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막바지에 다다른 롯데 비리 수사가 ‘용두사미’에 그칠 처지에 놓였다. 신동빈 회장 구속으로 수사에 방점을 찍으려던 검찰의 계획이 엇나갔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그리고 검찰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된다.

◇ 신동빈 회장 구속영장 ‘기각’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최악의 위기를 면했다. 검찰의 구속영장청구가 법원에서 기각된 것이다. 지난 28일 신동빈 회장에 대한 구속실질심사를 진행한 법원은 29일 새벽 구속영장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범죄 혐의에 대한 법리상 다툼의 여지 등을 고려할 때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구속영장청구 결단을 내렸던 검찰은 당혹스런 모습이다. 앞서 검찰은 신동빈 회장을 소환조사한 뒤 총 17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검찰의 수사가 혐의를 입증하기에 부족하다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롯데 수사팀은 29일 공식입장을 통해 “수사를 통해 범죄사실이 충분히 입증되고, 드러난 횡령·배임액이 1700억여원, 총수 일가가 가로챈 이익이 1280억여원에 달할 정도로 사안이 중대하다”며 “피의자의 변명에만 기초해 영장을 기각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반면 신동빈 회장과 롯데그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29일 새벽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온 신동빈 회장은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우리 그룹은 여러 가지 미흡한 부분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책임지고 고치겠다. 좀 더 좋은 기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은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하루 빨리 경영활동을 정상화해 고객과 협력사, 임직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검찰 수사로 불가피하게 위축됐던 투자 등 중장기 과제들을 적극 해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대대적 압수수색, 자살, 구속실패

이로써 지난 6월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롯데 비리 수사는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커졌다. 검찰은 구속영장 재청구도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부담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재청구를 한다 해도 구속영장이 발부될지는 미지수다.

검찰은 지난 6월 10일과 14일, 두 차례에 걸쳐 롯데 본사와 주요 계열사,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및 신동빈 회장 자택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역대 그 어떤 재벌그룹 압수수색보다 강도가 높았다. 1톤 트럭 10대가 넘는 분량을 탈탈 털어갔다.

같은 달 말에는 정운호 네이처리버플릭 전 대표의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 사건과 관련해 롯데장학재단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졌고, 7월 1일에는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검찰에 소환됐다. 롯데그룹 오너일가가 검찰에 출석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뒤이어 7월 4일엔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며 7월 7일 신영자 이사장이 구속됐다. 이 역시 롯데그룹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신격호 회장이 가장 아끼는 자녀이자, 롯데그룹의 ‘대모’를 구속한 검찰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검찰은 신격호 회장과 신동빈 회장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며 향후 수사방향을 암시했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신영자 이사장, 고(故) 이인원 부회장, 신격호 회장, 신동주 전 부회장. <시사위크>
하지만 이후 검찰 수사는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검찰은 7월 중순부터 8월말까지 롯데그룹 본사 및 계열사 주요 임원들을 줄줄이 소환조사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기준 전 롯데물산 사장과 롯데케미칼 전 임원은 구속됐지만,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과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이때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롯데그룹 ‘2인자’로 불리던 이인원 부회장이 검찰에 출석키로 한 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인원 부회장은 유서를 통해 검찰 수사에 대한 억울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에 검찰은 “수사 범위와 방향엔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검찰의 ‘무리한 수사’라는 여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9월 들어서는 롯데그룹 오너일가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검찰은 지난 1일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을 소환조사했고, 8일엔 신격호 회장에 대한 방문조사를 실시했다. 20일엔 마침내 신동빈 회장이 검찰에 불려나갔다. 이러한 과정 속에 신격호 회장의 ‘셋째부인’으로 알려진 서미경 씨에 대한 여권 취소, 재산 압류 등의 조치도 이뤄졌다.

신동빈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청구는 검찰 수사의 마지막 방점이었다. 검찰로선 100일 넘게 이어진 수사의 ‘성과’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고, 가장 확실한 것은 신동빈 회장의 구속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검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대대적인 압수수색, 핵심 오너일가의 구속, 핵심 관계자의 자살 등 떠들썩했던 롯데 비리 수사는 이렇듯 ‘임원 3명 구속’으로 막을 내릴 가능성이 큰 상태다. 오너일가 중 신영자 이사장이 구속되긴 했지만, 이는 개인비리 차원에 가깝다.

◇ 치열한 법적 공방 예고

검찰이 신동빈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 카드를 꺼내지 않는다면, 신동빈 회장과 신격호 회장, 신동주 전 부회장, 서미경 씨 등 롯데그룹 오너일가는 불구속기소될 전망이다.

구속을 면한 만큼, 검찰과 롯데그룹 측의 법적 공방은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은 최고 수준의 변호인단을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 비리 사건의 경우 경영상의 판단이냐 횡령·배임이냐의 차이가 ‘한 끗’이다. 또 신동빈 회장의 경우, 일부 혐의에 대해선 아버지 시절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유무죄 판단에서부터 각각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까지 쉽지 않은 재판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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