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존 응급구호물품과 개정안에 따라 변경되는 구성품 목록.
[시사위크=백승지 기자] 다음 달부터 재난현장에서 여성에게 생리대가 지급되지 않는다.

지난 4월 22일 국민안전처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재해구호법 시행령‧규칙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재난 상황에서 제공되는 재해구호물자 품목에서 생리대를 포함한 6가지 물품이 제외된다. 개정안은 이르면 다음달 8일 시행될 예정이다.

국민안전처는 재난 여건과 시대 상황에 맞는 맞춤형 구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구호물자 종류를 바꿨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성 생활필수품인 생리대를 목록에서 제외하면서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탁상공론’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유통기한 제품 생리대뿐…행정편의주의 논란

국민안전처가 공개한 재해구호물자 종류 기준에 따르면 손거울‧빗, 볼펜, 메모지, 손전등, 우의, 생리대 등 6종이 응급구호 세트에서 제외됐다. 대신 바닥용 매트, 슬리퍼, 안대, 귀마개 등 4종이 추가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속내의와 양말 수량이 1개에서 2개로 늘었다.

이번 재난구호세트 품목 변경은 2011년 이후 5년만이다. 국민안전처는 지난해 1월 ‘의정부 아파트 화재’와 올해 1월 ‘제주도 폭설’ 사태 등 각종 재난 현장에서 제기된 이재민 의견과 문제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품목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가장 큰 문제는 여성용 응급구호 세트에서 생리대가 빠진다는 점이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생리대의 경우 오래 보관하면 변질 우려가 있고 위생상 안 좋아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생리대의 유통기한은 제조일로부터 3년인데, 그 이상 보관하면 세균번식의 우려가 있어 기간 내 쓰도록 권장된다.

그러나 일각에선 국민안전처가 중간에 유통기한을 지속적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제품 위주로 품목을 구성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민안전처는 재해구호 세트를 5년 주기로 교체하는데, 중간에 재난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면 구호세트를 그대로 5년간 창고에 보관할 수 있다. 실제로 개정된 구호물품 목록은 매트와 안대, 귀마개 등 전부 유통기한이 없는 제품들로만 구성됐다.

◇ 중간 정비 소홀…“취향 달라서” 핑계

실제로 그간 국민안전처가 구호물품 중간 점검을 소홀히 해 온 정황이 포착됐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이번 개정안 시행을 준비하면서 물품을 점검한 결과, 유통기한을 넘긴 제품이 다수 발견됐다”며 “기존 물품에서 보존기간을 넘긴 제품만 추려내고 남아있는 재고분은 그대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통기한이 있는 생리대를 보급품에서 제외하기 전에 지나치게 긴 구호세트 교체 주기부터 짧게 수정하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은 이 뿐만이 아니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여성마다 생리대 취향이 다른데 정부가 이를 일률적으로 주문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말했다. 사전 설문 조사 및 지자체 담당자, 전문가 등 의견 수렴 과정에서 이 같은 의견이 제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구체적인 회의 참석자와 자문단을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서울의 한 여성은 “생필품 조달과 구호가 시급한 재난 상황에서 생리대 브랜드와 종류를 따지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정책 결정 과정에 여성이 참여하긴 했냐”고 반문했다.

재해구호법 개정안에서 생리대가 빠지면서  남녀 재난구호 세트는 모든 품목이 동일하게 구성된 상태다. 남성에게 제공되는 면도기를 제외하곤 남성 재난구호품과 여성 구호품간의 차이점을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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