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 중간,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는 새누리당 의원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20대 국회 첫 정기국회 본회의가 시작부터 고성과 막말, 몸싸움으로 얼룩졌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본회의 출석을 거부한 채 긴급 의원총회를 개최하는 등 파업이 이어졌다. 집권여당의 의원들이 집단 보이콧을 한 이유는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 때문이다. 정세균 의장이 여야대립이 심한 공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이나 사드문제에 대해 야당의 입장을 대변했다는 게 새누리당 의원들의 주장이다.

중립을 유지해야할 국회의장이 야당의 입장과 다소 비슷한 의견을 개회사에서 언급한 것은 문제의 소지가 없지 않다. 그러나 “사과하지 않으면 20대 국회 모든 의사일정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할 만큼 심각한 발언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반발했던 개회사는 ‘공수처 신설에 대해 논의해달라’는 것과 ‘남북대화를 위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달라’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나 새누리당에 다소 쓴 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공직자 비리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나 남북관계를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것은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종종 나오는 얘기다. 더구나 정 의장이 법안을 직권상정 하는 식의 ‘편파판정’을 내린 것도 아니다. 문제가 있었다면 추경을 처리한 뒤 정 의장의 발언에 대해 공식 문제제기를 통해 해결할 수도 있었다.

아마 새누리당이 불편했던 것은 다른 데 있었던 듯하다. 개회사 중간 언급된 ‘우병우 민정수석’이나 ‘사드배치’가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새누리당 지도부의 모 의원이 자리를 박차고 나섰던 것도 저 단어가 언급되고 나서다. 그러나 이는 전형적인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는 꼴’과 다름없다. 정 의장이 사회권을 박주선 부의장에게 넘겨 추경안을 처리하는 것으로 합의한 것은 그마나 다행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 같은 상황이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새누리당은 야당 교문위원들의 추경증액 처리를 이유로 조윤선 장관후보자의 청문회 전체를 보이콧 했다. 인사청문회를 야당의원들만 진행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김재수 장관후보자 청문회 일부도 새누리당은 역시 거부했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쉬운 법이다. 야당 역시 강성지도부가 들어서면서 사안마다 지뢰가 산적해 있다.

정치권이 ‘의정활동’을 볼모로 ‘화약고’ 같은 상황을 이어가는 동안 민생은 병든다. 일례로 이번 추경안에는 저소득층 생리대 지원 30억 원이 포함돼 있었다. 생리대가 너무 고가여서 신발깔창을 변용해 쓴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이렇게 민생이 어렵다는 것은 여야 국회의원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정쟁에 빠져 시급한 추경안 처리까지 뒷전으로 미뤘다는 점에서 더욱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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