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시사위크] 지난 6월 타계한 엘빈 토플러는 “시속 100마일로 달리는 가장 빠른 차가 기업이라면, 가장 느려터진 정치조직은 시속 3마일로 움직인다”고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또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집단은 미래에 적응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정치집단은 과거의 기득권에 만수산 드렁칡처럼 뒤얽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는 어떤가.

박근혜 정부의 속도는 토플러의 상상을 능가하는 것처럼 보인다. 3마일은커녕 후진 기어를 넣고 엑셀레이터를 마구 밟아대는 형국이다. 다보스포럼이 4차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를 강력하게 경고해도 소용이 없다. 수출이 감소하고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다는 경고도 ‘소 귀에 경 읽기’다.

미국 민주당이 시급 15달러를 공약하고 영국 보수당이 생활임금을 도입하는 등 보수, 진보를 넘어 전세계 정부가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앞다퉈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도 정부는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한다. 이미 좌우의 경계를 넘어 로봇 시대를 대비한 기본소득 구상이 넘쳐나는데 우리는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했다. 자살률 1위에 출산률 꼴찌가 지속돼도 이 문제를 국가의 운명이 걸린 문제로 고민하지 않는다. 당연히 대책도 부실하다.
 
세월호, 메르스를 지나 옥시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국민이 이렇게 말했다.
 
“이게 나라입니까?”

국민의 분노가 집약된 말이다. 304명의 생명을 한꺼번에 앗아간 세월호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못하는 나라, 메르스에 이어 콜레라까지 발병하는 나라, 온갖 비리 혐의에도 불구하고 사법라인을 총괄하는 우병우 민정수석이 배째라며 자리를 버티고 그것을 대통령이 호위하는 나라, 음주사고 허위진술을 하고도 경찰청장이 되는 나라. 국회와 의논도 하지 않고 주민의 동의절차도 없이 일방적으로 사드 배치를 결정하는 나라. 4차산업혁명 시대에 선사시대로 질주하는 이 현상들이 국민의 분노를 극단적으로 키우고 있다. 분노한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

“이게 나라입니까?”

이 말이 이제 정치권에서도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17일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은 성남 코리아디자인센터에서 가진 공정성장 강연에서 분노한 표정으로 “도대체 이게 나라입니까?”라고 물었다. 안 의원은 이날 강연에서 4년 전 국민들은 힘들어 했고 힘든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통하지만, 지금 분노한 국민들에게는 위로의 말도 별 소용이 없다고 했다. 분노한 국민들에게는 위로보다 해법과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

안 의원은 또 최근 국민의 분노는 검찰을 향해 있다고 하면서 홍만표, 진경준, 우병우 이름을 열거한 뒤 “도대체 이게 나라입니까?”라고 되물었다. 민주주의의 보루인 사법정의가 통째로 흔들리는 것에 대한 강한 우려의 표현이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 의원들조차 우병우 수석이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버틴다. 그것도 공세적으로 버틴다. 감찰관을 윽박질러 물타기하고 민정수석이 인사검증한 부실한 경찰청장 후보의 임명을 강행한다. 상식 따윈 8월의 무더위가 가져가 버렸다. 그러니 이 말을 안 할 방법이 없다.

“이게 나라입니까?”

26일엔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입에서도 이 말이 튀어나왔다.

이 대표는 이날 교육부,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을 국회로 불러 콜레라·C형간염·집단 식중독 관련 당정협의를 주재했다. 그는 모두발언에서 “도대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콜레라가 웬 말이냐”며 “식중독 역시 이례적 폭염 탓도 있겠지만 원인과 대책에 대해 국민이 불안해 한다”고 탄식했다. 나아가 이 대표는 “(의사가) 돈 좀 더 벌려고 탐욕스럽게 일회용 주사기를 재사용해 암으로까지 번지는 C형간염을 유발하고, 피해자들은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니 정말 이게 나라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권에서 국민의 일상어가 돼 버린 “이게 나라입니까”를 수용하기 시작한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국민은 이미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놓인 극심한 불평등 구조에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청년실업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가계부채가 1250조원을 넘었다. 4차산업혁명은 거대한 일자리 감소를 예고한다. 인구구조의 극심한 악화는 사회 전체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해묵은 이념논쟁에 매달리며 헌법정신마저 위배한 건국절 논란을 끄집어  낸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나라가 극단적인 두 국민 정책에 매달려 사드 배치를 강행한 것도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이게 나라입니까?”라는 말은 이미 국민의 보통명사가 돼 버린 ‘헬조선’의 질문형 표현에 다름 아니다.

정치가 거대한 변화의 속도에 휘말린 국민의 불안과 분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정치 자체가 거대한 변화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혁명이란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따라잡는 것이다”라고 한 가라타니 고진의 말을 되새겨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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