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민성 기자]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을 갖고 싶었다.” 연쇄살인범 정두영도 애정에 목말랐던 사람이었다. 태어난 지 2년 만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고, 모친이 재혼하면서 삼촌집에 맡겨졌으나 결국 고아원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때문에 심신은 늘 고달팠다. 더욱이 왜소한 외모는 심한 콤플렉스가 됐다. 1986년 18세에 처음으로 살인을 저지른 동기도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정두영은 이 사건으로 11년간 복역했다. 출소 뒤에도 절도죄로 다시 붙잡혀 6개월을 복역하고 1999년 3월 출소했다. 비극의 서막은 그로부터 3개월 후에 시작됐다. 정두영은 그해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10여개월 동안 16번의 강도행각을 벌이며 이 과정에서 9명의 시민을 무참히 살해했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경찰들이 ‘과다 공격’이라고 부를 정도로 정두영은 범행에 잔인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어린 아이가 있는 여성은 살해하지 않았다. 2000년 3월 부산 서구 서대신동 고급 주택에서 한 여성이 “아이가 있다. 살려달라”고 호소하자 “아이 잘 키워. 신고하면 죽인다”면서 살려줬던 것. 이 여성의 진술은 향후 정두영을 검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몽타주가 작성돼 전국 경찰에 수배가 떨어졌다. 결국 충남 천안에서 인질강도를 저지르다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에 체포됐을 당시 정두영은 통장에 약 1억3000만원이 예금돼 있었다. 절도 및 강도로 모은 돈을 쓰지 않고 모았던 것. 그는 경찰조사에서 총 10억원을 모아 결혼을 하고, 아파트와 PC방을 마련할 계획이었다고 털어놨다. 법원은 2000년 7월 사형을 선고했다. 정두영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기각당했다. 상고를 포기한 그는 사형수로 대전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한편, 정두영은 최근 교도소 작업장 내에서 몰래 만든 높이 4m의 사다리를 이용해 탈옥을 시도하다 발각됐다. 담 3곳 가운데 2곳을 뛰어넘고 마지막 세 번째 담을 넘기 위해 시도하던 중 교도관들에게 붙잡혔다. 대전교도소 측은 28일 “(정두영이) 탈옥을 시도한 사실이 있는 게 맞다”면서도 “정확히 언제 시도했는지 등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