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비정규직노조 서울경기지부 강서지회 조합원들이 용역업체 관리자의 부당한 행태와 열악한 근무여건 등을 고발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공공비정규직 노조 제공>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전국 공항을 운영하는 한국공항공사는 전통적인 ‘알짜 공기업’이다. 최근 몇 년 새 ‘부실공기업’ 논란이 불거지는 동안에도 12년 연속 흑자를 이어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김포공항은 한국공항공사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다른 지방공항이 기록한 적자까지 메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김포공항에서 고객 편의를 위해 최일선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김포공항을 ‘지옥’이라 호소하고 있다.

◇ 2016년 김포공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김포공항에서 청소와 카트관리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 9일 국회 정론관에 섰다.

그들이 밝힌 내용은 얼마 전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개·돼지 발언’만큼이나 충격적이다. 한국공항공사 퇴직자 출신인 용역업체 관리자로부터 욕설과 막말, 비인간적인 대우, 심지어 성추행까지 당했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공공비정규직노조 서울경기지부 강서지회 측은 “회식 후 노래방에서 관리자가 비정규직 여성의 가슴을 멍이 들도록 주무르는 일도 있었다. ‘아들이 둘이라며? 부부관계를 두 번만 했나?’ 같은 성희롱이나 야유회에서 ‘다 일어나서 춤춰라. 안 추면 이름 적어서 벌점 주겠다’는 막말도 있었다”고 밝혔다. 한 관리자는 뒤늦게 성추행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고됐지만, 문제를 일으킨 뒤에도 버젓이 일하고 있는 관리자들이 많다는 증언이다.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와 열악한 근무환경도 문제다. 정부는 공공기관 용역근로자 임금에 대한 지침을 두고 있지만, 이들의 임금은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상여금 지급 부문을 조작해 체불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노조 탈퇴를 종용하고, 노조의 쟁의 행위를 방해·협박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도 벌어지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 용역업체 바뀌어도, 관리자는 한국공항공사 퇴직자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한국공항공사와 용역업체의 수상한 ‘연결고리’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게 비정규직 노조의 시각이다.

현재 청소·카트관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속한 용역업체는 한국공항공사 출신이 관리자를 맡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1월, 3년 용역계약을 따냈다. 이전 용역업체에서 현재 용역업체로 바뀌었는데, 한국공항공사 출신의 관리자는 바뀌지 않았다.

손경희 지회장은 “말 그대로 낙하산이다. 한국공항공사가 김포공항에서 16개의 용역계약을 맺고 있는데, 모두 이런 식으로 알고 있다”며 “용역업체가 바뀌어도 관리자가 한국공항공사 출신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다른 용역업체 측 직원은 얼굴도 보기 힘들었다”고 밝혔다. 이런 구조 속에서 용역업체 관리자들의 폭언과 욕설, 성추행, 모욕적인 대우, 그리고 열악한 근무여건 등의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한국공항공사 측도 퇴직자들이 용역업체 관리자를 맡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한국공항공사 관계자는 “몇몇 용역업체에서 퇴직자가 관리자를 맡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임원 출신은 규정상 제한이 있지만, 직원은 그렇지 않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조가 제기한 임금 등 근무여건 부분에 대해서는 “용역업체와 노조의 문제”라며 “우리가 직접 근로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며, 용역업체 일에 개입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 김포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휴식 공간. 기자회견을 가진 뒤 이 공간마저 빼앗겼다고 한다. <공공비정규직 노조 제공>
◇ 끊이지 않는 낙하산 논란

노조가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한 ‘낙하산’은 사실 한국공항공사에 그리 낯선 단어가 아니다.

2013년 한국공항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김석기 전 사장은 내정 단계에서부터 낙하산 논란 등 거센 반발에 휩싸였다. 그는 과거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지냈으며, 재임 시절 발생한 용산참사로 옷을 벗었다. 재기의 발판이 된 것이 한국공항공사였던 것이다.

진통 끝에 한국공항공사에 자리를 잡은 그는 2년여 만인 지난해 12월 돌연 사퇴했다. 총선출마를 위해서였다. 경주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출마한 그는 현재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다.

빈자리를 채운 사람이 성일환 현 사장으로 공군 참모총장을 지냈다. 공군 출신인 탓에 낙하산이라는 지적은 비교적 덜 받았으나, 그렇다고 낙하산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인물로 보기도 어렵다.

김포공항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 김모 씨는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성일환 사장을 향한 호소문을 읽어내려갔다. “성추행을 비롯, 온갖 비리들이 난무하는 이곳이야 말로 비정규직의 지옥이었습니다. 한국공항공사에 수없이 애절하게 하소연도 해보고 몇 번을 외쳐봤지만, 우리 미화원을 우습게 보는 것 같습니다. 성일환 사장님, 사장님이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사장에서부터 용역업체 관리자까지,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는 김포공항이 언제쯤 ‘비정규직의 지옥’이란 오명을 벗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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