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주에 방문했다가 군민들로부터 계란 맞는 황교안 국무총리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유토피아적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제시한 ‘대동사회’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다. 너무 이상적이어서 현실과 괴리가 큰 것도 사실이다. ‘남이 잘되는 것이 곧 내가 잘되는 사회’, ‘투쟁이 아닌 상생의 사회’라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박원순 시장의 대동사회와 같은 이상적 정치철학이 지금 정치권에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현재의 정치권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단기적 ‘이익’에만 매몰돼있기 때문이다. ‘표 만능주의’에 빠져 지역 이기주의에는 충실하면서, 국가 전체이익을 위해 지역민을 설득하려는 용기 있는 정치인은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사드의 성주배치 논란이다. 국가안보를 위해 사드도입을 주장했던 새누리당 의원들은 정작 자신의 지역구에 배치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였다. 전형적인 ‘님비’(not in my backyard)다. “공직자로서 자격도 없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심지어 TK의원 20여명은 정부를 향해 “인센티브를 달라”고 연판장을 돌리기에 이르렀다. 이는 ‘안전하다’는 정부입장과 달리 사드가 혐오시설이며,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드를 받는 대가로 인센티브를 요구할 리가 없지 않은가. 국익을 위해 지역민을 설득하기는커녕, 국회의원이 갈등에 기름을 붓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식이어서야 국가 거버넌스가 제대로 이뤄질 리가 없다. 영남 신공항이나 밀양 송전탑 논란도 마찬가지다.

이는 정치철학의 부재에서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정치철학이 없다보니 선거에서 “내가 되면 잘 살게 해주겠다”는 1차원적 포퓰리즘만 난무했다. 김무성 전 대표는 재보선 유세 당시 “새누리당의 후보가 당선되면 국가예산을 많이 타서 이 지역을 발전시킬 것”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한정적인 국가예산을 두고 제로섬 게임을 하겠다는 의미다. 당면한 선거를 이기기 위해 ‘나만 잘살면 돼’,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이기주의를 정치권이 조장하고 편승한 것이다.

더민주 등 야권역시 다를 바 없다. 자신이 할 나랏일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지지를 호소하기보다 ‘표’라는 현실적 이유에서 쉬운 길을 택한 예는 많다. 4.13 총선에서 야권의 한 후보는 공약으로 ‘아파트 앞 신호등 설치’, ‘학교 화장실 개선 예산확보’ 등 구의원급 공약을 자랑스럽게 내걸기도 했다. 물론 지역민으로서는 당연히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국민전체의 대표’라는 국회의원이 내걸 공약은 사실 아니다. 이렇게 정치철학 없이 표를 얻기 위한 ‘쉬운 길’만을 택한 결과는, 갈등조정 기능을 상실한 정치권이다.    

지지자들만을 열광시키는 정치는 쉽다. 동시에 쉬운 정치로는 절대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역사적 경험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반대파를 설득하는 정치가 필요한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남의 잘 사는 것이 내가 잘 사는 것’이라는 대동은 새로운 정치담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처절하리만큼 ‘현실적’인 정치판에 박 시장의 ‘이상적 정치철학’을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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