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는 기림사에서 끝나지만, 경주 감은사지를 거쳐 이견대와 대왕암까지 둘러보자. 죽은 문무왕이 용이 되어 드나들던 감은사지와 이견대에서 바라보는 대왕암이 감동적이다.
토함산은 불국사를 품은 경주의 동악(東岳)으로, 함월산과 마주 본다. 두 산 사이를 구불구불 넘어가는 추령은 예부터 경주 시내와 동해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개다. 신문왕 호국행차길의 출발점이 바로 추령터널 앞이다.
왕의 길 이정표를 따르면 좁은 시멘트 길이 나온다. 여기가 모차골인데, 마차가 들어올 수 있는 골짜기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길은 인자암 앞에서 호젓한 흙길로 바뀐다. 숲으로 들어서니 비밀의 화원에 온 느낌이다. 길섶에 서어나무, 느릅나무, 오리나무, 까치박달 등 활엽수가 늘어섰다. 그 사이를 유유히 걸으면 왕이 된 기분이다. 조붓하고 정겨운 오솔길이 졸졸 흐르는 계곡을 끼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수렛재를 넘는다.
신문왕은 수레에 올라 수렛재를 넘었다. 덜컹거리는 수레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신문왕이 왕위에 오른 681년 무렵 정국은 어지러웠다. 장인 김흠돌이 난을 일으켰고, 백제와 고구려의 독립을 꿈꾸는 세력이 끊임없이 활동했다. 수백 년 동안 신라를 괴롭혀온 왜구의 준동도 늘 두통거리였다.
신문왕은 이를 극복하고 백성을 통합할 새로운 신화가 필요했다.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아버지에게서 그 해답을 찾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신문왕은 682년에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감은사를 완성하고, 이듬해 아버지의 무덤이 있는 대왕암을 찾기 위해 행차에 올랐다.
신문왕도 수렛재의 최고 절경인 용연폭포에서 쉬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만파식적과 옥대를 얻어 궁궐로 돌아가던 신문왕은 계곡에서 마중 나온 태자 이공을 만난다. 태자는 옥대의 장식에 새겨진 용이 진짜임을 알아본다. 신문왕이 장식을 떼어 물에 넣자 순식간에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그 땅은 못이 되었다고 한다.
용연폭포에서 나와 휘파람 불며 기분 좋게 내려오면 기림사가 보인다. 기림사는 643년(선덕여왕 12) 천축국의 승려 광유가 창건했고, 원효대사가 중창했다고 전해진다. 경내로 들어서면 거대한 삼천불전이 보인다. 그 아래 기림사의 보물 대적광전이 자리한다. 대적광전은 선덕여왕 때 처음 지었으며, 현재 건물은 1629년(인조 7) 다섯 번째 지은 건물 형태를 갖추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에 맞배지붕이 단정하고 경건하다. 그 앞에 500년 된 반송이 고풍스러움을 더한다.
신문왕의 행차가 감은사를 거쳐 이견대에 도착하자, 비바람이 치고 천지가 진동했다. 이때 신문왕은 홀연히 나타난 용에게서 대나무와 옥대를 얻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용이 신문왕에게 말한다. “왕께서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부시면 온 천하가 화평해질 것입니다. 이제 왕의 아버님께서는 바닷속 큰 용이 되셨고, 유신은 다시 천신이 되어 두 성인이 값으로 칠 수 없는 큰 보물을 보내시어 나로 하여금 바치게 한 것입니다.”
신문왕 호국행차길을 따라 경주의 역사와 유적을 둘러본 뒤에는 조선 시대 백성의 삶이 오롯이 남은 양동마을로 가보자. 매표소를 지나 마을 앞에 서면, 연밭 너머로 기와집과 초가집이 어우러진 모습이 평화롭다. 설창산(163m) 자락에 들어앉은 마을은 서쪽으로 비옥한 안강평야를 끼고 있다.
〈당일 여행 코스〉 신문왕 호국행차길(추령터널 입구~수렛재~용연폭포~기림사 / 8km, 3시간 소요)→경주 감은사지→경주 이견대→대왕암(경주 문무대왕릉) 〈1박 2일 여행 코스〉 〈여행 정보〉 ○ 관련 웹사이트 주소 ○ 문의 전화 ○ 대중교통 정보 ○ 자가운전 정보 ○ 숙박 정보 ○ 식당 정보 ○ 주변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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