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범 전 국방홍보원장.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바람 잘 날이 없다. 그뿐인가. 이젠 꼬일 대로 꼬인 난맥상을 드러내보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첫 단추부터 잘 못 꿰어진 것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자승자박(自繩自縛)이 아닐 수 없다.

온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홍만표 변호사, 진경준 검사장, 우병우 민정수석 등 이른바 ‘홍·진·우 사건’의 와중에 등장한 사드는 처음부터 단순한 무기체계 이상의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문제였다.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을 공중에서 격추시키는 무기체계는 말처럼 단순하지가 않고, 이웃 중국과 러시아까지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외교,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미국은 한반도에 사드배치 문제를 시간을 두고,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진행해 왔다. ‘사드’라는 말이 등장한 지 수년이 지난 후에도 쉽사리 한반도 배치 문제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러고도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쳐 한국인들에게 사드가 어느 정도 낯설지 않을 때쯤을 D-데이로 잡았다. 그리고 사드배치 발표 전과 후에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놓고 치밀하게 시나리오를 준비했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 측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우리 국방부는 사드 문제에 대해 그동안 먼 산 바라보 듯, 남 얘기하듯 한 태도를 취하다가 갑자기 사드를 배치해야겠다고 발표를 해 버린 것이다.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존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내린 불가피한 결단”이라는 것이다.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권에서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더민주당도 당론으로 채택하지는 않았지만 반대 의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 가운데 마침내 사드배치 지역이 경북 성주군으로 발표되자 여론은 벌집을 쑤신 듯 들끓었다. 성주사드배치저지투쟁위원회는 “성주 내 어떤 지역에도 사드 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삭발 시위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경북 지역 출신 새누리당 초선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베풀면서 한 말이 화근이 됐다. 8월 4일 박 대통령은 “성주 군민들의 불안감을 덜어드리기 위해 성주군에서 추천하는 새로운 지역이 있다면 면밀히 조사 검토하고, 그 조사 결과를 정확하고 상세하게 국민께 알려 드리겠다”고 말했다(이완영 의원 전언).

대통령의 발언은 즉각 ‘사드 재배치 논란’으로 확산됐다. 해당 부처에서는 입장문도 발표했다. “해당 지자체에서 다른 부지의 가용성 검토를 요청한다면 평가기준에 따라 검토하겠다”는 것이었다. 배치 지역을 옮길 수 없다는 기존의 입장과는 다른 것이었다.

뜻밖의 사태를 맞아 청와대가 즉각 진화(鎭火)에 나섰다. “성주 군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의미에서 한 발언으로 재검토라는 것은 너무 강하다”고 해명했다. 이를 보고 국방부는 3시간 만에 “성주 포대가 사드배치 최적지라는 기존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해프닝을 연출한 것이다.

7월 8일 최초 발표 이후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과정을 보면 글자 그대로 우왕좌왕, 오락가락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이렇게 혼선이 생기게 된 원인은 국가안보에 관한 중대 사안을 국민 여론과 의회를 완전히 배제한 채 대통령 혼자서 결정하고 추진한 데서 비롯된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의 말 한 마디가 엉뚱한 곳으로 확산될 위기의 순간 돌연 호재(好材)가 나타났다. 특히 청와대 입장에서는 ‘울고 싶던 차에 뺨 때려주는’ 격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초선의원 6명이 사드 배치와 관련, 중국을 방문하겠다고 한 것이다. TK 지역 의원들과 점심 잘 먹고 나서 ‘사드 재배치’ 운운하는 쪽으로 혼선이 빚어지고 있던 참이었으니 ‘가뭄에 단 비’였을 것이다.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굴욕적인 사대외교’라고 규정하는가 하면, 김영우 국방위원장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우리 정부의 사드배치 결정을 반대하는 이웃나라에 가서 그 입장을 들어보겠다고 나서는 무모한 일은 헌정사에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맹비난을 퍼 부었다.

지상욱 대변인도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안보를 위한 결단에 이해와 협조는 못할망정 이렇게 국론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더불어민주당은 공당이 맞는가‘라고 날을 세웠다.

중국에 가서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방문 예정 발표만을 놓고 상대 정당이 이렇게 정치 공세로 패대기를 치는 것은 의회 윤리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여당 입장에서 이들의 행태가 정 맘에 들지 않는다면 무시해 버리면 될 일이다.

