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민주화 운동을 벌였던 고(故) 장준하 선생의 사인(死因)을 놓고 타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후보의 대선 가도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앞서 서울대 의대 법의학 교실 교수 등이 1975년 의문사한 장 선생의 유골을 37년 만에 검시한 결과, 고인의 머리뼈에 금이 가 있고 머리 뒤쪽으로 5~6cm 정도 크기의 구멍이 있는 것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장준하 추모공원 추진위원회는 고인의 유골 검시 결과를 타살의 흔적으로 보고, 진상 규명을 위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것으로 보여 논란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민주통합당은 지난 16일 타살가능성이 제기된 고 장준하 선생과 관련 "진실을 규명하고 타살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며 정부와 새누리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박근혜 후보를 압박했다.
 
더불어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을 구성을 추진하는 등 구체적인 행보도 시작했다.
 
우원식 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중앙정보부 등 당시 권력에 의해 제대로 된 부검한번 못한 채 묻혀있던 유신시대 박정희 반독재 투쟁의 상징인물 고 장준하 선생의 유골에서 타살 흔적이 발견됐다"며 "민주당은 이에 당 차원의 '고 장준하 선생 의문사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하기로 하고 내일 최고위원회의에 정식으로 제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 원내대변인은 "장 선생의 유족들은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고문과 투옥 탓에 수십 년간 이역만리를 떠돌며 숨죽이는 삶을 살아왔다"며 "이제라도 고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그 책임자들의 분명한 사과와 국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선 예비후보인 손학규 후보 측 김유정 대변인은 "진실은 어떻게든 꼭 밝혀지기에 37년이 흐른 장 선생의 사망원인도 이번에는 제대로 밝혀질 것"이라며 "장 선생의 죽음이 박정희 정권에 의한 정치적 타살로 밝혀진다면 박근혜 후보는 즉각 석고대죄하고 후보직을 사퇴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두개골이 함몰된 선친의 유골을 본 순간 37년간 응어리진 분노가 솟구쳤다는 장 선생 장남의 절규가 헛되지 않도록 진실규명을 철저히 해야 한다"며 "거짓과 독재, 분노의 역사를 묻어두고 미래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박근혜 후보에게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박준영 예비후보도 논평을 통해 "유신체제였던 1975년 당시 검찰은 '등산 중 실족에 의한 추락사'로 결론지었지만 타살 가능성을 제기하는 단서가 나온 만큼 진실을 낱낱이 가려내는 것이 후손의 도리"라며 "한 점 의혹 없이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장 선생은 광복군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고 60~70년대에는 37번의 체포와 9번의 투옥의 고초를 겪으며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진력한 분"이라며 "늦었지만 의로운 삶을 살아온 선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숨김없이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정세균 예비후보는 당 전북도당 사무실에서 열린 선대위 회의에서 "장 선생의 묘소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머리의 함몰이 확인돼 타살이라는 의심이 증폭되고 있다"며 "친일파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독립군 장 선생이 타살됐다면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불가한 일"이라고 말했다.
 
정 후보는 "2차 세계대전 중 수천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아몬 게트의 딸과 구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의 딸은 속죄의 삶을 살았다"며 "부끄러운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할 것으로 부탁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고위정책회의에서도 장 선생의 죽음에 대한 진실규명과 박 후보의 입장 발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강창일 지경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은 한일 관계의 잘못된 첫 단추인 한일협정을 맺은 사람"이라며 "박 후보는 아버지의 한일협정과 장 선생의 타살의혹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고 압박했다.
 
이석현 의원은 "법의학자가 장 선생의 두개골에 타살흔적을 발견했으니 이제는 살해지시를 내린 사람이 누군지 밝혀야 한다"며 "당시 박정희 정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부가 규명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유기홍 의원은 "1917년생인 만주군 출신 박 전 대통령이 동시대 사람인 1918년생 광복군 출신 장 선생에게 컴플렉스를 가졌던 것은 유명한 뒷얘기"라며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개헌 투쟁에 불을 붙인 장 선생이 사망했을 당시에도 육안만으로도 추락사로 보기 어려운 흔적이 확인된 바 있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37년 만에 타살의 증거가 나타난 만큼 정부가 진상을 규명해야 하며 그렇지 않는다면 국회가 사인규명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만일 정부가 이에 나서지 않는다면 사고 당시 퍼스트레이디였던 박 후보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한 소극적 대응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장준하 선생 아들 "박근혜, 대통령되면 정치적 책임져야"
 
