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공기 비상구 좌석.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함.< MBC 영상 캡처>
[시사위크=백승지 기자] 비상구석은 아무나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비상 시 승무원을 도와 다른 승객들의 탈출 및 안전조치를 보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앉는 승객은 ‘제2의 승무원’으로 불릴 만큼 책임감이 막중하다. 그러나 일부 저가항공사가 이 자리를 돈벌이에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비상구석은 승객들에게 '명당자리'

비상구석은 승객들에게 흔히 ‘명당자리’로 불린다. 일반 이코노미 좌석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기 때문이다. 통상 중형기는 일반석 의자간격이 72cm 정도로 다소 좁다. 비상구석은 2배 이상 넓어서 다리를 쭉 펼 수 있는 등 여행객에게 선호도가 높은 자리로 꼽힌다.

국내 저가항공사들은 승객 수요를 이유로 해당 자리에 대해 추가요금을 받는다. 2014년 제주항공을 시작으로 작년엔 진에어,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이 비상구석 가격 프리미엄 제도를 시행했다. 올해 운항을 시작한 에어서울도 합류해 비상구석 승객에게 ‘웃돈’을 받고 있다.

티웨이항공은 이달 5일 비상구 좌석 가격을 인상했다. 노선별로 국내선은 5000원에서 6000원으로, 국제선은 2만원에서 2만3000원으로 올렸다. 티웨이항공은 비상구 근처 자리를 ‘프리미엄 좌석’과 ‘세미프리미엄 좌석’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티웨이항공 관계자는 “비상구 좌석은 일반 좌석보다 공간이 여유로워 찾는 승객이 많은 편”이라며 “수요에 따른 가격 차등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다른 저가항공사도 비슷하다. 제주항공은 비상구 좌석 사전예약 시 국내선 1만원에서 국제선은 3만원까지 더 받는다. 이스타항공은 국내선 5000원부터 국제선 1만5000원까지 차이가 난다. 진에어는 사전예약 시 7000원의 추가요금을 받지만 현장발권 시에는 비상구석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에어서울의 비상구 좌석 가격은 1만5000원이다.

문제는 비상구석을 단순히 사업 수단으로만 여기는 태도다. 국토교통부 운항기술기준에 따르면 승객이 탈출에 필요한 역할을 못 한다고 판단되면 비상구 좌석을 배정해선 안 된다. 15살 미만의 어린이를 앉힐 수 없고, 항공기 비상구 개폐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신체가 건강해야 한다. 비상 시 승무원을 도와 다른 승객들의 탈출을 돕고 혼란을 제지하는 ‘안전요원’의 자리인 만큼 자격 요건이 까다롭다. 비상구 좌석을 ‘유료 서비스’로 전환한 항공사를 중심으로 안전불감증 논란이 확산되는 이유다.

◇ 비상구 사전예약제… 안전 수행능력 점검 ‘구멍’

비상구 좌석을 인터넷 사전예약 대상에 포함한 점도 논란을 부추긴다. 의무사항 수행 능력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좌석이 확정되기 때문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인터넷 사전예약 시에는 어린이, 할머니, 임산부 모두 비상구좌석을 배정받을 수 있다”며 “현장에서 직원의 확인을 거치긴 하지만 원천봉쇄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대형항공사의 조치와도 대비된다. 국내 대형항공사는 안전상 문제로 비상구 좌석에 사전예약을 받지 않고 있다. 운항 당일 공항에서 탑승객을 확인한 후 자리를 배정한다. 국내 저가항공 중에서는 에어부산이 유일하게 비상구석을 사전예약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현장 발권 카운터에서 직원이 직접 승객의 상태를 파악한 후 자리를 확정한다. 또 비상구석에 앉는다고 해서 추가요금을 부담시키지도 않는다.

저가항공사들은 현장 발권 시 승객 상태를 점검하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홈페이지 유의사항에 ‘만 15세 미만 또는 한국어나 영어로 의사소통이 불가한 손님은 탑승 수속 시 좌석이 재배정 될 수 있다’는 자격요건도 기재해 놓았다. 발권창구 직원이 승객의 비상절차 수행능력을 판단해 현장에서 환급조치 및 일반 좌석으로의 재배정을 진행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앞서 티웨이항공은 15살 미만의 어린이를 비상구열 좌석에 앉혔다가 다섯 차례나 적발된 바 있다. 2014년 제주에서 출발하는 항공기의 비상구 좌석에 15세 미만의 어린이를 태웠다가 국토부 특별안전점검에 적발된 것이다. 과징금 2500만원 처분을 받았다. 티웨이항공 관계자는 “당시 선보딩을 받아 단체수속을 진행하다보니 사전에 승객을 거르지 못했다”며 “이후 승무원이 사실을 파악해 좌석을 재배정 했다”고 해명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가격 정책은 항공사 자율이라 국토부에서 규제할 방안이 없다”며 “앞으로 항공사 특별안전점검 시 비상구석 승객에 대한 검토를 추가적으로 진행해 적합한 승객이 비상구 좌석에 앉을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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