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지엠의 ‘철수설’ 및 ‘판매기지화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사위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한국지엠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크고 작은 움직임이 ‘국내 생산 축소’라는 방향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지엠을 향해 꾸준히 제기돼온 ‘철수설’과 ‘판매기지화설’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 스파크EV 단종설에 볼트는 수입

최근 한 매체는 한국지엠이 자사의 유일한 전기차인 스파크EV의 생산을 오는 8월부터 중단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저조한 판매 실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한국지엠은 해당 보도가 사실무근이라며 스파크EV의 단종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스파크EV는 하반기에도 생산해 판매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하반기 출시 예정인 전기차 볼트다. 스파크EV는 주행거리 등에서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볼트는 성능이 훨씬 안정적이다. 그런데 한국지엠은 이 볼트를 일단 수입 방식으로 들여와 판매할 예정이다. 전기차 시장이 아직 걸음마 단계인 만큼, 우선은 카셰어링 시장에 볼트를 투입해 보완점과 반응 등을 살핀다는 전략이다.

이 차의 국내 생산 여부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직 시장이 성숙하지 않아 판매량이 적기 때문에 당장 국내 생산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시계를 지난해로 돌려보자. 한국지엠은 판매가 부진했던 알페온 대신 임팔라를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에서 오랜 세월 꾸준히 사랑받아온 임팔라를 향한 기대는 컸다. 사전 계약 단계에서부터 줄이 늘어섰다.

문제는 판매 방식이었다. 알페온은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생산되던 모델이었지만, 임팔라는 우선 수입방식을 취했다. 임팔라가 좋은 반응을 얻자 노조 측은 국내 생산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임원들의 임팔라 차량의 공장 출입을 막는 등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지엠은 끝내 수입판매를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지엠의 판매량은 늘었지만, 부평공장의 생산 차종은 줄어들었다.

이런 가운데 스파크EV의 단종설이 흘러나오고, 볼트의 국내 생산 여부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짚어볼 대목이다. 볼트 역시 임팔라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물론 당장 볼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적다. 그러나 전기차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차세대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직은 시장 및 인프라 규모가 턱없이 작지만, 미래엔 자동차 시장을 이끄는 한 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년 내에 빠른 성장세를 보일 가능성이 충분한 시장이다.

◇ 서로 다른 입장, 커지는 불신

▲ 올해 새롭게 한국지엠을 이끌게 된 제임스 김 사장은 자동차 관련 경력은 없다. 대신 구조조정 전문가라는 평이 붙는다. <시사위크>
한국지엠의 의심쩍은 행보는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6월엔 한국지엠이 내년에 선보일 예정인 신형 캡티바가 수입방식으로 판매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또한 신형 크루즈 해치백 역시 수입방식을 취할 것이라고 전해졌다. 임팔라와 같은 방식이자, 볼트를 향한 우려와 같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일 뿐, 확정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영입돼 올해부터 한국지엠을 이끌고 있는 제임스 김 사장은 자동차 관련 경력이 전무하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오버추어코리아, 야후코리아 등 IT 업계에 몸담았다. 그에겐 ‘구조조정·기업회생 전문가’라는 꼬리표가 달려있다. 때문에 제임스 김 사장이 영입되고, 사장 자리에 오르자 그 의도에 물음표가 붙기도 했다.

최근 한국지엠을 둘러싼 일련의 ‘뒷말’들은 묘하게도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수입판매 증가와 구조조정이다.

사실 ‘철수설’과 ‘판매기지화설’은 그동안 한국지엠을 향해 꾸준히 제기됐다. 생산물량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계획이 담긴 문건이 공개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한국지엠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의심의 눈길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지엠이 호주에서 보여준 행보는 이러한 우려와 의심을 더 키운다. 지엠이 호주에서 운영하던 홀덴은 생산량 감소와 구조조정이 이어진 끝에 지난 2013년 공장철수가 결정됐다. 때문에 한국지엠 노조에서는 홀덴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이는 한국지엠의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우려 혹은 오해이기도 하다. 한국지엠이 수입판매 하고 있거나, 수입 판매설이 도는 모델은 모두 판매가 부진한 모델이다. 인건비 등 비용과 효율성을 생각하면, 수입판매가 훨씬 이득일 수 있다. 미국 지엠 본사가 한국지엠을 설립하며 노렸던 중국 등 아시아 시장 생산기지 역할 및 수출물량도 현재 많이 위축됐다.

하지만 회사 입장과 노조 및 지역사회의 입장은 다르다. 한국지엠은 공장이 있는 인천, 군산, 창원에서 지역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자동차 생산 공장은 삶의 터전이다. 그런데 이 공장의 생산규모가 줄어들거나 폐쇄된다면, 개인의 삶과 지역경제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결국 한국지엠의 확실한 의지표명과 소통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매번 강조하듯 떠날 계획이 없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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