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원장.
-우석대학교 초빙교수
-민주평통 자문위원
-前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시사위크]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제31회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임박했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을 비롯한 세계의 거물급 인사들이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다. 비록 브라질의 올림픽 준비상태가 최악이기는 하지만 세계인의 축제인 것만은 분명하다. 개인적으로는 복더위와 정치적 짜증을 잊기 위해서라도 빨리 올림픽이 시작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북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계적 차원의 제재, 찜통더위, 부족한 생활 등으로 짜증이 배가돼있는 상황에서 북한 선수들이 금메달을 획득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청량제는 없기 때문이다.

‘스포츠광’인 김정은도 정치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북한 선수들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2012 런던 올림픽 때 20위에 올랐으니, 이번엔 더 좋은 성과가 나와 자신의 위상이 높아지길 기대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과거 많은 독재자들은 스포츠를 정권이나 체제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소위 3S 정책 중 하나인 스포츠는 잘만하면 ‘대박’을 칠 수 있다. 금메달을 딴 선수가 세계로 중개되는 인터뷰를 통해 그 공로를 최고지도자에게 돌리면 힘들이지 않고 자신을 국내외에 선전하게 된다. 국내 방송은 이를 계속 반복 방송함으로써 정치적 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 선수에게는 공화국 영웅, 노력영웅 칭호를 주고 아파트, 외제자동차, 연금 등의 파격인 대우를 해준다. 내적으로는 ‘영웅따라배우기 운동’을 실시한다.

북한의 대표적 사례가 마라톤의 정성옥, 유도의 계순희 등이다. 김정은 시대에는 역도선수 염윤철이 있다. 그는 2014년 9월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계란에 김정은 원수의 사상을 입히면 바위도 깰 수 있다”고 말해 세계를 놀라게 했고, 김정은에게는 확실한 ‘눈도장’을 받았다.

김정은은 2012년 등장하자마자 “사회를 밝게 만든다”며 롤러스케이트장, 놀이공원, 스키장 등을 건설했다. 그는 체육강국을 통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모토로 내세웠다. 사상강국, 정치강국, 군사강국 등은 이미 선대에서 완성됐고, 경제강국 건설만 남았는데 그 전에 체육강국을 먼저 만들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음악강국’ 건설이었다. 3S+1S(Song)=4S인 것이다.

김정은은 2014년 10월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북한선수단이 7위에 오르자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 등 ‘3인방’을 폐막식에 전격 참가시켰다. 그리고 여자 축구선수들이 201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자 부인 리설주와 함께 직접 공항까지 마중 나가 축하하고 기념사진을 찍기까지 했다. 김정은이 체육강국 정치의 성공을 판단한 것이었다.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성과를 내는 요인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무엇보다 ‘사기’가 중요하다. 북한선수들이라고 해서 세계정세를 모를 리 없다. 자신들의 ‘조국’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는 국제경기에 다녀본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대부분 사기를 떨어뜨리는 요인들이다. 어느 나라도 북한을 따뜻하게 맞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선수들부터 잘 알 것이다. 선수들의 마음도 흔들릴 수밖에 없고, 자칫 ‘탈출’을 생각하는 선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김정은도 이를 모를 리 없다. 선수들의 마음을 다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직접 갈 수는 없다. 대안은 무엇인가? 자신의 분신과 같은 최룡해를 보내는 것이다.

최룡해는 자타가 공인하는 김정은의 ‘오른팔’이자, 어려울 때마다 앞장선 거물급 ‘구원투수’다. 그는 토대, 충성심, 경륜, 국제적 감각, 친화력(인민성), 사교성 등 북한이 간부에게 요구하는 거의 모든 덕목을 갖췄다. 더구나 최룡해는 1980년대 초반부터 ‘청년’ 사업에 뛰어 들어 큰 성과를 이룬 바 있는, ‘청년’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청년들의 마음을 잘 안다. 리우 올림픽에서 그가 선수들에게 어떤 위무책(위로하고 어루만져 달램)을 발휘할 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최룡해는 정치인이자 스포츠인이다. 그는 숙청된 장성택의 뒤를 이어 2014년 9월부터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왔다. 2012년에 신설된 이 기구는 대외적으로는 국위를 선양하고, 대내적으로는 주민들의 애국심과 자긍심을 고취하는 한편 체육의 대중화를 통한 체제 결속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최룡해는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준비위원장을 맡은 경험이 있고, 조선축구협회 위원장과 조선 청소년태권도협회 위원장을 지내는 등 스포츠 분야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최룡해의 역할은 선수 사기진작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을 구하는 일도 해야 한다. 그에게 주어진 수단은 체육외교다. 오늘날 체육외교는 국가 간, 정부 간 외교 못지않게 중요하다. 역사적으로도 성공적인 스포츠 외교가 국가관계의 정상화를 견인한 적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1년 4월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다.

최룡해는 국제적 감각 또한 인정받아 러시아, 중국 등을 방문해 푸틴, 시진핑과 만난 바 있다. 이것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다음가는 화려한 경력이다. 최룡해는 외부적으로 풍기는 체취는 ‘빨갱이’ 같지가 않다. 여느 자본주의국가의 부자 같은 이미지다. 그래서인지 음주가무, 여성 등에 대한 편력이 강하다. 이로 인해 ‘철직’도 당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로부터 완전 밀봉 당하다시피 된 김정은 입장에서는 이런 ‘자유국가 친화적’인 인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브라질 리우 올림픽과 같은 세계적인 무대에 북한대표로 최룡해가 등장하는 것은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하다. 중국 공산당사에서는 주은래가 모택동의 강성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역할을 했다. 물론 환경이나 위상은 전적으로 다르지만. 최룡해는 ‘강력적 교시’ 관철을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과연 얼마나 많은 국가의 정치인들이 최룡해와 체육이외의 의제를 두고 대화를 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따라서 최룡해에게는 ‘기회’이자 ‘위기’의 리우 올림픽이 될 수 있다. 올림픽 경기와 함께 최룡해가 막중한 두 가지 업무를 얼마나 잘 해낼지를 같이 관전해보면 재미는 배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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