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의 수사가 범죄자를 단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정권에 부담스러운 답변을 피할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 부회장은 “지금은 검찰이 수사 중이라 답변하기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미르·K스포츠 재단 모금과정 등 예민한 질문에는 으레 같은 답변이 나왔다.

그러자 박영선 의원은 “아 그러셨구나. 이렇게 대답하시라고 검찰이 며칠 전부터 미르재단과 전경련 수사에 들어갔군요”라고 말했다. 야당의원석과 방청석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어떠한 공격도 막아내는 ‘이지스 방패’의 등장이라고. ‘검찰의 수사’가 범죄를 단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정치적으로 곤란한 답변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순간이었다.

‘검찰의 수사’가 웃음거리가 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석수 특별감찰관 의혹을 묻는 대정부질문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졌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검찰이 수사 중이니 지켜봐 달라”고 말하며 답변을 수차례 피해갔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일체의 다른 고려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특별수사팀이 공정하게 수사 중”이라는 말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반복했다. 질의 중간 조응천 의원은 “킥” 소리를 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뻔히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자신이 한 때 속했던 조직을 비웃은 것이다.

실제 검찰의 수사를 통해 이번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믿는 정치인이나 언론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관심이 시들해질 시기를 노려 ‘증거불충분’ 결정이 날 것이라고 보는 게 다수다. ‘팩트’가 없기 때문에 말을 안 할 뿐이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시기에는 ‘정권의 방패’로, 시간이 지나면 ‘면죄부’나 주는 기관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작금의 검찰이다.

검사는 법조인을 꿈꾸는 법대생들에게는 일종의 ‘로망’이다. 거대한 권력에 맞서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검사의 이미지는 고단한 수험생활의 힘이 됐다. 현 검찰조직의 드높은 자존심과 자부심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앞에서도 눈을 치켜뜨고 “외압 의심이 있다”며 바락바락 대들 수 있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랬던 검찰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스스로 통렬한 반성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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