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지난 6월 23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전면 쇄신해 새롭게 태어나겠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지난 6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출자기업 부실 관리 책임론’으로 뭇매를 맞은 산업은행은 이날 ‘혁신안’을 발표하고 강도 높은 쇄신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런 ‘쇄신 의지’에 의구심이 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업무추진비’를 흥청망청 써 감사원에 적발된 구조조정 기업 파견 경영관리단 직원들을 ‘솜방망이’처벌했다는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 업무추진비 ‘흥청망청’ 직원들 ‘솜방망이’ 처벌 

지난 6월 감사원은 산업은행의 출자 기업 관리 실태를 점검한 결과, 업무 추진비 부적정 사용 등의 문제점이 적발됐다고 밝혔다. 구조조정 기업에 ‘경영관리단’으로 파견한 직원들이 업무추진비를 유흥비나 골프장 경비 등으로 쓴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법인카드 사용이 금지된 유흥업소나 골프장 등에서 지출한 사례는 7개 회사 15명에 이른다. 주말이나 공휴일, 연가 중에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직원은 13개 회사 26명, 업무추진비 한도를 초과해 사용한 이들도 9개 회사 18명이었다. '경영관리단 관리약정서' 기준에 따라 업무추진비는 약정 범위 내에서만 써야 한다.

출자회사에 파견된 한 직원이 128㎡에 달하는 임차사택을 제공받아 혼자 이용한 사실도 적발됐다. 당시 감사원은 규정 위반을 조사해 조치를 취하라고 산업은행에 통보했다.

그런데 이같은 직원들을 산업은행이 ‘솜방망이’ 처벌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정무위)이 산업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경영관리단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감사원에 적발된 경영관리단 임직원들에 대해 지난 6월27일부터 7월1일까지 자체 감사를 진행하고 8명에 대해서만 징계를 내렸다. 2명은 ‘견책’, 6명은 ‘주의 촉구’ 처분이 내려졌다.

산업은행 취업규칙을 보면 견책은 가장 낮은 수준의 징계다. 주의 촉구도 사안이 경미하다고 판단될 때 내리는 처분이다. 견책과 주의 촉구 징계 대상자 8명 가운데 4명은 퇴직자라는 점에서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산업은행은 직원들의 해명을 폭넓게 받아들였다. 산업은행 경영관리단이 유흥업소와 골프장, 노래방 등 업무추진비를 쓸 수 없는 장소에서 1903만원을 썼다고 파악했으나, 90% 이상인 1719만원의 지출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했다. ‘파견회사 직원들과의 단합’을 사유로 지출했다는 직원들의 해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한 회사에 파견된 경영관리단장은 유흥주점에서 쓴 돈이 728만원이나 되는데도, 이런 소명을 인정해 전액정당한 지출로 간주했다. 규정을 위반했다고 인정된 이는 3명에 그쳤다.

◇ 쇄신 의지 의구심… ‘여전한 제 식구 감싸기’ 

주말이나 공휴일에 업무추진비를 목적 외 사용한 금액도 3400여만원으로 파악했지만 체육대회 행사 경비 등으로 썼다며 3100만원 이상에 대한 소명을 인정했다. 허용된 업무추진비를 초과해 집행한 것에 대해서도 관행상 파견 기업 제반 경비 결제에 사용한 것이라는 해명을 받아들였다.

▲ 산업은행 본사. <뉴시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쇄신 의지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출자회사와 직원들에 대한 관리와 감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음에도 결국에는 말 뿐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박용진 의원은 “감사원의 심각한 지적을 받고도 직원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은 산업은행이 스스로 자정능력이 없음을 자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금융당국의 잘못된 관행과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핵심증인을 참여시켜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 관계자는 “자체 감사 결과, 상당 부분이 개인적인 이유로 지출한 비용이 아니라는 사실이 소명됐다”며 “업무상 파견 기업 직원들과 단합 차원에서 자리를 하는 일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앞으로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경영관리단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나갈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산업은행은 ‘부실 감독’과 전직 경영진 비리 논란이 불거지면서 가시방석에 올라있다. 내달 국정감사에서 야당 정무위원들은 산업은행의 경영 부실과 비리 문제에 대해 총공격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산업은행 관련 자료를 집중 수집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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