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길주 편집인
[시사위크=윤길주 편집인]올해 국정감사를 뒤덮은 주인공이 있다. 최순실과 차은택, 미르·K스포츠재단이다. 국감이 시작되고서 끝날 때까지, 거의 모든 상임위에서 이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 때부터 정치권·언론계·재계에서 암암리에 유통됐다. 박 대통령을 언니라고 부른다는 그녀가 최고의 권력 실세라는 말이 유령처럼 떠돌았다. 어느 재벌 총수는 그녀의 줄을 잡아 사면됐다는 소문도 그럴듯하게 돌았다. 박 대통령에게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 육신이라면 최순실은 오장육부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일하다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구속 된 박관천 경정은 “우리나라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최순실의 전 남편 정윤회, 3위가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말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과장된 것이겠지만 그녀가 얼마나 힘이 센지 짐작 할 수 있게 한다.

음지에서 풍문으로 나돌던 ‘은밀한’ 이름이 국감을 앞두고 양지로 불쑥 튀어나왔다. 그것도 박 대통령의 임기가 후반기로 접어든 시점에 말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불리는, 그래서 그녀가 주인공이 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한류문화 확산을 목적으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만들어진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두 재단의 설립인가를 신청한지 몇 시간 만에 내준다. 재벌들은 며칠 만에 두 재단에 800억원 가까운 돈을 몰아준다. 최순실의 단골 마사지센터 원장이 K스포츠재단 이사장을 맡는다. 설립되자마자 두 재단은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 동행해 일감을 따낸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일인가. 우리나라 공무원들, 뭐 하나 신청하면 책임지지 않으려고 서류를 서랍에 넣어놓고 까맣게 잊어 먹는 게 다반사다. 반면 두 재단은 세종시에서 담당 공무원이 뛰어올라와 번갯불에 콩 튀어먹듯 인가를 내줬다. 우리 재벌들 기부에 인색한 거 세상이 다 안다. 취지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돈을 냈다고 하는데 소가 웃을 일이다. 경영자총연합회(경총) 회장까지 발(팔)을 비틀어 걷어갔다고 하지 않는가. 마사지센터 원장이 정부 차원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한 재단 이사장을 맡은 것은 또 얼마나 해괴한가.

모든 게 어떤 거대한 힘이 작용하지 않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힘의 원천으로 여러 군데 흔적을 남긴 최순실이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과 야당에서 집요하게 그녀를 물고 늘어지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요지부동이다. 새누리당은 최순실 의혹과 관련해 국감 증인 신청을 통째로 거부했다. 청와대는 찌라시 수준의 유언비어로 나라를 혼란스럽게 한다며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의혹은 뭉게구름처럼 피어나 비리의 냄새가 진동하는데 ‘정치공세’ ‘흑색선전’이라며 막무가내로 막아서고 있는 것이다.

이런 터에 최근 SNS에 ‘#그런데최순실은?’ 해시태그 운동이 퍼지고 있다. ‘#’해시태그(Hashtag)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에서 유행하고 있다. 해시 기호(#) 뒤에 특정 단어를 쓰면 그 단어에 대한 글이 줄줄이 나온다. 최순실도 마찬가지다.

이를 처음 제안한 이는 김형민 PD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김제동이든 백남기 농민 사인 공방이든 이정현 단식이든 지금 정부 여당의 모든 관심은 ‘최순실 가리기’가 아닐까 한다. 김제동이 거짓말을 했네 안 했네가 이슈가 되면서 교문위에서 최순실, 차은택을 증인으로 부르자는 걸 결사 거부한 사실은 묻히고 있다. 앞으로 모든 SNS 포스팅 끝에 ‘#그런데최순실은?’ 붙이기 운동을 제안한다.”

해시태그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는 까닭은 뭘까. 시민들은 진실이 묻히고 있다고 보고 어떤 식으로든 행동에 나서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데 소극적이던 사람들까지 관심을 갖는 걸 보면 단순히 진영논리에 의해 참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최순실 의혹이 SNS를 통해 빠르게 생산·유포되고 있는데도 주류 언론은 침묵하거나 눈을 감고 있다. 이에 시민들이 적극적인 참여와 공유를 통해 이슈가 사그라들지 않도록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시민들의 소리 없는 정치적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최순실 의혹을 덮으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게 세상 이치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해도 막후 실세의 권력형 비리라는 걸 직감할 수 있다. 물 타기, 의도적 회피, 검찰의 어물쩍 수사 등으로 가려질 일이 아니다. 그럴수록 정권에 부담이 되고 박 대통령의 레임덕은 가속될 것이다.

안보·경제 등 안팎에서 국가적 위기가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이런 판국에 비선 실세 문제로 국력을 소진한다면 우리의 앞날은 더욱 험난해진다. 털고 가야 한다. 그것은 박 대통령의 결단에 달려 있다.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무엇이 진실인지 가려낼 수 있도록 대통령이 물꼬를 터줘야 한다.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을 감옥까지 보내지 않았나. 억울한 점이 있더라도 의혹을 샅샅이 밝히는 게 나라를 위한 길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런데최순실은?’이 SNS를 타고 퍼지고 있다. 정권 담당자들은 시민의 분노를 가볍게 봐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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