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실업률은 역대 최대치를 찍었고,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여겨지는 가계부채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데이터=한국은행>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한국경제가 방향타를 잃었다. 민심이 느끼는 ‘체감경기’야 항상 어렵다고 하지만, 최근 국내 경제는 그 희망마저 보이지 않는다는 게 큰 문제다. 장기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경제의 큰 방향과 희망을 제시해야할 정치권은 권력투쟁과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어 미래를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최근 발표되는 국내 경기지표를 살펴보면, 거의 모든 부문에서 비명을 지르는 상황이다.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p씩 하락해 잠재성장률 2%대 시대에 접어들었다.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는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2.8%로 예상했으나, 다수의 전문가들은 달성이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성장률 하락이 단기적 현상이 아닌, 장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우려다.

부문별 지표도 좋지 않다. 먼저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여겨지는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 9월 기획재정부는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고 발표했으나,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8월 가계부채는 8조7000억원으로 2008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9월 가계부채 증가분은 6조1000억원으로 8월에 비해 감소한 것은 사실이나, 이 자체도 엄청난 증가다.

청년실업률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9월 기준 청년실업률은 9.4%로 2000년 이후 9월 실업률로는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실업률도 3.6%로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고용절벽’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다.

▲ 경제상황이 심각함에도 정치권은 내년 대선에 맞춰 정치투쟁에 몰두하고 있어 더욱 문제라는 지적이다. 국정감사 NGO모니터단은 이번 국정감사를 두고 사상최초로 F학점을 메겼다. <뉴시스>
고용률을 제고할 기업들의 상황도 좋지 않다. 국가기간산업으로 육성했던 철강과 해운, 조선업이 직격탄을 맞은 상태다.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의 단종사태로 제조업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국내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지만, 경제는 심리라는 측면에서 위축될 수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앞으로의 대외수출여건도 그리 밝지만은 않다. 올해 연말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미국은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한미FTA를 포함한 기존의 미국 경제정책이 오히려 미국인의 고용률을 떨어뜨렸다는 프레임으로 유권자를 공략하고 있다. 트럼프의 당선 여부를 떠나 미국의 대외무역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의 최대 무역국인 중국과는 사드배치 문제가 걸림돌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경제보복은 없을 것”이라고 관측했으나, 중국이 외교적 마찰이 있던 상대국에게 ‘비관세 장벽’을 이용한 경제보복을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내외적인 어려움이 예상됨에도, 우리 정치권이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다. 조선해운 구조조정부터 원전안전,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 복지 등 민생현안이 첩첩히 쌓여있었으나 정쟁이슈만 부각됐다. 새누리당은 처음부터 의지가 없었고, 야권은 전 상임위에 걸쳐 미르·K스포츠 재단에 대한 의혹제기만 했다는 평가다.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은 사상 최초로 ‘F학점’을 메겼다.

국정감사가 끝나자 이번에는 ‘색깔론’이 등장했다. 새누리당이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의 회고록 내용을 문제 삼고 나섰다. “역사를 바로잡는 차원”이라고 새누리당은 주장하고 있으나,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를 흔들려는 목적임은 분명하다. 경제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는데, 여야 정치권 모두 권력쟁탈에 사활을 걸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일부 대권주자들은 경제를 말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국민성장’을 이야기했고, 김종인 전 대표는 ‘경제민주화’를, 유승민 의원의 ‘사회적 경제’와 안철수 전 대표의 ‘공정성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양극화 해소를 위한 경제구조조정이나 복지, 기업규제에 대한 담론만 형성될 뿐 정작 미래 먹거리에 대한 구체적 비전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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