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28일 서울 중구 대한항공 서소문 사옥 앞에서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윤리경영'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시스>
[시사위크=백승지 기자] 대한항공 조종사 이탈이 심화되고 있다. 노사 갈등이 근 1년째 지속되면서 새 일터를 찾아 떠나는 조종사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국내 타 항공사로 이직하고 있지만 중국 항공사 등 외항사로 가는 경우도 상당해 항공업계 인력유출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 지난달만 7명 사표… 사측 “협상 불가”

대한항공은 지난해에만 총 121명의 조종사를 잃었다.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사측과 갈등을 계속하던 조종사들이 이직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30여명의 조종사가 사표를 냈다. 줄 퇴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사측도 물러서지 않고 있어 조종사 이탈은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대한항공 노조 관계자는 “지난달에만 우리 조종사들 7명이 사표를 냈지만 회사에서는 아무런 액션도 없었다”며 “임금협상도 문제지만 우리가 수정안을 요구하며 협상 시도를 하는데도 무시하는 회사의 태도에 실망한 동료들이 많다”고 말했다.

대한항공과 조종사 노조의 갈등은 올해 초 임금인상 요구에서 촉발됐다. 여기에 노조집행부에 대한 인사누락 등 보복성 인사에 대한 의혹까지 더해졌다. 2번의 집회에도 파행이 계속되자 노조는 오너일가에 대한 각종 의혹을 제기하며 세무조사까지 주장했다.

대한항공 노조는 이번 달 내로 또 한 번의 집회를 예고하고 있으나 화해의 실마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대한항공은 올해 초 제시했던 1.9%의 임금 인상안을 유지하고 있다. 조종사 노조에서 요구하는 37%의 인상안과 차이가 너무 크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조종사만 있는 것도 아니고 형평성 문제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큰 인상폭을 줄 순 없다”며 “이번 세 번째 집회에도 대한항공은 1.9%의 인상폭을 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한 발자국 물러섰다. 노조 관계자는 “어제도 사측 입장을 고려해 협상안을 제시했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대한항공이 제시한 1.9%의 인상안에서 0.1%라도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협상안”이라고 말했다.

◇ 핵심 인재 중국으로… 인력누수 심각

대한항공은 조종사가 떠난 자리에 외국인 조종사를 투입해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외국인 조종사를 영입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종사를 데려와 운항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을 떠난 조종사들은 새 보금자리를 찾고 있다. 고액 연봉과 복지 수준을 제시하는 중국 항공사로의 이탈이 주를 이룬다. 한 대한항공 조종사는 “중국 항공사에서 연봉 3억원을 제시한 적도 있는데 안갈 수 있느냐”며 “사측이 전혀 아쉬울 것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는데 실망한 조종사들이 주로 외항사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국토교통위원회 주승용 국민의당 의원이 국내 항공 조종사 해외 유출 현황을 분석한 결과, 올해 6월 말까지 36명의 조종사가 해외로 유출됐다. 또 올해 안으로 최소 70명이 해외 진출 예정이며, 다수가 중국 항공사로 유출될 수 있다고 밝혔다.

주 의원은 “공군 조종사 1명을 양성하는데 최소 13년이 걸리고 150억원의 국가예산이 투입된다”며 “조종사들의 해외 유출을 막지 못하면 결국 국민 혈세로 양성한 핵심 인력을 잃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저가항공사로의 이직도 늘고 있다. 대형 항공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장직을 일찍 달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다. 노조 유무와 국내 가족과의 거리도 국내 저가항공사를 선호하는 이유로 꼽힌다. 한 조종사는 “외항사로 가면 연봉은 더 받지만 가족과 떨어져야하는 등 여러 어려움이 있어 망설여진다”고 밝혔다.

국내 저가항공사로서는 이러한 선택이 반갑다. 한 저가항공사 관계자는 “최근 LCC 업계는 항공기 도입과 신규 노선 취항, 운항 편수 확대 등에 따라 조종사가 모자란다”고 말했다. 최근 대부분의 국내 LCC는 조종사를 상시 채용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대한항공 조종사를 염두에 두고 채용하지는 않지만 최근 대한항공 에서 근무한 지원자가 많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노조는 이달 안으로 세 번째 집회를 준비 중이다. 6월 서울 서소문 대한항공 빌딩 앞 집회와 8월 종로구 서울지방국세청 앞에서 열린 ‘대한항공 세무조사 촉구대회’에 이은 세 번째 거리 집회다. 갈수록 격해지는 노사 갈등이 어떻게 귀결될지 관심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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