이들의 방중(訪中) 계획은 언론에서도 크게 주목을 끌지 못했다. 중국을 알고, 한중관계에 관심이 많은 의원들의 외교활동 정도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이 문제를 과대포장 해 준 셈이다. 학술회의 참가와 현지 의견 청취 수준의 저강도(底强度) 의원외교 활동을 마치 정당차원의 조직적인 매국 행위나 하러 가는 듯이 매도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빠지지 않았다. 지난 8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일부 의원들이 중국의 입장에 동조하면서 사드 배치문제에 대해 의견교환을 하겠다고 중국을 방문한다”며 “정부가 노력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중국을 방문해 문제를 풀겠다고 하는 것은 그동안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장수(金章洙) 주중 한국대사는 사드 배치에 관한 우리 정부 측 입장을 사드 발표 한 달 만인 8월 8일에야 처음으로 중국 측에 공식 전달했다. 그것도 중국을 방문 중인 더민주 의원들과 만나기로 일정을 잡아놓은 날 갑자기 약속을 취소하고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를 만났다.

김 대사의 갑작스런 동선 변경은 본국 정부로부터 더민주 의원들과 만나기 전 먼저 중국 정부에 우리 입장을 공식 전달하라는 통지를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유추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 후 더민주 의원들과의 만남이 다시 이뤄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대통령의 말 실수가 큰 파장을 일으키자 더민주의원의 중국 방문 문제를 트집 잡아 집중 난타전을 벌이는 사이 성주지역 내 사드 재배치 운운하는 얘기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청와대의 승리(?)인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야당의원 6명의 중국 방문이 새누리당의 주장처럼 ‘굴욕적인 사대외교이자 헌정사에 없는 무모한 행위로 이적행위’라도 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새누리당과 청와대 관계자들은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06년 9월 19일, 당시 한나라당이 당 차원에서 추진한 방미단(訪美團)의 행태를 반추해 봐야 한다. 한미 양국이 정상회담을 한지 겨우 4일 후의 일이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부시 행정부와 한미 정상회담(2006.9.15.)에서 한반도 전시 작전통제권을 한국 측에 환수한다는 데 합의했다. 국제법상 양국 정상 간에 합의된 내용은 조약과도 같은 효력을 갖는다.

그러나 당시 한나당은 이상득 국회부의장(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을 단장으로 6명의 방미단을 구성하고 미국 정부와 의회 요로에 가서 ‘한국은 아직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할 형편이 못되니 도로 가져가라’며 정부 방침과는 정반대활동을 했다.

심지어 박진·전여옥·정문헌·정형근·황진하 의원 등 방미단은 주무부처인 미국방성 책임자들과 만나보려 시도했지만 ‘정상회담에서 결정된 사안을 반대하다니 무슨 소리냐‘며 거부당하기도 했다. 국제 망신도 이 정도면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다.

과연 세계 어느 나라에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는가. 정치인 가운데 정부의 국가정책과 외교노선에 반대할 수는 있지만 상대국에 가서 그야말로 굴욕적인 방법으로 수치심도 없이 국가의 망신을 시키는 경우는 세계사에서 한나라당이 효시(嚆矢) 아닐까.

이런 전력을 가진 새누리당이 이번 더민주 초선의원 6명의 비공식 의원외교 활동을 그토록 강도 높게 두들겨 팰 자격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속설이 딱 맞는 비유가 아닐까 싶다. 몇 년 전의 일은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지워지는 편리한 두뇌구조를 가진 정당인가 보다.

안보 문제는 처음부터 국민에게 솔직하게 설명, 설득하고 주변국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절차가 필수다. 이것은 전략도 아니고 대단한 테크닉도 아니다. 평범한 나라의 일반적인 상식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도 강조하는 국민, 바로 그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에 국민에게 설명하고, 국민의 허락을 받고 지혜를 모으는 것이야말로 민주국가의 기본이다.

국회는 바로 그런 역할을 하는 곳 아닌가. 이번 사드 문제도 처음부터 논의의 장을 국회로 펼쳐 놓아야 했음은 물론이다. 국사를 논의하는 가장 공식적인 기구가 국회 말고 또 있는가. 그런데도 이번 사드 결정 과정을 보면 국회는 철저히 배제된 채 오직 청와대와 국방부가 미국과 밀실합의를 한 다음 최종 단계에서 어느 날 갑자기 국민에게 툭 던지는 식으로 발표했으니 국민들이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드 문제는 이제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전체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국민의당과 정의당이 공식적으로 국회 동의를 요구하며 반대 입장을 펼치고 있고 더민주당이 유보적이나 반대쪽에 가까운 입장이다.

내년 연말 대선과 맞물려 있는 사드 배치 시기를 앞두고 정부는 이 문제를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국회 차원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여야가 활발한 토론을 거쳐 결론을 도출해 내고, 그 결과에 따르는 것이 순리다. 경험칙상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일수록 기본에 충실한 정공법을 택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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