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은진 기자] 프로야구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다. 올 시즌 누적 관중은 사상 최초로 8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가을잔치’가 임박하면서 포스트 시즌 진출 팀의 윤곽도 잡혔다. 두산 베어스는 남은 8경기 중 한 경기만 이겨도 정규리그 우승이 확정된다. 롯데 자이언츠는 현재 60승 72패로 8위다. 4위 엘지 트윈스와 6.5경기차, 5위 기아 타이거즈와는 4.5경기차다. 사실상 ‘가을야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야구는 때때로 매우 정치적이다. 탄탄한 지역기반을 가지고 있는 프로야구는 미묘한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고 하일성 야구 해설가는 “과거에 해태가 우승했을 때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이 됐었고 롯데가 우승했을 땐 김영삼 대통령이 또 대통령이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우연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었다.

야권의 강력한 대권주자로 꼽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잘 알려진 야구팬들이다. ‘야구의 도시’ 부산에서 경남고, 부산고를 나온 이들이 ‘거인(자이언츠)’을 응원한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안 전 대표는 “한동안 롯데가 계속 져서 지친 일도 있고 롯데가 성적이 나쁜 시즌에는 가슴이 아파 아예 경기를 안 본다”고 했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롯데가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자 야구는 온전히 ‘정치적 이벤트’로 활용됐다. 당시 문 전 대표가 “안 후보도 부산이고 하니,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 같이 시구라도 하자"고 제안한 걸 두고 ‘야권 단일화’를 점친 사람들이 많았다. 단일화 후 문 전 대표의 유세장에서는 롯데의 대표 응원가 ‘부산 갈매기’의 가사를 바꾼 ‘부산 문재인’이 울려 퍼졌다.

18대 대선에서 ‘야구 민심’은 새누리당에게도 고민거리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영남 지지자들은 삼성 라이온즈팬과 롯데 자이언츠팬으로 나뉘었다. 새누리당은 롯데를 향한 부산시민들의 응원 열기가 부산출신 후보의 지지로 이어질까 우려하기도 했다. 삼성과 롯데가 맞붙게 되면 TK와 PK민심이 충돌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박 대통령은 “삼성과 롯데, 어디를 응원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는 “정치인이 갈등을 일으켜선 안 된다”며 논란을 비켜나갔다.

‘야구 민심’이 1년 앞으로 다가온 19대 대선 판도를 흔들 가능성은 낮아졌다. 아직 대선 직전에 펼쳐지는 내년 시즌이 남아있지만 현재로선 그렇다. 당시에는 대선캠프 관계자들 사이에서 ‘롯데가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에게 지면 영남 30만표가 오락가락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오갔었다. 롯데가 일찌감치 가을야구에서 손을 떼면서 문 전 대표와 안 전 대표가 ‘큰 판’에서 해야 할 고민 하나가 줄어든 셈이다. 속은 쓰리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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