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일 운행 도중 불길에 휩싸인 A씨의 BMW 차량. <시사위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난달 2일, A(35) 씨는 아찔한 사고를 당했다. 저녁 9시경 BMW 차량을 운전하며 서울 강동구 성내동의 한 도로를 지나던 중 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함께 조수석 앞 대쉬보드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놀란 A씨는 즉시 차를 길가에 세우고 내려 조수석으로 향했다. 글러브박스를 열자 전선에서 불똥이 떨어지고 있었고, 불길은 삽시간에 번지기 시작했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A씨의 BMW 차량 앞쪽은 완전히 불길에 휩싸였다. 근처에 있던 다른 차량 외부와 건물 간판이 녹아내릴 정도로 거센 불길이었다.

이 화재로 BMW 차량은 대부분 전소됐다. 조금만 더 늦게 차에서 내렸더라면 자칫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사고였다.

이후 A씨는 BMW 측 태도로 인해 분노를 금치 못했다. A씨에 따르면, 소방당국의 화재조사가 끝난 뒤 BMW 측 관계자는 “BMW 정품 블랙박스가 아닌 사제 블랙박스를 사용했으니 우리 책임은 없다. 무조건 소비자 과실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차를 애용해주시니 도의적 차원에서 신차를 구입하면 15% 할인해주고, 중고차를 구입하면 15% 정도 금전적 지원을 해주겠다. 지원을 해주는 이유는 도의적 차원이다”라고 했다.

A씨는 “차량을 구입할 당시엔 BMW 정품 블랙박스가 없었다. 그러나 BMW 관계자는 2014년에 정품 블랙박스가 출시됐다며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화재가 난 차량은 BMW 5시리즈 GT 2013년식이다. 블랙박스는 차량 구입(리스) 당시 BMW 딜러가 제공한 것이었다. 또한 A씨는 해당 차량의 정비를 늘 공식서비스센터에서 받았다고 밝혔다.

▲ 해당 차량은 뒷부분 등 일부분을 제외하고 전소됐다. <시사위크>
◇ BMW “블랙박스가 화재 원인이라고 확신”

문제는 화재 원인이 블랙박스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고 직후 강동소방서는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해 조사에 착수했다. 2~3주에 걸친 조사 끝에 나온 52페이지 분량의 조사서에는 화재 발생 및 진화 당시 상황과 화재 원인 조사 결과가 자세히 기록돼있다.

먼저 발화지점이다. 강동소방서는 A씨와 목격자의 진술, 차량 연소 상황 분석 등을 바탕으로 조수석 앞 글러브박스 뒤쪽을 발화지점으로 판정했다. 글러브박스 뒤쪽에서 처음 발생한 화재가 주변 전기배선 및 글러브박스로 옮겨 붙은 뒤 차량 앞부분 전체로 번졌다는 설명이다.

다음은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화재원인이다. 결론부터 살펴보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서는 “화재는 전기적인 현상에 의해 발화된 것으로 판단되나, 심한 소실로 인해 발화 가능한 전기적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조사는 ‘전기적 요인’을 밝히는데 집중됐고, 그중에서도 블랙박스 관련 부품에 의한 발화 가능성이 면밀히 검토됐다. 하지만 블랙박스를 화재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는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조사서에 따르면, 블랙박스용 보조배터리 내부 및 단자에서는 발화 흔적이 식별되지 않았고, 외부 화염에 의해 훼손된 모습이었다. 또 보조배터리 주변에서 수거된 끊어진 배선에 남은 단락흔도 외부 화염에 의해 형성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됐다. 조사서는 “블랙박스용 보조배터리 및 배선 등에서 출화 가능한 명확한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명시했다.

조사를 담당한 소방서 관계자는 “화재 원인이 전기적 요인인 것은 맞지만, 정확하게 어떤 부분에서 화재가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다”며 “블랙박스가 화재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고,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자동차 화재는 소실이 심할 수밖에 없어 정확한 원인을 밝히기 힘든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 완전히 불에 탄 운전석과 조수석의 모습. 소방당국은 심한 소실로 인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시사위크>
이에 대해 BMW코리아 측은 “우리쪽 전문가들이 차량을 조사한 결과 블랙박스에 의한 화재가 명확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소방당국에서는 통상 100% 확실하지 않으면 원인 미상으로 결론을 내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2013년이 BMW 정품 블랙박스 출시 전이었다 하더라도 보상은 어렵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보상해야할 범위가 너무 넓어진다”며 “정품 블랙박스를 공식서비스센터를 통해 설치한 경우라면 매뉴얼에 따라 보상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이런 경우 보상을 받기 위해선 소비자가 정확한 화재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하고, 관련기관에 의뢰하는 등의 방법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보상을 받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BMW의 이러한 안일한 태도를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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