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메사르탄’ 성분이 함유돼 있는 고혈압 치료제 올로스타(왼쪽)와 세비카정.<사진=대웅제약>
[시사위크=백승지 기자] 고혈압 치료제 ‘올메사르탄’을 두고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오락가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11일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국내 제약업계에 고혈압치료제 ‘올메사르탄’ 성분 안전성 서한을 배포했다. 앞서 프랑스 보건당국이 해당 성분의 부작용 등을 이유로 의약품 명단에서 삭제한 조치를 두고 이 같은 사실을 국내 업체에도 알려 피해를 방지하고자 한 조치다. 식약처는 향후 검토 절차를 거쳐 필요한 안전조치를 결정할 계획이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그러나 약 2달 후 식약처가 들고 나온 해결책은 ‘주의사항 한줄 추가’였다. 식약처 결정을 두고 제약업계의 반발에 밀린 졸속처리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 외국은 의약품 제외, 한국은 경고문구만?

지난 7일 식약처 예고대로 국내 제약업계는 주의사항에 ‘만성흡수불량증-유사 장질환이 조직검사에서 확정될 경우 이 약을 다시 복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그러나 기존에도 제약업체들은 ‘중증 장질환’관련 문구를 제품설명서에 이미 표기해왔다. 식약처의 새 문구는 기존 문구를 조금 다듬는 식으로 내용을 추가‧수정한 것에 지나지 않아 사실상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셈이다.

문제는 해당 성분의 위험성이 해외에서는 속속 확인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프랑스 국립의약품청(ANSM)은 효과 미흡과 장질환 발생 위험성 등으로 올메사르탄을 의약품 명단에서 삭제한 상태다.

미국 역시 몇 해 전부터 올메사르탄 부작용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다. 미국 보건당국이 올메사르탄의 장질환 부작용 관련 안전성 서한을 배포한 것은 3년 전인 2013년이다. 또 복용환자에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의료진이 즉시 보고토록 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에 나서고 있다. 외국의 신속한 대응에 비해 이번 식약처의 안전성 서한 배포는 늦은 조치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안이 이러한데 국내에서는 대웅제약, 일동제약, 삼진제약 등 유명 제약사들이 위험성 경고 문구 한줄만 추가한 채 여전히 올메사르탄을 수입‧판매 중이다. 식약처 발표에 따르면 국내 올메사르탄 함유제제는 단일제 140개, 복합제 181개로 총 321개 제품이 허가된 상태다.

◇ 프랑스 참고한다더니…전문가 의견만 듣고 결정

이번 조치와 더불어 이해하기 힘든 것은 식약처의 해명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프랑스가 했다고 해서 우리도 그 조치를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지난 4일 안전성 서한에서 “향후 프랑스 보건당국의 조치 등 검토를 거쳐 필요한 안전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과는 딴판이다.

식약처의 태도가 180도 바뀐 것은 지난 5월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열고나서부터다. 대한고혈압학회 등 전문가들의 자문을 토대로 식약처의 결정이 내려졌다. 심의위원회에 참석한 대한고혈압학회는 지난 4월 식약처가 안전성 서한을 배포하자 ‘올메사탄 프랑스 이슈에 관한 답변서’를 식약처에 제출해 사실상 압력을 행사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한고혈압학회는 해당 답변서에서 중증 장 질환으로 꼽힌 ‘셀리악병’은 인종적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한국인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식약처 관계자도 “프랑스에서 우려되는 부작용이 국내에선 확인된 바 없다”며 비슷한 해명을 내놨다.

그러나 ‘셀리악병’의 경우 밀가루 등 글루텐 식사를 하면 알레르기 반응으로 나타난다. 원인이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글루텐 섭취에 기인한 발병 증세로 볼 때 서양과 동양의 인종적 차이가 아닌 식생활 차이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업계 관측도 나온다. 단순히 국내 발병 사례가 아직 없다는 이유로 추가 조사 없이 문제의 성분을 판매 허가하는 식약처에 졸속행정 비판이 이는 이유다.

식약처의 이번 결정으로 환자는 ‘주의사항’을 꼼꼼히 읽어보는 수밖에 없게 됐다. 식약처 관계자는 “관련 내용은 식약처 홈페이지에 다 공개돼있으니 의사‧약사 분들이 보시고 충분히 지도할 것이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식약처 차원의 복약지도 지침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 및 약사의 처방에 맡기겠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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