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흡연은 정치다. 적어도 북한의 절대 권력자 김정은에겐 그렇다. 골초로 알려진 그의 지독한 담배사랑에서 베일에 싸인 평양 권력 핵심부의 권력 지형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북한 관영매체의 영상을 통해 포착되는 그 모습은 매우 극단적이다.

김정은에게 맞담배는 최대의 환희와 격려다. 지난달 24일 핵심 측근으로 급부상한 이병철 노동당 군수공업담당 제1부부장과의 대면은 인상적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이날 동해상에서 실시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장면을 지켜봤다. 성공이었다. 그는 “이번 전략잠수함 탄도탄 수중 시험발사는 성공 중의 성공, 승리 중의 승리”라고 기뻐한 것으로 북한 조선중앙TV는 전했다.

이튿날 노동신문이 공개한 장면은 놀라웠다. 담배를 문채 만족해하는 김정은 바로 앞에 앉은 이병철의 손에도 담배가 들려있었다. 최고지도자 앞에서 간부가 담배를 물고 있는 장면이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파격이란 얘기다. 물론 이병철에게 김정은이 담배를 권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이병철은 담배를 손에 들거나 불만 붙인 상태지 실제 입에 물거나 연기를 내뿜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이번 SLBM의 발사 성공에 한껏 고무된 모습이었다. 북한 매체들에 따르면 김정은은 “미국이 아무리 부인해도 미 본토와 태평양 작전지대는 이제 우리 손아귀에 확실하게 쥐어져 있다”고 선언했다.

이런 이례적인 모습에서 SLBM으로 한껏 높아진 김정은의 미사일 능력에 대한 만족감이 읽힌다. 아마 이 당시 김정은의 머릿 속에는 보름 뒤 있을 5차 핵 실험의 일정표가 짜여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핵탄두 완성과 이를 날려보낼 투발 수단의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마침내 잡았다는 성취감이 맞담배로 나타났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그 대척점도 있다. 맞담배는커녕 조그마한 미동도 가차 없는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 김정은의 눈 밖에 난 노동당과 군부・내각의 간부는 가슴을 졸일 수 밖에 없다. 북한의 내각 부총리 김용진은 지난 7월 김정은이 주재한 회의에서 졸거나 안경을 닦았다는 이유로 처형됐다. 반당・반혁명과 종파주의자라는 어머어마한 대역죄를 뒤집어썼다. 2013년12월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면서 내세운 죄목이다. 평생 교육관료로 살아온 부총리에게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다.

지난해 5월 처형된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도 졸거나 김정은에게 말대꾸했다는 이유로 형장으로 끌려갔다. 담배가 없는 곳에선서슬 퍼런 김정은의 공포정치 그림자만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담배는 김정은의 카리스마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권력을 넘겨받은 2011년12월 김정은의 나이는 27살이었다. 후계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는 주민들 사이에 ‘청년대장’으로 불렸다. 건성건성 박수를 치거나 회의에서 졸았다는 이유로 처형이란 극형을 처하는 걸 두고 ‘나이 많고 경륜있는 간부들이 나를 깔볼 것’이란 콤플렉스가 작용한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이를 메우기 위한 방편 중 하나가 흡연이다.

김정은은 군부대나 공장・기업소 방문 때 연이어 담배를 피운다. 이 장면은 북한 관영매체에 빠짐없이 보도된다. 그의 곁에는 항상 크리스털 재떨이와 소형 탁자가 준비돼 있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지방 군부대나 공장을 갈 때도 늘 같은 모양의 탁자와 재떨이가 놓여있는 것으로 미뤄 볼 때 그의 보좌진이 챙겨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병원이나 육아원 같은 절대 금연구역에서까지 담배를 문 모습을 드러내 외부 세계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북한은 “우리 최고존엄(김정은을 지칭하는 표현)을 헐뜯지 마라”며 엄호하고 나섰다. 임신한 아내 이설주 옆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새로 만든 평양 지하철 전동차 시운전 행사 때 차량 내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지난 3월9일자 노동신문에는 북한이 소형화했다는 핵탄두 앞에서 오른쪽 손가락에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김정은의 사진이 실린 적도 있다. 이 정도면 말리기 힘든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지경이다.

북한은 흡연천국이다. 여전히 담배에 관대하다. 취재차 베이징에서 평양행 고려항공기를 타고 갈 때 기내 뒤편에 모여 담배를 피우던 당 간부들을 보고 놀란 적도 있다. 마치 시내버스나 기차 안에서도 담배를 버젓이 피워 물 수 있던 1960~70년대의 우리 사회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북한에서도 금연운동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김정일은 생전에 “담배는 심장을 겨눈 총과 같다”며 금연 교시를 내리기도 했다. 방북 때 만난 북측 기자나 간부들에게 “아니 다른 건 다 ‘장군님(김정일을 지칭) 교시’라며 100% 관철하자고 하면서 왜 담배는 끊지 않나. 안내 선생은 당성(黨性)이 너무 약한 거 아닌가”라며 슬쩍 몰아세우면 쩔쩔맨다. “아니 그게 말이야, 다른 건 다 되는데 이 담배만큼은…”이라며 꼬리를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북한의 금연 캠페인은 이어지고 있다. 조선중앙TV에는 세련된 모습의 젊은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아주 건전치 못하고 주위에 불쾌감을 주는 몰상식한 사람”이라고 비판하는 장면이 나온다. 북한 사람들의 담배 사랑은 통계치에서도 확인된다. 한때 성인 남성 흡연율이 54.7%(세계평균 48%)로 나타나기도 했다.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끽연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금연 캠페인.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인 높은 흡연율. 그리고 맞담배와 공포정치가 교차하는 모습에서 김정은 체제에서 살아가고 있는 북녘 동포들의 고단한 삶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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