이런 가운데 고(故) 장준하 선생의 장남인 장호권씨는 앞서 16일 YTN라디오 '김갑수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 "장준하 선생의 죽음이 타살이라고 결론 내려진다해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유족이라고 할 수 있는 박근혜(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며 "연좌제도 아니고 그런 것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장씨는 그러나 "박 후보가 나라를 운영하는 입장이 된다면 그 당시와 연결해 분명히 정치적 책임을 져야한다"며 "장 선생의 유족들이 원하는 것은 공식적으로 (타살에 의한 죽음이라고)발표를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모든 국민에게 '이것은 박정희 시대 때 일어난 일로 정치적으로 이런 일을 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공식적인 태도를 표명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장씨는 이어 "이번 검시 결과가 선거와 결부돼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덮어놓고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장준하 선생 사후 37년 만에 검시를 하게 된 사유에 대해 "지난해 추도식 때 아버님의 묘소가 붕괴가 됐었다"며 "그래서 이장을 하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기왕 이장할 바에 이번 기회에 시신을 검시 한번 해보자고 해서 지난 1일 이장을 하면서 검시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장씨는 또 "검시할 때는 저희 장준하 기념 사업회 관계자 분들과 그리고 검시하는 법의학 전문의를 포함해 10명 정도 참석을 했다"며 "유족으로는 저와 동생이 참석을 했다"고 밝혔다.
 
장씨는 검시 결과에 대해 "제일 처음 두개골을 이장하기 위해서 옮겼을 때 육안으로도 선명하게 보이는 직경 5~6cm정도에 아주 원형에 가까운 함몰이 있었다"며 "만약에 추락에 의한 사망이라고 했을 경우 5~6cm와 똑같이 생긴 아주 원형의 돌, 아니면 똑같은 원형의 물체에 정확하게 부딪혀야만 나올 수 있는 굉장히 확률이 적은 상처였다"고 설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시절 민주화 운동을 벌였던 장준하 선생은 지난 1975년 등산을 갔다사 숨진채 발견돼 그의 사인을 둘러싸고 의문이 제기되어왔다.
 
한편, 장호권씨(63)는 26살 때 장준하 선생이 비명에 숨지자 부친의 사인을 밝히려다 테러를 당한 뒤 말레이시아로 도피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귀국했다가 전두환 정권에 의해 쫓겨 다시 싱가포르로 떠났고 2004년 귀국했다.
 
월간 사상계를 복간해 2010년 1년 동안 발행했지만 운영난으로 현재 '인터넷 사상계'만 내고 있고, 지난 18대 총선 때 서울 동대문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지금은 장준하기념사업회 운영위원을 맡고 있으며, 서울대 아시아센터에서 국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긴장감 고조되고 있는 대선 정국
 
유신정권에 맞서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다 1975년 의문사한 고 장준하 선생(사진·1918~75)의 유골에서 타살을 짐작하게 하는 흔적이 발견되면서 긴장감이 일고 있다.
 
장 선생의 유족들이 시체를 이장하는 과정서 유골 검시를 의뢰했고 검시 결과 두개골 뒤쪽에 지름 5~6cm의 뻥 뚫린 구멍과 금이 간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경기 파주시 나사렛 천주교 공동묘지에 안장된 장 선생 유골을 지난 1일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에 새로 조성중인 '장준하 공원'으로 이장하면서 37년 만에 고인의 유골 검시를 의뢰했다.
 
장 선생이 1975년 8월 경기 포천 약사봉에서 하산하던 중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될 당시 중앙정보부 등 권력기관의 타살 의혹이 제기됐지만 간단한 검안만 진행됐을 뿐 사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검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 실시된 검안에서도 동일한 머리 부위에서 가로·세로 2cm 크기로 흉기에 찍힌 상처가 발견됐고, 오른팔과 엉덩이 부위에서는 의문의 주사자국이 남겨져 있어 타살 의혹이 가시지 않았다.
 
경찰은 당시 사망 원인에 대해 "높이 14m의 낭떠러지에서 실족해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암반에서 굴러 떨어진 사람치고는 몸에 큰 외상이 없었다는 의혹이 있었다.
 
이후 2004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장 선생의 타살 의혹을 조사했지만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따라 장준하 추모공원추진위원회는 이번에 장 선생의 유골에서 결정적 타살 흔적이 재확인된 만큼 진상 규명을 위해 본격 활동에 나설 방침이다.
 
추진위는 17일 파주 통일동산에서 진행되는 추모공원 제막식 때 관련 내용을 발표할 계획이다. 다만 대선을 앞둔 미묘한 시기인 만큼 검시 결과의 공개 수위에 대해서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에서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의 정치적 입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1918년 평북 의주 출생인 장준하 선생은 1960~70년대에 '박정희 체제'에 대항한 사상가이자 언론인, 정치인이다. 일제강점기인 1944년 일본군 학도병으로 중국에 파병됐다가 탈출해 광복군 대위로 항일투쟁을 했다.
 
그는 1953년 월간 '사상계' 등을 창간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한-일 수교 협상, 베트남 파병, 10월 유신 등에 맞선 다양한 정치활동을 벌였다. 특히 장 선생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경력을 제기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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