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7 17:24 (화)
[김준범 ‘오늘과 내일’] 대한민국은 천민상층 나라인가
[김준범 ‘오늘과 내일’] 대한민국은 천민상층 나라인가
  • 시사위크
  • 승인 2016.09.12 14: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준범 전 국방홍보원장.
한국 사회 최고의 엘리트로 꼽히는 법조인들의 모럴 해저드(Moral hazard)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이대로 가다간 대한민국호가 세월호처럼 침몰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법치주의 파수꾼인 그들이 오히려 법을 농락하고 국민을 우롱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올 상반기 내내 매스컴에 올라 유명해진 홍만표·진경준 전 검사장과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은 모두 검사출신이다. 이들은 명문 법대를 나와 사법고시에 합격, 검사로 임용돼 출세가도를 달려왔다. 법조계 최고 엘리트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들이다.

이들 3명 중 둘은 구속 수감 중이고 우병우 민정수석은 정치권의 끈질긴 사퇴 압력에도 꿈쩍 않고 버티다가 오는 10월 국회 운영위·법사위에 증인으로 채택됐다. 국회 출석을 거부하고 청와대를 떠난 전임 김영한 민정수석(지난 8월 작고)의 전례에 비춰볼 때 우 수석의 출석 여부 역시 미지수다.

그런 가운데 이번엔 ‘스폰서 검사’ 논란이 불거졌다. 김형준(46) 부장검사는 사업가인 고교 동창과 의심스러운 돈거래를 했고, 자신의 수사 지휘 범위 안에 있는 피의자(박 변호사)로부터 돈을 빌려 쓴 혐의로 현재 수사를 받고 있다.

김 부장 검사의 상식을 초월한 일탈행위는 국민을 더욱 분노케 한다. 그는 고교 동창으로부터 1500만원을 송금 받아 500만원은 단골 술집 여종업원의 계좌로, 1000만원은 검사 출신인 박 변호사의 부인 계좌로 각각 송금했다는 것이다. 현직 검사로서는 있을 수 없는 금전 거래라는 게 법조계의 반응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8일 김형준 부장검사의 스폰 및 사건청탁 의혹은 “전관·현관 검찰비리의 종합판”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김 검사의 스폰 의혹은 지난 5월부터 제기됐는데,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을 두 번이나 기각하고 사건도 검찰로 송치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진경준 검사장의 주식대박 사건이 크게 드러난 시기임을 고려하면 검찰의 영장 기각과 늑장수사는 검찰비리 사건을 제대로 밝혀내기보다 비리를 감추고 봐주기 위한 제 식구 감싸기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 “홍만표·진경준·우병우에 이어 김형준에 이르기까지 가장 청렴해야 할 사정기관 고위직 출신들의 비리사건을 바라보는 시민의 불신과 분노가 임계점에 다다랐다. 이는 검찰의 ‘셀프개혁’으로 무마될 사안이 아니며 김수남 검찰총장은 여론에 떠밀려 사건이 터질 때마다 특별검사와 특별감찰, 셀프개혁안으로 국면을 전환하려 하지 말고 사퇴함이 마땅하다”며 검찰총장 사퇴를 요구했다.

국회에 대한 주문도 빠뜨리지 않았다. “국회는 더 이상 검찰의 저항에 막혀 검찰개혁 논의를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고 전제하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검사장 주민직선제 등 검찰의 비대한 권한을 쪼개고 민주적 통제 강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조 비리는 검찰에서만 나온 게 아니다. 지난 2일 김수천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네이처 리퍼블릭의 정운호 대표로부터 1억7000만원을 받은 혐으로 구속됐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지난 6일 취임 후 처음으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전국 법원장회의 석상에서 ‘국민과 법관들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사법부의 입장을 밝히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어디를 봐도 국민에 대한 사과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전체 44개 문장 가운데 ‘국민에게 사과한다’는 말은 끝에 한 줄 뿐이고, 815개 단어 중 ‘사과’는 고작 세 번 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현직 판사의 뇌물수수 사건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를 인정하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려는 사법부 수장의 태도는 이보다 훨씬 솔직하고 정직했어야 한다. 이날 회의에서 전국 법원장들은 10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상시적·지속적 예방활동 강화, 법관 징계절차에서의 충분한 자료 확보 등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 보니 ‘대책을 위한 대책’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됐다.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그 사회 상층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다 함으로써 다른 계층에게 모범을 보인다는 뜻이다.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정신적 의무이며, 혜택 받은 자들의 책임이자 특권 계층의 솔선수범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 사회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자리 잡지 못했다. 송복(宋復·80) 연세대 명예교수는 최근 출간한 책 ‘특혜와 책임’에서 특혜만 있고 책임은 없는, 특권만 누리고 의무는 저버린 우리나라의 상층을 매섭게 질타하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헬조선’이니 ‘흙수저’니 하며 분노하는 근본 원인도 바로 우리 사회의 ‘탐욕적(貪慾的)인 상층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진경준·홍만표 전 검사장과 우병우 민정수석, 국민을 ‘개·돼지’로 본다는 전 교육부 기획관 등 상층에 있는 사람들이 보여준 행태를 보면 권력(power)도 갖고 돈(property)도 가지려는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송 교수는 우리사회의 상층은 대개 당대에 그 지위에 올라선 사람들로 △뉴 하이(New High)와 △뉴 리치(New Rich)로 구분된다고 말한다. 전자는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직역에서 권력을 가진 고위직 층을, 후자는 대기업가·재력가 등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서구에서처럼 누대에 걸친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할아버지 대(代) 이상에서부터 켜켜이 쌓아온 체화된 상식·교양·윤리가 내면화 돼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그나마 이 정도까지 온 것은 그래도 ‘뉴 리치’ 덕분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뉴 리치는 상대적으로 집안의 역사도 오래되고 어렸을 때부터 자식훈련을 잘 시켰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했다.

