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 윤길주 편집인.
[시사위크=윤길주 편집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이하 존칭생략)의 ‘하산’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아니, 이미 현실정치에 깊숙이 발을 담갔다고 보는 게 맞다. 그는 머물고 있는 전남 강진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 국민의 간절한 염원과 소망을 많이 배웠다. 저에게 필요한 용기를 줬다. 그 용기를 국민에게 꿈과 희망으로 돌려드리겠다.” 사실상 정계복귀를 선언한 셈이다.

손학규는 2014년 7월30일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하자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강진 백련사 토굴로 들어갔다. 그가 그곳에서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한데 대해 말이 많았다. 정계은퇴를 했으면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살지 굳이 강진까지 내려갈 필요가 있었냐는 거다. 정치를 좀 안다는 사람들은 그가 분명 때가 되면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그 예상은 적중하고 있다.

하산이 임박하자 그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여러 정치인이 강진을 찾아가고, 박지원은 국민의당에 들어와 안철수와 경쟁하라고 부추기고 있다. 심지어 새누리당에서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호들갑에 휘둘릴 정도로 그가 어리석진 않을 것이다. 그에겐 뼈아픈 학습효과가 있다.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한 후 그는 야권의 유력한 정치지도자가 됐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야권 정치판에서는 그를 ‘얼굴마담’ ‘불쏘시개’ 정도로만 써먹었지 한 식구로 대접하지 않았다. 안방 열쇠는 내주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손학규가 한나라당을 탈당하자 ‘보따리장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친노 진영에서 지금도 이 말은 유효하다.   

지금의 정치지형에서 손학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누가 뭐래도 ‘문재인당’이다. 이변이 없는 한 문재인이 2017년 대선 후보가 되는 게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민의당은 ‘안철수당’이다. 모든 의사결정이 안철수를 정점으로 수직계열화 돼 있다. 두 당이 손학규의 상품성을 활용하기 위해 아랫목 한 자리를 내준다 해도 잠깐이다. 곁불을 좀 쬐다가 내년 대선후보 경선 때를 전후해 용도폐기 될 가능성이 크다. 
 
‘손학규 신당’을 만든다? 어림없는 일이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중 10여명 안팎이 손학규계로 분류된다. 이들 중 몇 명이나 손학규를 따라갈지 의문이다. 그들에겐 의리보다 다시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게 먼저다. 국민의당엔 그의 인맥이랄 게 아예 없다. 학자 몇 명과 총선에서 떨어진 사람들, 국회의원 몇몇이 모여 뭘 하겠는가. 역사가 증명한다.

손학규는 이런 상황에 대한 수읽기 정도는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뭘 믿고 하산을 결심했을까. 야권의 심장인 호남 민심을 잡을 수 있다고 계산한 것 같다. 그가 굳이 전남 강진을 칩거지로 택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호남을 근거지로 삼아 후일을 도모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호남은 대권주자를 중심으로 봤을 때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다. 국민의당이 지난 총선에서 호남을 석권했지만, ‘대권주자 안철수’에 대해선 못미더워하고 있다. 그의 지지율이 10% 안팎에서 공회전을 계속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재인에 대한 호남의 시선은 차갑다. 지난 총선에서 “호남이 버리면 정계를 떠나겠다”고 배수의 진을 쳤지만 더민주당은 호남에서 참패했다. 문재인에 대한 호남의 비토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는 결과다.

호남 민심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정권교체다. 누구라도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다면 밀어줄 태세다. 손학규가 그 희망을 보여 주면 민심이 움직일 것이다. 호남에서 손학규 지지율이 내년 초중반까지 문재인, 안철수보다 높을 경우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두 당에서 이탈자가 나오고 정치판은 새로 짜일 게 분명하다. 이 기회를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정치인 손학규’의 운명을 가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강진에서 어떤 플랜을 세우고, 내공을 얼마나 쌓았는지 검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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