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우리가 사랑하면/ 같은 길을 가는 거라고 믿었지/ 한 차에 타고 나란히/ 같은 전경을 바라보는 거라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봐/ 너는 네 길을 따라 흐르고/ 나는 내 길을 따라 흐른다/ 우연히 한 교차로에서 멈춰 서면// 서로 차창을 내리고/ -안녕, 오랜만이네/ 보고 싶었어/ 라고 말하는 것도 사랑인가 봐// 사랑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계속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렇게 쉽게 끊어지는 끈도 아니고// 이걸 알게 되기까지/ 왜 그리 오래 결렸을까/ 오래 고통스러웠지// , 신호가 바뀌었군/ 다음 만날 지점이 이 생이 아닐지라도/ 잘 가, 내 사랑/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

양애경 시인의 <교차로에서 잠깐 멈추다>일세. 좀 길지만 어렵지 않은 시여서 자네도 금방 이해가 되지? 교차로는 문자 그대로 둘 이상의 도로가 서로 교차하는 곳인 것도 알지? 차를 몰고 가다가 좋아하는 사람을 교차로에서 만나면 서로 차창을 내리고 안녕, 오랜만이네/ 보고 싶었어라고 만남 인사를 하고, 신호가 바뀌면 잘 가, 내 사랑/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라고 말하면서 헤어지는 것도 사랑의 한 형태라고 하는군. 아무리 한 걸 좋아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저런 사랑방식은 얼른 이해가 안 되는군. 난 이순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 사랑은 뜨거워야한다고 믿는 사람이니까.
 
물론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방법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 “사랑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계속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렇게 쉽게 끊어지는 끈도 아니고라는 시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네. 나도 이젠 무슨 일에서든 획일성은 싫어하니까. 사랑하는 방법도 다양해야 보기 좋지. 많은 선택지들 중에서 두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에 가장 잘 맞는 방법을 찾아내는 건 두 사람의 책임이고.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한 가지 방식으로만 사랑한다고 생각해 보게.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는가? 그래서 사랑은 이래야만 한다고 규정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일세. 내가 좋아하는 방법이 누구에게나 다 어울리는 것은 아니거든.
 
젊었을 땐 나도 사랑하면/ 같은 길을 가는 거라고 믿었지/ 한 차에 타고 나란히/ 같은 전경을 바라보는 거라고생각했지. 하지만 사랑의 내용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방법도 변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는 걸 나이 들면서 알게 되었네. 남녀가 서로 얼굴도 보기 힘들었던 조선시대와 실시간 화상 통화가 가능한 자금 여기의 사랑법이 같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아마 가까운 미래에는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사랑법들이 등장할 걸세. 남녀, 남남, 여여가 만나 서로 얼굴을 보고 나누는 사랑은 20세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유물이 되는 시대도 올 거야.
 
그러니 우리 세대에게는 낯선 방식이지만 시에서처럼 교차로 차안에서 인사만 나누고 헤어지는 젊은이들을 비웃을 필요는 없네. 저런 사랑법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성숙한 민주시민의 자세야. 다만 그것에 대한 가치판단은 각자의 자유이고. 자신이 싫으면 저렇게 안 하면 되는 거고. 설사 저런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한 관계 때문에 출산율이 떨어지고, 궁극적으로 나라를 망치는 일이라고 해도 법으로 금지해서는 안 되는 거지.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진실한 사람만 선택해 달라”“모든 문제에 불순세력들이 가담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철저히 가려내야 합니다”“새 정부의 개혁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비정상적인 관행을 정상화하는 것
 
누가 한 말인지 알지? 지난 몇 년 동안 대통령이 한 문제의 발언들이야. 옳고 그른 것을 누가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인지, 이성의 영역 밖에 있다고 믿는 혼을 누가 정상과 비정상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건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데 어떻게 진실한 사람만 선택하라는지, 참된 세력과 불순 세력을 구분하는 기준이 뭔지, 그분이 생각하는 정상은 어떤 상태를 뜻하는지, 난 도저히 알 수가 없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에서 오르내리고 있는 걸 보면 대다수 국민들도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네만
 
친구야. 내가 자네에게 자유민주주의가 먼저 발달한 유럽이나 미국이 우리보다 일찍 체제 비판에 더 자유롭고,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하는 다원화된 사회가 된 게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자유주의자들의 믿음 때문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나? 자유주의자들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본래 타고난 이기심과 인간이라는 한계로 인한 정보와 사고능력의 부족 등으로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고 믿지. 그래서 법이나 제도로 권력을 상호 견제하고 통제하는 삼권분립도 필요하고, 비판의 자유와 관용정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거야.
 
그러니 어디에서든 자신이 마치 전지전능한 신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독단적으로 판단하고 낙인찍는 사람은 이미 자유주의의 핵심 가치와 정신을 배신한 거야. 자신의 이념이 소중하면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가치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자인 거지. 입만 열면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면서 자기와 다른 생각을 한다고 불순세력’, 진실하지 못한 사람, 비정상 등으로 낙인을 찍으면 어떻게 하나? 우리 사회의 보수주의자들도 그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모든 구성원들의 서로 다른 종교, 사상, 가치, 취향 등을 인정하고 보호해야만 한다는 걸 빨리 깨달아야만 하는데
 
사람들 사이의 사랑에도 여러 방법이 있듯이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도 한 가지만이 아니라는 걸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는 얼마나 더 기다려야만 가능할까? 다양한 가치들이 울긋불긋 오색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사회에서 기분 좋게 살다가 가고 싶네. 천상병 시인처럼 나도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에 대한민국에서의 삶이 아름다웠더라고자신 있게 말하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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