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당 김동철 의원이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과 설전을 벌이자,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이를 진정시키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야당의원들의 매서운 질의가 이어진다. 국무총리나 각 부 장관들의 답변이 나오지만, 교과서적인 답에 점차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 고성이 나오고 싸움이 시작된다. 급기야 인신공격성 발언이 나오면, 회의는 아수라장 속에 정회한다. 국회 상임위나 본회의장에서 꽤나 자주 목격되는 장면이다.

좋게 말해서 ‘저격수’, 나쁘게 말하면 ‘쌈닭’ 국회의원들의 진가는 여기서 나타난다. 당의 입장 혹은 속한 파벌의 목소리를 대신 내주며, 체면손상도 마다 않고 적진으로 돌격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언론이나 여론의 집중공격을 받지만, 동료나 당 입장에서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 저격수의 필수조건, ‘큰 목소리’와 ‘두둑한 배짱’

지난 5일 열렸던 6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도 이른바 ‘저격수’들의 활약장면이 나왔다. 국민의당 김동철 의원이 박근혜 정부의 지역편중인사를 집중질타하자 새누리당 의원석에서 항의성 목소리가 나왔다. 김동철 의원이 이은재 의원을 직접 거론하며 “(대정부 질문에) 상관하지 말란 말이야. 할 말 있으면 나와서 하라”고 외치자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은 “왜 반말하시느냐. 사과하시라”며 거들고 나섰다.

김 의원이 반발하는 이장우 의원을 향해 “대전시민들은 왜 저런 사람을 뽑았을까”라고 소리를 높이자, 당사자인 이 의원뿐만 아니라 조원진·권성동·이은재 의원 등이 자리를 박차며 격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자리에 없었던 김태흠 의원까지 포함하면, 새누리당 ‘전위부대’로 불리는 의원들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 더민주에서는 박범계 의원 등을 비롯해 최근 상임위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는 표창원 의원이나 조응천 의원 등이 저격수로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다.

저격수로 등극하기 위한 조건은 누구보다 큰 ‘목소리’와 두둑한 ‘배짱’이다. 일단 목소리가 커야 상대를 압도할 수 있고, 다수에 전파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배짱’이다. 상대 당이나 세력의 집중포화를 주눅들지 않고 견뎌내야 하고, 무엇보다 여론의 질타도 홀로 받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보좌관은 “쉬워 보이지만 막상 나서기는 쉽지 않다.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모두 던질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정치투쟁이 ‘명분싸움’이라는 점에서 논리력도 필요하고 ‘흥행성’도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들 저격수가 특히 활약하는 무대는 상임위다. 국회상임위의 한 입법조사관은 “여야를 막론하고 전투력 높은 의원이 배치된 상임위는 정무적 내용이 담긴 법안을 처리하기가 사실 힘들다. 상임위가 만장일치제로 운영되기 때문”이라며 “각 정당들이 전투력 높은 의원들을 상임위에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이유”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실제 정무적 사안을 담은 법안은 상임위보다는 여야 원내지도부의 합의에 따라 가부가 결정되는 것이 다반사다.

◇ 순기능도 있지만… ‘정치불신’ 조장은 저격수의 역기능

▲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다수당의 법안강행처리와 이를 막고자 하는 소수당의 몸싸움이 치열했다. <뉴시스>
이른바 저격수나 쌈닭 국회의원들의 역사는 사실 우리 국회의 초기부터 같이 한다. 격동기 시대에 정치에 입문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도 반독재투쟁의 전면에 섰던 저격수 출신들이다. 가까이 17대 국회에서는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에 전여옥 전 의원, 차명진 전 의원 등이 있고, 열린우리당에는 BBK저격수였던 정봉주 의원이 있었다. 20대 국회에는 들어오지 못했지만 정청래 의원은 ‘당대포’를 자처하며 대여 공격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정치를 ‘이해관계의 조정’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저격수를 앞세운 투쟁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렇지 않아도 높은 국민들의 ‘정치불신’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는 저격수들의 활동반경이 다소 줄어들 전망이다. 최근 국회는 특권 내려놓기의 일환으로 헌법에 규정된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줄이는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상임위나 본회의에서 의원들의 발언이나 행동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정치투쟁의 장이 됐던 대정부 질문 등에 대한 제도개선도 논의되고 있다.

전날 본회의장 설전을 지켜본 더민주는 “정부여당의 무성의와 불성실한 답변태도도 한 몫 했지만, 현행 대정부질문 제도의 근본적인 한계에도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며 “의원 각자에게 주어진 질의 시간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국무위원들은 미리 준비된 답변만 기계적으로 나열하며 허비하는 방식으로 심도있는 질의과 생산적 토론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는 비효율적인 대정부질문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할 때가 됐다”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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