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누가 게임 체인저가 될까?
경선을 앞둔 마지막 추석을 앞두고 여야의 잠룡들은 추석밥상에 내놓을 이야깃거리 하나쯤은 고민했을 것이다. 예전같진 않지만 추석 명절은 여전히 흩어졌던 민심이 흘러가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에 북한의 5차 핵실험이 터졌다. 올해 추석밥상도 김정은이 독차지할 태세다. 안보 프레임이 추석 정국의 많은 이슈들을 집어삼킬 것이다. 시쳇말로 명절 때마다 재를 뿌린다.

문재인은 광주에서 단일화 필요성을, 안철수는 제주에서 양극단 세력과의 단일화 불가론을 주장했다. 추석 밑에 때이른 단일화 논쟁이 벌어진 것인데, 경제적 어려움과 불확실성에 내몰린 국민들에게 크게 환영받을 만한 논쟁은 아닌 듯 싶다. 출마하지도 않은 가상 후보 반기문은 제외하고 유승민은 정의론을, 남경필은 모병제를, 김무성·김문수는 핵무장론을 주장했고 문재인은 정권교체를, 안철수는 미래 대비와 대기업의 불공정 구조 극복을 강조했다. 박원순은 경제 불평등 이슈를 점화했고, 김부겸은 북핵 해법을 위한 ‘이란 프로세스’를 주장했다. 혁명적 변화를 내건 이재명은 세월호 노란리본 논란으로 화제가 됐다.

여야의 잠룡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연일 결과를 내놓고 언론들은 의미 없는 숫자의 변화를 과장해서 보도한다.

후보들이 속속 출마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가슴 설레는 메시지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사상 최악의 경제 불평등과 저성장의 구조화, 인구절벽과 4차산업혁명의 도래, 남북관계의 악화 등을 풀어갈 통 큰 리더십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후보들은 아직 여권의 대통령이나 야권의 대통령이 아닌 국민의 대통령이 되기 위한 담대한 상상력을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의 국민성공시대와 현 정부의 국민행복시대가 파탄 난 마당에 정권교체는 대단히 큰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단순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넘어 이 시대의 어려운 난제들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국민들을 설레게 할 시대정신과 비전을 절절하게 말해야 할 것이다. 사실 지금 대선후보들은 지나치게 평론가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2007년 힐러리에 비해 미미한 도전자로 시작했던 오바마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캠페인’ 대신 ‘운동’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상대 후보보다 국민에게 직접 호소했다. 힐러리는 오바마의 이 신선한 도전 앞에서 이렇게 독백했다.
“남자를 상대하는 건 쉽지만 운동에 맞서는 건 지독하게 어렵다.”

지금 우리 국민들에겐 변화가 절실하다. 국가 전 분야에 걸쳐 위기가 아닌 지표가 없을 정도로 절박하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12년까지 불평등 증가율이 OECD 국가 가운데 압도적으로 높다. 상위 10%의 소득집중도는 44.9%로 미국에 이어 2위인데 같은 기간 증가율은 53.8%로 미국의 18%에 비해 세 배나 높다.

변화가 어려운 것은 기득권 세력의 강력한 저항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캠페인이 아니라 운동이 필요하다. 숫자와 정책을 열거하기보다 가치를 말해야 한다. 소외된 계층을 비롯한 어려운 국민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이것을 용기있게 돌파할 강력한 리더십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조지 레이코프의 말대로 가치와 정책을 폭포수처럼 연결해야 한다.

우리 앞에는 네 가지의 중대한 변화 과제가 놓여 있다.

우선 소득 불평등을 위시한 수많은 격차를 넘어 국민들을 통합하는 일이다. 가장 어려운 일이다. 이념, 지역, 세대, 계층을 넘어 국민들의 역량을 통합해내는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다음으로 계파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특정계파의 대통령을 뽑으면 우리는 또 대결과 갈등으로 점철된 5년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셋째, 무너진 사법정의를 되살리고 모든 종류의 특권에 단호히 맞설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돈이면 모든 것이 다 된다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국민이 가장 분노하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번 북한의 핵실험 사태에서 보듯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변화다. 한국의 지도자라면 반드시 평화와 통일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어야 한다.

2007년 10월 초 힐러리와의 경선에 나섰던 오바마는 전국 지지도에서 33% 뒤지는 결과를 받아들고 “내가 명예로운 2등을 하겠다고 경선에 참여한 것은 아니다”라고 중얼거렸다. 지금 우리에게 후보가 많은 것은 좋은 일이다. 아직은 누구에게나 당당히 후보가 될 수 있는 길도 열려 있다.

오바마는 ‘제퍼슨-잭슨’ 만찬행사에서의 명연설로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국민이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고, 듣고싶어 한다고 생각되는 얘기를 하는 것으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여야의 후보들도 이 대전환기의 위기 앞에서 여론조사가 결정한 입장으로는 결코 변화를 일으킬 수도, 승리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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