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구조개선 전문가’로 통하는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이 ‘재벌저격수’라는 프레임에 갇히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사진=김현수 기자>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20대 국회 개원 후 꺼졌던 ‘경제민주화’ 불씨가 살아나고 있다. 여야의원들은 앞 다퉈 경제 관련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뒷전으로 밀려났던 대기업 규제 강화 법안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발의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재계는 ‘긴장 태세’다.

특히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재계의 ‘요주의 인물’로 꼽히고 있다. 20년간 시민단체와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등에서 재벌구조개혁운동을 펼쳐온 채 의원은 이번에 비례대표 6번을 달고 국회에 입성했다. 벌써부터 항간에선 ‘재벌저격수’라는 별명까지 붙였다. 물론 그는 별명이 부담스런 눈치다. 그리고 ‘재벌저격수’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시사위크>에선 지난 19일 국회 집무실에서 채 의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이 현 일감몰아주기 규제법의 한계점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사진=김현수 기자>

- 20년간 기업지배구조 개선 운동에 매진해오다 국회의원으로 깜짝 변신했다. 소회가 남다른 것 같다.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사무실을 연구실에서 국회로 옮겼을 뿐이라는 마음이다. 그전까진 시민운동 차원에서 ‘기업 지배구조개선’을 위해 힘썼다면, 이제는 입법자의 신분으로서 그러한 노력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양한 재벌개혁 과제를 힘입게 실천할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 그간의 활동 이력 때문에 ‘재벌저격수’로 활약할 것이란 기대가 많다. 이런 별칭에 부담을 표했는데, 왜 그런가. 
“일종의 ‘프레임 덧씌우기’ 같아서 부담스럽다. 무조건 기업을 못 살게 굴고, 옥죄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이 뒤섞인 별칭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부 언론에선 나를 두고 ‘반시장주의자’나 ‘재벌 해체주의자’가 아니냐는 표현까지 썼다. 이같은 반시장‧반기업 ‘이미지 덧씌우기’는 합리적인 입법 활동을 방해한다고 보고 있다.

나는 시장과 기업이 잘 되길 바라는 사람이다. 재벌이 해체되길 바라는 사람도 아니다. 다만 불공정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돼 시장에 올바른 질서가 자리 잡고, 그것이 회사와 주주 가치 개선으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 하지만 기업들은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국회 입성 후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 등 재벌 개혁 정책부터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게 있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은 ‘기업’이 아니라, 오너 일가다. 흔히 오너 사적 편취 행위에 대한 규제를 기업에 규제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내부거래도 마찬가지다.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가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 내부거래를 통해서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게 총수 일가 일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 현행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실효성이 없다고 보는 것인가. 
“그렇다. 현행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상증세법상 과세와 공정거래법상 규제가 나눠진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현재로선 큰 규제 실효성을 갖고 있지 않다고 보고 있다. 총수일가와 기업들은 회사 간 합병·분할, 주식매각 등을 방법을 동원, 규제를 속속 빠져나가고 있다. 공정위는 별다른 성과 없이 1년 넘게 전수조사만 진행하고 있다. 이에 최근 규제 요건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당 차원에서 마련해 추진키로 했다.”

▲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현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진=김현수 기자>
-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가장 큰 구조적인 문제가 무엇이라고 보나.
“소유 지분만큼 권한을 행사하고, 권한을 행사한 만큼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게 하나도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소수 지분을 갖고도 100%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게 우리나라 재벌구조다. 20년 전부터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왔고, 고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왔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 결국은 오너 한 사람에 모든 의사결정이 좌지우지 되는 구조가 문제라는 건데. 
“그렇다. 우리나라처럼 오너리스크에 취약한 나라도 없다. 재벌 총수들이 구속이라도 되면, 기업들은 투자를 비롯해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앓는 소리를 한다. 그 말은 ‘우리는 총수의 전횡적인 의사 결정을 따를 수 없다’라는 것은 스스로 증명하는 꼴 밖에 안 된다.”

- 이 같은 폐해를 막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 있나.
“우선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오너 독단이 아닌, 이사회에서 의사결정과 경영 감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독립성이 확보돼야 한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되고 있는 게 우리 기업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소액 주주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물론 일반적인 개미 투자자들에게 이를 일일이 요구하긴 어렵다. 그건 기관투자자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기관투자자들이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경영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돼야 한다.”

- 그렇다면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의 의결권도 강화돼야 한다는 말인데.
“정부의 입김에서 완전히 벗어나긴 어렵겠지만, 일반적인 투자에선 자체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결권 행사 행동강령)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 국민연금의 의결권 강화에 대한 논의가 수년전부터 계속돼왔다. 특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으로 이 문제가 더욱 부각된 바 있다. 당시 찬성표를 던진 국민연금의 결정을 어떻게 판단하나. 
“삼성물산 합병의 경우, 주주로서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고 결국 막대한 평가 손실을 보는 사태로 이어졌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이 삼성물산 합병 시너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현수 기자>
-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지난해 이맘 때 삼성물산과 옛 제일모직 합병안이 주총에서 논란 끝에 통과됐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합병 시너지도 당초 기대를 크게 밑돌고 있다. 결국 주주들만 손해 본 꼴이 아닌가.
“주식 가치는 고정돼 있지 않다. 1년간의 상황만 돌이켜보면 삼성물산 주주들이 손해를 본 것은 맞다. 앞으로 상황은 또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당시의 합병 시점이나 의사 결정이 최선의  상황은 아니었다고 본다. 삼성물산의 주가는 떨어지고, 제일모직은 고평가돼있는 시점이었다.

결국 합병 시점은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율을 강화할 수 있는 적절한 때를 찾은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모든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결정한 때는 아니었다고 본다.”

- 통합 삼성물산 출범 이후, 주가는 주주들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어떻게 보나.
“기업의 가치는 시장의 평판에 의해서 결정됐다. 삼성은 합병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삼성물산 개별 기업에 대한 신뢰도 하락했지만 삼성그룹 자체에 대한 신뢰가 추락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 투자했던 외국인투자자들이 떠났다.”

- 앞으로의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어떻게 전망하나. 
“삼성은 지난해 삼성물산 합병 사태로 시장에 호되게 당했다. 앞으로 신중하게 기할 것으로 본다. 지주회사로 재편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형제간 분리 경영이 이뤄진다면, 지주회사 체계로 전환하면 편리할 것으로 보인다.”

- 금융 쪽 현안으로 화제를 돌려보자. 가장 뜨거운 이슈는 ‘구조조정’이다. 그 중 대우조선해양 사태의 파문이 크다. 분식회계와 각종 비리, 국책은행의 부실 감독 등 다양한 문제가 드러났다.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금융당국과 정부가 무능하고 무책임해서 발생한 일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는 여전히 모든 정보를 틀어쥐고 알려주지도 않고 있다. 감출수록 무능과 무책임을 확대하는 꼴만 될 뿐이다. 사태 해결을 위해 지금이라도 모든 자료를 공개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이 현 대우해양조선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의 무능론을 강하게 설파했다. <사진=김현수 기자>
-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은 성과주의 도입에 논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맞서 금융노조가 총파업을 선언했는데.
“성과연봉제 도입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를 도입하는 방식이 너무 독선적이다. 노조와의 대화는 무시한 채 추진되다 보니, 노사 간 반목만 커지고 있다.”

- 마지막으로 향후 의정활동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국회 개원 후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당분간은 선택과 집중을 할 방침이다. 지배구조 개선, 일감몰아주기 등에 집중해 법안을 추진하고 그 다음에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 차곡차곡 활동을 넓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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