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당국 소방헬기 구매사업 입찰 원천 배제
소방당국 "자격미달, 안전성 문제 우려"

▲ 국산 헬기 '수리온'이 최근 소방당국의 소방헬기 구매사업 입찰에 배제되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소방당국은 수리온의 '안전'을 문제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국산 헬기 ‘수리온’이 연일 굴욕을 당하고 있다. 현재 엔진결함 문제로 대대적인 교체작업 중인 가운데, 최근 소방당국의 소방헬기 구매사업 입찰마저 원천 배제돼서다. 소방당국은 ‘안전’을 문제 삼았다. 수리온을 생산하고 있는 한국항공우주산업(이하 KAI) 측은 “안전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소방당국이 입찰조건을 바꿀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 소방당국, 소방헬기 자체구매 결정… ‘수리온’ 입찰 못한다

서울소방재난본부 119특수구조단은 7월 중순 조달청 나라장터(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를 통해 ‘다목적 헬기 1대 도입’ 입찰을 위한 사전규격을 발표했다. 이 사업은 약 300억원 규모 헬기 1대를 도입하는 내용이다.

119특수구조단이 입찰에 참여 조건으로 내건 ‘사전규격’은 크게 △국토부 표준증명 획득 △카테고리 A급(한쪽엔진 이착륙 기능) 두 가지다.

소방본부에 따르면 ‘국토부 표준증명’은 소방헬기 등 민간용 항공기의 운항 안전성을 증명하는 절차다. 소방헬기는 민간항공기로 분류되는데, 민간항공기는 국토교통부나 미연방항공청(FAA), 유럽항공안전기구(EASA)에서 ‘형식증명’을 받아야 한다.

소방본부는 이와 더불어 ‘카테고리 A등급’을 입찰 조건으로 내걸었다. ‘카테고리 A등급’은 엔진 한 기가 작동 안돼도 안전비행이 가능해 계획대로 이·착륙이 가능한 헬기를 지칭한다. 초고층 빌딩이 많고 인구가 밀집된 서울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카테고리 A등급’은 필수사항이라는 게 소방본부 설명이다.

KAI는 이 같은 조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다. KAI는 국토부의 ‘형식증명’이 없는데다, ‘카테고리 B등급’에 해당한다. 국토부에 따르면 카테고리 B등급 헬기를 ‘엔진이 정지하는 경우 체공능력을 보증하지 못하며 이에 따라 계획되지 않은 착륙을 할 수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소방본부가 제시한 조건대로라면 국산 헬기인 ‘수리온’은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

수리온의 경우 애초 군용으로 설계·제작돼 방위사업청이 인증한 형식증명만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국토부로부터 ‘특별감항인증’을 발급받는 상태다. ‘특별감항인증’은 국토부 표준증명을 받지 않은 항공기를 국가기관에서 사용해야할 때 안정성을 인증하는 절차다. KAI 측은 수리온이 국토부의 형식증명이 아닌 특별감항인증을 발급받아 소방헬기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만큼 안전성을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KAI 측은 특히 소방당국이 ‘카테고리 A등급’의 헬기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수리온을 배제하고 해외 특정기종을 구매하기 위해 입찰 참여의 벽을 과도하게 높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급기야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까지 나서 서울시 119특수구조단의 소방헬기 도입사업에서 국산 헬기 수리온의 구매를 재검토해달라고 시의회에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는 7월 29일 서울시의회에 ‘소방헬기 국산 수리온 도입 검토 건의문’을 보내 “수리온은 우수한 성능과 안전성이 검증된 헬기”라며 “서울시 119특수구조단이 국산헬기 구입을 재검토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 수리온 헬기가 신호탄을 발사 하고 있는 모습(왼쪽), 주기어박스 위성기어.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의 외국산 부품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확인돼 군 당국이 운항 제한 조치를 했다. <방위사업청 제공>
◇ “수리온, 알려지지 않은 안전사고 더 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119특수구조단이 ‘자체구매’를 결정해서다.

<시사위크>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서울소방재난본부 119특수구조단은 조달청의 2가지 권고사항(△국내에서 생산되는 물품이 있는 경우 내자구매를 하라 △자체구매를 검토하라) 중 ‘자체구매’를 확정했다.

소방본부 관계자는 4일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조달청으로부터 ‘의견서 검토 요청(2가지 권고)’를 받고 심의회(22일)를 거쳐 자체구매를 확정했다”며 “자체구매는 조달청을 통해 조달구매를 하는 게 아니라 서울시에서 공고를 내고 구매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체구매를 결정한 만큼 입찰조건이 ‘수리온’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뀔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진 셈이다.

소방본부 측은 이어 “수리온의 경우, 최근 엔진결함 문제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사고 사례가 7~8가지 있다”며 “올해만 해도 군에서 2차례 운항정지를 시켰다. 수리온이 여러 기능을 할 지 모르지만,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사전규격에 이런 부분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업계 일각에서는 아쉬움을 드러내는 목소리도 있다. 무려 1조3000억원이 투입된 국책사업으로 탄생한 수리온이 국내시장에서 홀대받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기관이 외산 헬기를 선호함으로써 국산항공기에 대한 대외 신뢰 저하가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소방본부 관계자는 그러나 “국민의 안전을 위한 일에 과도한 애국심 마케팅은 곤란하다”며 “지난해 강원도에서도 헬기를 구매하면서 우리와 같은 판단을 했다. 최근 부산에서도 헬기 구매와 관련, 같은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10~15년 후에는 수리온 선택에 크게 어려움이 없겠지만, 아직까진 무리가 따른다”고 말했다.

서울소방본부 119특수구조단는 이달 중 서울시에 소방헬기 입찰에 따른 계약의뢰를 할 예정이다. 이후 40일간의 공고를 통해 입찰 및 평가를 실시하고 10월말이나 11월초 낙찰업체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수리온은 최근 가장 중요한 엔진 부품에 문제가 생겨 교체작업 중이다. 방사청에 따르면 수리온은 프랑스 ‘에어버스헬리콥터(AH)’사가 제작한 주 기어박스를 사용하는데, 지난 4월 같은 부품을 탑재한 노르웨이 헬기가 운항 중 주기어박스 결함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동종 부품을 사용하는 수리온 역시 예방 차원에서 운항 제한 조치를 하고 부품 교체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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