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벤츠가 BMW를 제치고 연간판매량 1위 자리를 굳히고 있다. <시사위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1등만 기억하는 세상. 자조 섞인 말이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2등 앞에는 늘, 반드시 1등이 있다. 세상은 2등보단 1등을 더 많이 바라보고, 더 오래 기억한다. 그것이 1등이 있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고급차의 대명사 벤츠에게는 그 위상에 걸맞지 않는 수식어가 하나 있다. 바로 ‘만년 2등’이다. 수입차 연간판매량 순위에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 동안 6번이나 2위에 이름을 올렸다. 2위를 벗어났던 것은 2013년. 그마저도 폭스바겐에 밀려 3위로 내려앉은 것이었다.

같은 기간 1위 자리엔 늘 BMW가 있었다. BMW는 국내 수입차 시장의 전통적인 강자다. 1990년대 중반 일찌감치 한국 법인을 설립해 인프라를 구축했다. 수입차협회의 공식 집계가 이뤄진 2003년부터 줄곧 1~2위권을 지킨 BMW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BMW라서 ‘만년 2등’ 벤츠의 설움은 더 컸다. 2009년과 2010년, BMW와 벤츠의 연간판매량 차이는 각각 737대, 683대 밖에 나지 않았다.

가장 아쉬움이 컸던 것은 지난해다. 벤츠는 지난해 5월까지 누적판매량에서 BMW를 근소하게 앞섰다. 6월부터 BMW에게 밀리기 시작했지만, 10월에 재차 역전에 성공하며 사상 첫 판매 1위 등극 가능성을 높였다. 하지만 나머지 두 달 성적표에서 BMW를 넘지 못해 또 다시 2위에 머물러야 했다. 지난해 BMW와 벤츠의 연간판매량 차이는 883대였다.

▲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벤츠는 늘 2위였다. <시사위크>
◇ E클래스 투입으로 1위 굳히기 ‘순항’

올해는 다르다. 벤츠는 올해 9월까지 누적판매량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4~6월엔 BMW에게 월간판매 1위 자리를 내줬지만, 누적판매에서 만큼은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반기엔 BMW와의 격차를 더 벌리며 독주체제를 굳히고 있는 모습이다.

9월까지 벤츠의 누적판매량은 3만8594대. BMW는 3만1870대다. 6724대 차이다. 8월과 9월 판매량만 놓고 봐도 BMW가 3047대와 3031대, 벤츠는 4835대와 5087대로 차이가 크다. 지난해처럼 BMW의 ‘막판 재역전’이 벌어질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졌다.

▲ 벤츠는 올해 9월까지 BMW를 큰 차이로 제치며 판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사위크>
특히 벤츠는 하반기 ‘새로운 무기’를 앞세워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7년 만에 풀체인지 모델을 선보인 신형 E클래스가 시장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신형 E클래스는 9월 베스트셀링 모델 1위(E220d)와 2위(E300)를 모두 휩쓸었다.

반면 BMW는 최근 7세대 5시리즈 모델을 공개하며 숨고르기에 나선 상태다. 7세대 5시리즈는 내년 봄에 국내 출시 예정이다.

벤츠가 마지막 분기까지 기세를 몰아 연간판매량 1위를 차지한다면 이는 새로운 역사가 된다. 우선 벤츠는 2003년 한국 법인을 설립한 이후 연간판매량 1위를 차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늘 BMW보다 한걸음 뒤쳐져있었다. 연간판매량 첫 1위와 BMW 뛰어넘기를 동시에 이룰 기회다.

또 한 가지 관심은 연간 판매량 ‘5만대’를 넘을지 여부다. 벤츠는 현재 5만대까지 1만1406대를 남겨놓고 있다. 남은 기간 동안 한 달 평균 3800여대 이상만 판매하면, 5만대 고지를 점령하게 된다. 이는 수입차업계 역사상 최초다.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현재까지 벤츠와 BMW의 판매량 차이 및 남은 기간을 고려하면 뒤집힐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며 “BMW가 신형 5시리즈를 투입하는 내년에는 더 치열한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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