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소방 “최저가 입찰시 무조건 수리온으로 결정, 안돼”
애초부터 수리온 원천배제 목적으로 입찰규격 설정
국토부 “카테고리A 도심지역 비행위한 필수요건 아니다”

▲ 서울소방이 최저가 입찰을 진행할 경우 수리온이 낙찰될 가능성이 높아 입찰규격 자체를 낮추지 못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무관함.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소방헬기 도입을 두고 특혜 논란에 휩싸인 서울소방이 애초부터 국산헬기 입찰을 원천 배제시키기 위해 조건(규격)을 높였다는 증언이 나와 관심이 집중된다. 최저입찰가가 적용될 경우 국내업체가 유리할 것을 고려해 내자구매가 아닌, 외자조달 방식으로 변경하고 입찰규격을 높게 선정했다는 것이다. ‘특정헬기 지명입찰’ 의혹에 더욱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 서울소방 “250억짜리가 340억짜리와 같은가?!”

그동안 서울소방재난본부 119특수구조단(이하 서울소방)은 특정헬기(AW-189) 지명입찰 의혹에 대해 “서울시민과 헬기 조종사들의 안전을 위해 국제 기준에 맞는 인증을 요구한 것”고 주장해왔다. 특정헬기를 위한 규격(입찰기준)이 아니며 보다 안전성이 검증된 헬기를 구매하려는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시사위크> 취재결과, 서울소방은 애초부터 수리온이 입찰에 참여시킬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서울소방)는 최저가 입찰 방식이다. 만약 입찰 규격을 낮추면 무조건 수리온이 (낙찰)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국산(수리온)은 255억짜리 헬기고 외산헬기는 340억짜리다. 헬기 밸류가 다르지 않느냐.”

지난 2일 서울소방 고위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이 같이 밝혔다. 최저가입찰제에 따라 수리온이 선정될 것을 우려해 입찰규격을 낮출 수 없다는 설명이다.

서울소방에 따르면 국내에서 헬기를 구매하는 방식은 △협상에 의한 계약방식과 △규격가격분리 최저가입찰제 두 가지다. 국가기관에서 주로 사용하는 ‘협상에 의한 계약방식’은 기술평가점수 70점, 가격점수 30점으로 배점된다. 일단 규격을 오픈해 기술평가를 하고, 점수를 합산해 업체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반면 소방항공대에서 헬기를 구매하는 방식은 ‘규격가격분리 최저가 입찰제’다. 사전규격, 이른바 입찰조건을 통과하면 최저가를 써낸 헬기업체를 대상으로 계약을 맺는 식이다.

서울소방 측은 “국회에서는 규격을 열어놓고 기술평가를 해서 국산이 성능이 괜찮으면 사면되지 않느냐 하는데, 문제는 국산은 255억짜리 헬기고 외산헬기는 340짜리 헬기”라며 “규격을 동일하게 해놓으면 최저가 입찰이므로 당연히 국산헬기가 자동적으로 돼버리는 상황이다. 수리온 측은 입찰규격을 낮춰달라 요구하는데, (규격을) 풀어주면 최저가기 때문에 그냥 수리온으로 가는 거다. (수리온과 AW) 헬기 가격 자체가 레벨이 다르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어 “사업발주 당시 협상에 의한 계약방식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규격가격분리 최저가 입찰제로 갈 것이냐를 고민했다”며 “하지만 ‘협상에 의한 계약방식’으로 진행할 경우 기술평가 가중치에 대한 공정성에 시비가 많아 별도의 연구용역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도항공 특성상 그런 정교한 기술평가를 하기가 굉장히 어렵고 (연구용역 역시)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최소한(최저)의 규격을 통과한 업체를 대상으로 최저가를 제시한 업체가 낙찰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소방 측은 그러면서 “우리는 단순하게 조종사들이 원하는 안전한 헬기를 사고 싶은 것”이라며 “법과 절차를 따랐고, 수차례에 걸쳐 심의회를 진행해 (입찰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를 종합하면 서울소방이 △카테고리 A △항속거리 800km 이상 △18인석 이상 등 높은 입찰규격을 설정한 데는 애초부터 수리온 참여를 사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 한국한공우주산업이 1조3000억원을 들여 개발한 국산 헬기 '수리온'. 군용으로 제작됐다는 이유로 서울소방 헬기도입 사업 입찰에 참여조차 하지 못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 제공>
◇ 서울 비행 특성상 카테고리 A… 국토부 “그런 규정 없다”

조달청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내자구매가 아닌, 외자조달(자체구매)을 밀어붙인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본지가 입수한 ‘소방헬기 자체구매(외자) 추진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소방은 자체 외자구매의 필요성으로 “안정성이 확보된 헬기구매”라고 적시했다. 그러면서 내자구매시 예상되는 문제점으로 “외국업체의 입찰참가가 제한될 수 있어 공정한 경쟁입찰을 저해한다”고 명시했다.

문제는 서울소방이 수리온 참여를 배제시킬 목적으로 설정한 입찰규격이 특정헬기업체에 상당히 유리하다는 데 있다. 실제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입찰에는 AW사만 단독으로 참여하며 유찰됐다. 서울소방이 내건 기준에 부합하는 헬기는 AW-189가 사실상 유일하기 때문이다. 에어버스도 관심을 보였지만, 해당 업체는 첫 번째 입찰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서울소방이 강조한 ‘공정한 경쟁입찰’에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앞서 본지는 헬기 입찰규격을 결정하고 심의하는 과정에 AW사와 무관치 않은 인사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심의에 참여한 의원 중 일부는 현재 AW사의 기종을 도입해 운영하는 기관의 소속 관계자이거나, AW사 헬기를 조종하는 조종사 등이다. 특정 업체 쪽으로 유리한 의견이 개진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무엇보다 서울시가 ‘안전한 헬기’의 기본조건이라며 입찰규격으로 내세운 ‘카테고리 A’ 인증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서울소방은 장정숙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 “수리온은 국토부의 특별감항증명을 받으면 제한적인 소방임무를 수행하는데 지장이 없다고 하나, 서울은 초고층건물과 인구 밀집지역으로 비행환경이 달라 소방헬기 임무수행이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내 9개 소방항공대에서 5개 기종(12대)이 국토교통부의 특별감항증명을 받고 소방·구조·응급환자수송 등의 임무를 수행중이다. 서울소방 주장대로라면 이들 헬기는 안전하지 않은 헬기로, 해당 조종사들 역시 위험한 헬기를 운행중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국토부가 장정숙 국민의당 의원 측에 보낸 답변서에는 조금 다른 내용이 담겨있다.

국토부는 ‘카테고리A 인증이 도심지역 비행을 위한 필수조건인지’를 묻는 의원실의 질문에 “항공기 기술기준 part 29에서 도심지역 비행을 위한 필수요건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또, “헬기는 이륙 또는 비행 중 엔진 부작동으로 운항에 지장이 있을 경우 TA급(카테고리 A), TB급(카테고리 B) 구분없이 가장 가까운 곳에 안전하게 착륙하는 것이 기본”이라며 “소방헬기는 항공법 시행규칙 제20조(특별감항증명 대상)에 따라 재난·재해 등으로 인한 수색구조, 산불의 진화·예방 및 응급환자의 수송 등 구조·구급활동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지난 9월 21일 진행된 안행위 국정감사에서 “(이용호)의원님 말씀하시는 헬기들이 다 포함될 수 있는 조건으로 해서 해당 건을 다시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