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은진 기자]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인용이 잦다. 당 대표는 의원총회나 최고위회의에 앞서 모두발언을 하는데, 안 전 대표는 그날그날 주제에 맞는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운을 떼는 경우가 많았다.

인용의 범위도 넓다. 국회가 사회적 약자를 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는 “어느 외국 시인의 시에는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은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이라는 시구가 있다. 사람을 사랑하는 힘이 국회에 있어야 한다”며 시 구절을 인용했다. 대북정책과 관련해선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고별 강연에서 ‘대북 대화 통로의 중심은 미국·중국이 아닌 대한민국 정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정치는 책임지는 것이다. 막스 베버가 책임윤리를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제가 정치를 시작한 이래 매번 책임져야 할 일에서 책임을 져온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 일에 관한 정치적 책임은 전적으로 제가 져야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책임지고 대표직을 내려놓겠다.”

사퇴 기자회견문에서는 막스 베버를 인용했다. 그는 ‘막스 베버의 책임윤리’라고 쓴 메모지를 들고 와 앉았다. 짧은 사퇴 회견문에서 ‘책임’만 여섯 번 등장했다. 독일의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책에서 정치가가 갖춰야 할 중요한 자질 중 하나로 책임윤리를 꼽는다. 이는 안 전 대표의 저서인 ‘안철수의 생각’에도 언급돼있는 구절이다.

하지만 그가 ‘무엇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아직 리베이트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김수민·박선숙 의원의 혐의도 아직 입증된 게 없다. 모든 게 ‘진행 중’인 현 상황에서 안 전 대표가 책임을 지려는 것이 무엇인지 모호하다는 것이다.

안 전 대표의 사퇴로 박지원 원내대표가 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게 됐다. 박 비대위원장은 안 전 대표의 사퇴 직후 당 수습모드에 돌입했다. 의혹에 연루된 당사자들은 기소가 되면 처분할 방침이어서 ‘결과에 대한 책임’은 박 비대위원장의 몫이 됐다. “책임지겠다”고 물러난 안 전 대표가 외려 수습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한 모양새가 된 것이다.

잘 된 인용은 주장을 탄탄하게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지만, 잘못된 인용은 오해를 부른다. 막스 베버는 책임윤리에 대해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안 전 대표의 사퇴 여파로 국민의당은 기로에 서게 됐다. ‘인물난’ 이야기도 나오는 상황이다. 안 전 대표는 막스 베버의 책임윤리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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