이에 비해 ‘뉴 하이’는 국가고시 등 각종 시험을 통해 상층에 오른 뒤, 자신이 받고 있는 특혜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책임은 지지 않는 ‘천민(賤民) 상층’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중앙Sunday, 2016.8.28.). 그들에게 ‘지금의 자리에 어떻게 올라갔느냐’고 물으면 하나같이 ‘나의 치열한 노력, 피와 땀의 대가‘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절반만 맞는 말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들이야말로 ‘내 자신과 내 가족을 위해 공부해서 지금의 자리에 오른 전형적인 상층’이라고 했다. “아무리 자신이 결백하다고 해도 나라가 이렇게 난리인데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게 말이 되느냐. 국민과 나라가 불러서 그 자리에 간 것이라는 소명의식, 자신이 특혜 받았다는 인식이 없어서 그렇다”고 그는 강조한다(중앙Sunday, 상동).

그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높은 지위는 대학입시부터 시작해 대기업 입사시험, 각종 국가고시 등 시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때 당락을 가르는 건 불과 몇 점 차이다. 0.5~1점 사이에 무수한 경쟁자들이 몰려 있게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나의 합격은 곧 다른 사람의 ‘낙방’ 위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러니 나의 실력이 대단하다고 뽐낼 게 아니라 근소한 차이로 떨어진 다른 사람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내 자신에게는 행운아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미국의 대법관, 영국의 귀족 등이 200년 이상 존경받는 계층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여왕 자신은 물론 그의 왕자들이 직접 전쟁에 나가는가 하면, 미국의 역대 대통령과 유명 정치인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예외 없이 실천한 사람들이다.

국회 국방위 소속 김중로 의원(국민의당)이 지난 11일 병무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병역의무가 있는 4급 이상 고위 공직자(2만5388명) 중 9.9%(2520명), 병역의무가 있는 직계비속 1만7689명 중 4.4%(785명)가 질병 등의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위공직자 본인과 직계비속의 평균 면제율은 7.7%로 일반인 최근 5년간 평균 병역면제율(0.26%)보다 29배나 높다. 면제사유를 보면 고위공직자 본인의 경우 고도근시(420명)가 전체의 22%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신장·체중(123) △수핵탈출증(88) △폐결핵(47) 등이 뒤를 이었다. 고위공직자 직계비속의 가장 많은 면제사유는 불안정성 대관절(50명)로 무려 56%를 차지했고, △시력장애(15명) △염증성 장질환(13명) △사구체신염(11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고도근시나 불안정성 대관절 등은 흔히 병역면탈 의혹을 받을만한 질병으로 알려져 병역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사람들로서는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위화감을 느낄 수도 있다. 6.25 때 미국의 장군들은 아들 142명을 한국전에 참전시켰고, 그 중 35명이 전사하거나 중상을 입었다.

제20대 국회의원 300명중 여성을 제외한 249명 가운데 208명이 병역의무를 마쳤다. 면제율은 16.5%로 19대 국회 보다 2.1%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지만 기대에는 훨씬 못 미친다. 역대 대통령 중 군 출신(3인)과 여성(1인)을 제외한 나머지 대통령 가운데 현역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한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 한 사람 뿐이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 청와대 지하 벙커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군필자는 국방장관 1명 뿐이었다는 사실은 이명박 정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국무위원은 물론 청와대 비서관 중에도 병역 미필자가 많기로는 박근혜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황교안 국무총리를 비롯,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국무위원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송복 교수는 ‘00피아’로 상징되는 전관(前官) 문제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이 임기가 끝난 후에도 특혜를 누리는 현관(現官)으로 머무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맹자’(孟子)에 나오는 ‘탐위모록(貪位慕祿) 부주어행도(不主於行道)’, 즉 “자리를 탐하고 돈을 그리워 하니 도리에 맞는 행위를 하지 못 한다”는 말을 인용했다.

그는 우리 사회를 바꾸기 위해 정치 제도나 대통령 한 사람만 바꿔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사회 상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주에서 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국가위기 시 목숨을 내놓는 것이고, 둘째로 불평등이 심할 때 기득권을 내려놓으며, 셋째 평소 갑(甲)질을 않는 대신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특혜를 받는 이들이 무한책임을 지게 되면 이를 중심으로 우리도 비로소 역사적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송 교수는 기대했다. ‘상층이 변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서 이 책을 썼다는 저자의 말처럼 그의 기대가 현실이 될 날은 언제쯤 올 것인가.
 


해당 박스는 '광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