국이라고 생각하네. 낮은 최저임금과 다양한 복지제도의 미비, 터무니없이 비싼 대학 등록금 등 닮은 게 많지만 두 나라 모두 빈부격차의 확대가 가장 심각한 문제일세. 신자유주의의 부정적인 결과들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거나 최저한의 삶도 유지하기 힘든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돈과 경쟁만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사는 나라에서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절망감, 체념, 불안, 공포심 등으로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회적 소수자들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공격하고 있는 거지.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사회구조적 모순 때문에 자신들의 삶이 어려워지고 있는 데도 여성이나 이주 노동자 등이 자신들에게 돌아올 일자리와 복지 등을 빼앗아 가고 있어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믿는 거야.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같은 극우주의 정치가나 극우정당들이 나타나 이민자들과 성소수주의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만 키우고 있으니 상황이 더 악화될 수밖에
 
지난 413일에 있었던 총선에서 정의당 다음으로 많은 득표를 했던 정당이 어디인지 아는가? 개신교 단체들이 만든 기독자유당이야. 동성애자들을 혐오하고 이슬람을 적대시하는 정당이 60만 표 이상(2.64%)을 얻어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네. 그래서 지난달 24일에 3195명의 시민들과 62개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고 하더군.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다양한 집단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다문화사회를 지향하는 나라에서 특정 집단을 혐오하는 정당에 국고보조금을 주는 게 옳은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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