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 마니아로 두산 베어스 구단주를 맡고 있는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두산그룹을 이끌고 있는 박정원 회장이 두산 베어스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유명한 야구광이자 두산 베어스 구단주인 그가 그룹 회장직에 오르자, 두산 베어스가 축하라도 하듯 엄청난 기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구단주에게 ‘꽃길’ 선물한 두산 베어스

올 시즌 프로야구가 개막한지 딱 석 달이 된 현재 1위는 단연 두산 베어스다. 두산 베어스는 74경기를 치르는 동안 무려 51승을 챙겼다. 승률은 ‘7할’에 딱 ‘1리’ 모자란 6할9푼9리다.

두산 베어스의 페이스는 압도적이다. 2위 NC 다이노스를 6경기 차이로 멀찍이 떨어뜨려 놓고 있다. NC 다이노스는 지난 6월 15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지만, 두산 베어스만큼은 잡을 수 없었다. 4월 13일부터 현재까지 1위 자리를 한 번도 빼앗기지 않은 두산 베어스다. 나머지 9개 구단을 넉다운시킨 지금의 기세라면 두산 베어스의 올 시즌 우승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단순히 1위 자리만 지키는 것도 아니다. 성적에 집착하는 야구가 아니라,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야구를 하고 있다. 사이클링히트, 노히트노런 등 대기록을 배출한 주인공도 두산 베어스다. 아울러 두산 베어스 특유의 ‘화수분 야구’는 올 시즌에도 김재환 등 보석을 어김없이 발굴했다.

요샛말로 ‘역대급’ 행보를 질주하고 있는 두산 베어스. 감독과 선수, 그리고 수많은 팬들이 있지만 아마도 가장 기쁜 사람은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일 듯하다.

박정원 회장은 지난 3월 두산그룹 회장에 등극했다. 박용만 회장의 뒤를 이어 두산그룹을 이끌게 된 것이다. 예상치 못한 시점에서의 ‘깜짝 승계’는 무엇보다 두산그룹의 ‘4세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박정원 회장에 대해선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함께 했다. 두산그룹은 지난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겪는 등 내부 사정과 분위기가 밝지 못했다. 이런 상황 속에 그룹을 총괄하게 된 박정원 회장에겐 인지도나 경력면에서 무게감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이 나왔다.

박정원 회장은 1985년 신입사원으로 두산산업에 입사해 여러 직급을 거치며 경력을 쌓았고, 2009년부터 두산건설 회장, 2012년부터 (주)두산 지주부문 회장을 맡아왔다. 차기 두산그룹 회장에 오를 것이란 점은 확실시 됐지만 시기가 이렇게 빠를 줄은 예상치 못했다. 박정원 회장이 과연 그룹을 잘 이끌어나갈지 재계 안팎에서 주목했다.

이런 가운데 올 시즌 두산 베어스의 거침없는 행보는 박정원 회장의 어깨를 한껏 가볍게 해주고 있다.

◇ 두산 베어스에 비친 박정원 회장의 철학 ‘사람이 미래다’

▲ 박정원 회장은 두산 베어스 구단주로서 구단 직원, 감독, 선수들을 살뜰히 챙기고 있다. <뉴시스>
박정원 회장은 지난 2009년부터 두산 베어스 구단주도 겸하고 있다. 단순히 직함만 가진 구단주가 아니다. 그는 자타공인 야구 마니아다. 2014년부터는 두산그룹 내 야구동호회 20개팀이 참가하는 ‘구단주배 야구대회’도 개최하고 있다.

박정원 회장은 구단 직원들은 물론 감독과 선수들을 살뜰히 챙기기로 유명하다. 매년 미국 전지훈련지를 찾아 격려하고, 개막전에 떡을 돌리는 건 기본이다. 평소 수시로 경기장을 찾아 응원하고, 선수단을 챙긴다.

특히 구단 구성원들의 마음을 이끄는 리더십이 인상적이다.

말단 사원에서 시작해 단장까지 오른 김태룡 단장에게는 얼마 전 ‘전무 승진’이란 큰 선물을 안겼다. 구단에 대한 헌신을 인정하고, 보답한 뜻 깊은 인사였다. 지난 5월에는 ‘100승’을 달성한 김태형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했다.

베테랑 투수 정재훈에게 우승 반지를 선물한 사연은 야구계에 큰 감동을 주었다. 2003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해 꾸준히 활약해온 정재훈은 지난해 별안간 구단을 떠나야 했다. 두산 베어스가 FA계약으로 롯데 자이언츠의 장원준을 영입했는데, 롯데 자이언츠가 보상선수로 정재훈을 지목한 것이다.

두산 베어스는 지난해 11월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 보상금을 주고 정재훈을 다시 데려오며 의리를 지켰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두산 베어스는 정재훈이 없던 2015년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정재훈에겐 너무나 아쉬운 일이었다. 이에 박정원 회장은 지난 5월 그에게 우승반지를 선물했다. 정재훈은 보답이라도 하듯 올 시즌 36세의 나이가 무색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포수 양의지와의 일화는 박정원 회장의 부드러운 리더십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포수인 양의지는 올 시즌 타자의 스윙 여부를 확인할 때 다른 포수들과는 다른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보통은 손가락으로 1루심 혹은 3루심을 가리키거나 손가락을 빙빙 돌리곤 하는데, 양의지는 손바닥을 펴고 정중하게 심판을 가리킨다.

이는 박정원 회장의 조언을 받아들인 행동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전지훈련장을 찾은 박정원 회장은 심판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제스처를 바꿔보는 것이 어떨지 제안했다. 작은 부분이지만, 긍정적인 변화다.

리더십 뿐 아니다. 구단 운영에 반영된 박정원 회장의 철학은 ‘사람이 미래다’라는 두산그룹 슬로건과 맞닿아 있다. 두산 베어스는 예전부터 선수 육성에 일가견을 보였다. 거액을 들여 외부에서 선수를 사오기보단, 신인으로 입단한 무명선수를 스타로 발돋움시키는 일이 많았다. 두산 베어스의 대표적인 별명이 ‘화수분 야구’인 이유다.

박정원 회장은 ‘화수분 야구’를 더욱 단단하게 다졌다. 그가 구단주로 취임한 뒤 두산 베어스는 젊은 스타선수를 여럿 배출했다. 선수 본인의 노력, 감독 및 코치의 육성능력, 구단 직원들의 지원 등이 어우러진 결과지만, 전체적인 기조와 지향점을 제시한 것은 구단주다.

박정원 회장은 지난 2014년 2군 전용연습장에 550억원을 투자해 확장 신축했다. 선수 육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덕분에 두산 베어스의 ‘화수분 계보’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박정원 회장은 자신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스타일이다보니 알려진 것도 많지 않다. 하지만 두산 베어스 구단주로서의 박정원 회장을 살펴보면, 부드러운 리더십과 확고한 철학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산그룹 회장으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지 이제 석 달. 아직은 ‘새내기 회장’인 그가 두산그룹을 두산 베어스처럼 ‘승승장구’로 이끌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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