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김재원 정무수석이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단식투쟁을 위로방문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30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단식농성이 5일 째를 맞았다. 복수의 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정현 대표는 현재 탈진상태로 건강이 크게 악화돼 구토증상까지 보이고 있다. 이에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의 위로방문도 고사했다.

이 대표의 단식이 길어지고 건강이 악화됨에 따라 정세균 국회의장의 입장이 곤혹스러워지고 있다. 이 대표의 단식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정세균 의장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 조롱→걱정, 시간 지날수록 힘 받는 단식투쟁

실제 이 대표가 정 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가던 초창기만 해도 조롱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단식 기간이 점차 길어짐에 따라 조롱의 목소리는 줄고 걱정의 목소리가 나왔다. “푸하하 코미디”라고 조롱했던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이 대표의 단식을 공격한 걸 거듭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단식은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해 목숨을 담보한 투쟁수단으로 받아들여진다. 단식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그 진정성이 높아지고, 여론의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다. 항일투쟁과 독재항거의 역사를 거치면서 형성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정치문화로 평가된다. 약자의 최종적 항쟁이라는 인식에 동정여론이 높아지고 지지층은 결집한다. 여기에는 ‘정’에 약한 우리 문화적 특성도 작용했다.

▲ 1983년 신군부의 가택연금에 반발해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당시 모습 <뉴시스>
우리 정치사에 획을 그었던 단식투쟁은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시기인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군부 정권에 의해 두 차례나 가택연금조치를 당했던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는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김 전 대통령의 장기단식으로 여론악화의 부담을 느낀 신군부는 결국 가택연금 조치를 해제했다.

3당 합당이 있었던 1990년에는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의 단식투쟁도 있었다. 노태우 정권의 3당 합당과 내각제 추진을 반대하고 지방자치제도 도입요구가 골자였다. 13일 간 계속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단식투쟁은 지자체 도입 약속을 받고 나서야 중단됐다. 2003년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도 단식투쟁으로 특검법 재의를 이끌어낸 바 있다.

◇ 단식투쟁 관건은 명분, 이번 주말이 승패 분수령

물론 단식투쟁이 특별한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 사례도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나 서청원 의원의 옥중단식이나, 천정배 의원의 한미 FTA 반대 단식투쟁이 대표적 사례다. 현 국회의장인 정세균 의장도 2009년 김형오 당시 의장의 ‘미디어법’ 상정에 반대해 단식투쟁을 했다가, 중단한 바 있다. 그러나 단식투쟁이 여론을 환기시켜 불가능해보였던 요구사항을 협상테이블로 올리는 효과는 분명했다.

관건은 누가 명분을 쥐느냐다. 이 대표의 직접적 언급은 없었지만, 현재 새누리당은 정 의장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으로 기류가 변하고 있다. ‘정세균 사퇴’에서 한 발 양보할 수 있다는 의사를 비친 셈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 의장의 ‘황제방미’ 의혹을 지피며 압박강도를 높이고 있다. 정 의장이 믹타(MIKTA) 회의 참석차 호주로 출국하는 10월 3일 까지가 단식투쟁 최대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정치권은 전망하고 있다.

현재까지 정 의장은 완고한 입장이다. 해임안 처리과정에 ‘법적으로 잘못한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황제방미’ 의혹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응수했다.

그러나 이날 자신의 SNS에 자장면을 먹는 모습을 올리면서 다시 논란에 올랐다. 새누리당은 “집권여당 대표가 5일째 단식투쟁을 하는데 자장면을 먹는 모습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지 이해가 안 간다”고 분개했다. 의장실 측은 “특별한 의도가 있던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수세에 몰리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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