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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에게-대통령의 역할과 책임
H에게-대통령의 역할과 책임
  • 시사위크
  • 승인 2016.08.2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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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나희덕 시인의 <천장호에서>라는 시야. 난 저 시를 읽을 때마다 2년 전,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었던 그분의 차가운 얼굴에서 줄줄 흘러내리던 눈물을 떠올리고 있네. 자네도 생각나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서 겪으신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라고 눈물로 사죄하던 모습.
 
하지만 그게 악어의 눈물일 줄이야. 자네는 악어가 언제 눈물을 흘리는지 아는가? 실제로 악어는 먹이를 먹을 때 눈물을 흘린다네. 먹이를 삼키기 좋게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서 눈물을 흘린다는 거야. 다른 생명에게 폭력을 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자신의 처지가 슬퍼서 우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거짓 눈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라는 거지.
 
난 요즘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하는 말을 들으면 참 이해하기 힘든 분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던 유신시대의 권위주의적인 독재정치를 자유민주주의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몰라.
 
지난 광복절 경축사를 다시 읽어보게나. 40여 년 전 그분의 아버지 경축사를 읽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야. 현실에 대한 인식의 오류는 많고,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국민들에 대한 측은지심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어.
 
언제부터인지 우리 내부에서는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가 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헬조선과 같은 신조어들이 등장하는 이유가 뭘까? 그만큼 대다수 국민들, 특히 청년들의 삶이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지. 지난 16일 한 신문이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20대 청년 실업자 수는 448000명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10% 가까이 급증했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최고치야. 올해 들어 5개월 연속으로 같은 달 기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못하거나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대한민국이 지옥처럼 다가오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OECD 국가들 중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고, 하루에 3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가 지옥이 아니고 천국인가? 이런 나라에서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뭘까? 힘들게 버티고 있는 서민들과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주는 게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하지만 대통령은 아직도 계몽군주처럼 국민들을 가르치려고만 하고 있네. “모든 것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자본도, 자원도, 기술도 없던 시절에도 맨주먹으로 일어섰던 우리가,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풍부한 자본까지 가지고 있는 지금 못해 낼 것이 과연 무엇이 있겠습니까?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함께 가는' 공동체 의식으로 함께 노력하면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내부의 분열과 반목에서 벗어나 배려와 포용으로 성숙한 시민의식을 키워나가고, 모두가 스스로 가진 것을 조금씩 내려놓고, 어려운 시기에 콩 한쪽도 서로 나누며 이겨내는 건강한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간다면, 한 차원 높은 도약을 이뤄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며칠 전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중소기업 근로자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10명 중 8명이 자신과 자녀를 흙수저동수저로 생각하고, 응답자의 50%노력해도 계층 이동은 가능하지 않다고 응답했더군.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으면 다시 복원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대통령과 정부가 할 일 아닌가?
 
나도 젊었을 때는 공부든 연애든 돈벌이든 맘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 캔두(can do) 정신을 강조하던 사람이 대통령을 하던 시절에 중·고등학교를 다녀서 물이 든 거지. 하지만 이순의 나이가 넘은 지금 되돌아보면 내가 젊었을 때 참 교만했었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는 세상에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걸 알아. 사실 캔두 정신 자체가 많은 사회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하나의 이데올로기 기제야.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노력과 능력 부족 탓으로 돌리면서 그 구조의 희생자들을 비난하지. 개인의 의지나 노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사회구조라는 장애물이 분명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게 다 내 탓이야라고 스스로 무릎 꿇게 만드는 도구로 캔두 정신이 작동하고 있는 게 우리 사회일세.
 
남명 조식 선생의 말씀이 생각나네.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물위의 배에 지나지 않는다. 배는 모름지기 물의 이치를 알아야 하며 물을 두려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