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8월 대형건설사 대표들이 공정경쟁과 준법경영 실천을 다짐하며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건설산업사회공헌재단 홈페이지>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사회공헌 자금으로 ‘2000억’을 모으겠다던 건설업계의 공약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 사정이 여의치 않다며 기부에 난색을 표하던 기업들 사이에서 100억대 기금 출연이 이뤄지고 있어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정감사를 의식한 면피성 행보라는 지적과, 기업들의 눈치 보기라는 이유를 들며 회의적인 입장이다.

◇ 돈 없다더니... 국정감사 다가오자 수십억 내놔

1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초 현대건설·포스코·대우건설 3개 건설사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 이들은 ‘건설산업사회공헌재단’ 기금에 쓰일 자금으로 약 150억원씩을 출연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3개 기업은 연내에 50억을 내놓고, 나머지 100억원은 이듬해 ‘정산’을 끝낸다는 방침이다.

삼성물산과 SK건설도 동참 의사를 나타냈다. 다만 구체적인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출연 규모는 엇비슷한 수준에서 이뤄질 것이란 예측이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건설업계에서 공익재단 설립이 추진된 건 지난해 8월이다. 정부가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건설사들의 담합 입찰 제한 조치를 해제한 것이 계기가 됐다. 대형사를 중심으로 그간 업계 고질병으로 지목된 담합을 근절하겠다는 자정 바람이 불었다.

이때 나온 공약이 건설산업사회공헌재단 설립이다. 재단 기금으로 쓰일 구체적인 금액도 정해졌다. 70여개 건설업체 대표들은 ‘건설업계 자정결의 및 사회공헌 사업 선포식’을 열고 “올해 2000억원 규모의 공익재단을 출범시켜 사회공헌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당초 약속과는 달리 사업 진행은 더디게 흘러갔다. 연말이 되도록 재단 설립은 깜깜 무소식이었다. 해를 넘긴 1월에서야 ‘건설산업사회공헌재단’ 법인이 설립됐다.

문제는 기금 조성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재단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돈이 모이지 않았다. 곳곳에서 “건설업체들이 광복절 특별 사면에 대해 '보은' 하려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게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재까지 재단에 모인 기금은 47억원이다. 이마저도 일부 금액이 사회 공헌 활동에 쓰이면서 줄어든 상황이다. 지난 7월 건설산업사회공헌재단은 ‘새뜰마을 사업’ 후원을 통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재단에 따르면 취약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이 사업에만 3억원이 사용된다. 이외에도 재단은 ▲공공시설 개선 ▲일자리창출 ▲재난·재해 긴급 복구 직원 ▲경찰관·소방관 등을 돕는 사회적 의인 지원 ▲건설문화 진흥 사업 등을 준비 중이다. 남은 돈으로는 턱 없이 모자란 수준이다.

재단 기금이 바닥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현대건설과 포스코, 대우건설이 긴급 수혈에 나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일부에서는 국정감사 시즌을 맞아 기업 대표가 국회에 불려나올 것을 우려한 미봉책에서 이뤄진 조치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 지난해 광복절 담합 특별 사면을 받은 업체들의 미르.K재단 출연기금 납부 현황. <김현미 의원실>

◇ 사회공헌재단에는 ‘인색’, 친정부 재단에는 ‘화끈’

정상적인 재단 운영까지는 아직 요원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목소리다.  나머지 10대 건설사 대부분이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반복할 뿐,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어서다. 국내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관련 부서에 문의를 해봐도 긍정적으로 검토를 하겠다는 이야기만 전달 받고 있다. 이는 나머지 기업들도 마찬가지인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공헌재단 기부에 뜸을 들이는 기업들 가운데, 일부는 미르·K스포츠 재단에 거액을 납부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현미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삼성물산, GS건설, 대림산업은 현 정부 최측근이 개입된 의혹이 일고 있는 이 재단에 28억8000만원을 기부했다. 반면 이들 3개 건설회사가 사회공헌재단에 납부한 금액은 16억에 머물고 있다.

김 의원은 “지난해 8.15 특별사면의 혜택을 본 업체들이 국민에게 약속했던 2000억원은 까마득히 잊은 채, 정체불명의 재단에는 착실히 기부를 해 왔다”면서 “정부는 스스로 이들 기업들을 회생시켜준 만큼, 이들이 약속했던 사회공헌기금이 제대로 집행될 수 있도록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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