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년 연속 대풍년이 이어지면서 쌀 생산량은 늘어났으나, 반대로 소비량은 감소세가 확연했다. <데이터=통계청>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대풍년에 농심이 타들어간다.” 추석 연휴 지역을 다녀온 충청지역 한 의원이 전한 민심이다. 4년 째 이어진 풍년에 쌀값이 폭락하고 있는 것이 원인이다. 들에는 황금빛 벌판이 펼쳐졌지만 아이러니하게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국내 쌀 생산량은 전체 소비량을 뛰어넘어 100% 자급이 가능한 상황이다. 문제는 갈수록 쌀 생산량은 늘어나는데 소비량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면, 쌀 생산량은 2012년 400만 톤을 저점으로 2013년 423만 톤, 2014년 424만 톤, 2015년 432만 톤을 기록했다. 올해는 작년 보다 더욱 생산량이 늘어날 것으로 당국은 관측하고 있다. 20kg 쌀 도매가격은 3만4000원으로 전년대비 15~20% 가까이 폭락했다.

◇ 4년 연속 대풍년, 줄어드는 소비량에 쌀값 대폭락

생산량은 늘어났는데 소비량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1인당 쌀소비량과 인구수로 추산했을 때, 2011년 356만 톤이었던 쌀 소비량은 2012년 349만 톤, 2013년 336만 톤, 2014년 325.5만 톤, 지난해 314만 톤으로 감소세가 확연했다. 인구수가 점차 줄어들면서 소비량은 더욱 줄어들 것이 예상된다. 농민들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농민들은 ‘쌀 시장 완전개방’의 위기를 느끼고 있다. WTO에 가입된 한국은 매년 쌀 의무수입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시장개방을 막아왔다. 그러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장) 가입을 앞두고 ‘쌀 시장 완전개방’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시 양허대상에서 쌀을 제외하겠다”고 밝혔으나, 농민들은 이를 믿지 않는 눈치다. 정치권 이슈로 떠오른 ‘백남기 농민사건’도 원인을 따지고 보면 ‘쌀 가격’과 무관치 않다. ‘소품종 다생산’에 맞춰져 있는 현 농업정책의 패러다임에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호남권의 한 의원은 “조선해운업이 위기라고 정부가 직접 나서서 추경도 하고 혈세를 쏟아 붓는데, 농민들은 희생만 하라는 것이냐는 반감이 크다. 이대로 손 놓고 있다가는 산업화 과정에서 억눌려온 농심이 폭발할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 농업정책 패러다임 전환 요구, 차기 대권 아젠다로 급부상

▲ 익산시농민회가 20일 오산면의 한 농지에서 정부의 무분별한 쌀 수입으로 쌀대란이 일어나고 있다며 논을 갈아 엎고 있다. <뉴시스>
농업정책에 대한 농민들의 원성이 높아지면서 내년 대선구도에도 영향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선향배의 중요한 키포인트로 여겨지는 호남과 충청지역의 쌀 생산량이 공교롭게도 가장 많기 때문이다. 2015년 기준 호남지역 쌀 생산량은 157만 톤이고, 충청지역 생산량은 105만 톤에 달했다. 국내 쌀의 51%가 이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는 셈이다.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은 호남을 지역기반으로 두고 있는 국민의당이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을 통해 쌀 가격안정 방안을 언급했다. 유성엽·황주홍 의원도 ▲직불금 제도 확대 ▲제3국 인도적 지원 등의 대책을 정부에 제안했다.

이어 국민의당 정책위원회는 23일 ‘식량 생산안정제 119’ 방안을 마련했다. 벼 외에 옥수수와 콩 같은 다른 작물을 재배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저소득 빈곤층에 양곡지원을 확대해 비축량을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양곡관리비 절감을 위해 보관·도정·운송 업무의 경쟁입찰 도입도 모색했다.

새누리당도 21일부터 연속으로 당정협의를 열고 쌀 가격 안정화 방안을 논의했다. 쌀 가공식품 확대, 대외 원조 증대, 저소득층 지원 등 비축량 소비대책과 함께 공공비축미 우선지급금을 높이는 방안이 제시됐다. 그러나 응급조치 역할에 그치고 있어,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구조적 해결책을 모색하고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결국 정권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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