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 우상호(왼쪽),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세균 의장과 회동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야당이 ‘진퇴양난’에 빠진 모양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에게 내각 통할권을 맡기겠다고 제안하면서 ‘최순실 정국’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야당은 박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새 총리 후보군을 향한 여론의 관심은 벌써부터 뜨겁다. ‘최순실 게이트’는 검찰 수사에 맡기고 국정 수습 수순으로 돌아서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언제까지 ‘버티기’로만 일관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8일 오전 국회를 찾아 정 의장과 회담을 가졌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국정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큰 책무라고 생각해 이렇게 의장을 만나러 왔다”며 “국회가 총리를 추천해 준다면 총리로 임명해서 내각을 통할하도록 하겠다”고 제안했다. 김병준 총리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라는 야당의 요구를 일부분 들어준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지도부는 이날 오후 정 의장과의 회동을 가졌지만 여야 합의 총리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기동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회가 지명한 총리에게 조각권과 실제 국정운영권을 주는 것인지, 청와대는 이에 대해 일절 간섭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인지 (박 대통령의 제안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고 의장에게 말했고 (의장이) 추가로 확인해주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국회 추천총리가 어떤 권한을 가지게 되는지 명확한 표현이 있어야 ‘차기 총리’ 논의를 진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의장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의 말씀은 아직도 국민의 성난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고, 국회에 (총리 문제를) 던져놓고 국회에서 합의하라고 하는 ‘시간벌기’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면서 “대통령 자신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도 없다. 대통령은 대통령이고 총리는 총리”라고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사태 수습 논의에 앞서 대통령의 탈당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국민의당은 이에 대한 박 대통령의 ‘결단’도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 여론은 벌써부터 ‘차기 총리’ 물색 중… 야권 ‘어쩌나’

하지만 차기 총리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뜨겁다. 박 대통령의 제안 직후 주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는 손학규·유시민 등 총리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는 이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김병준 카드’를 사실상 철회하면서 다음 총리 물색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판단이 설득력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

차기 총리로는 여야를 아우를 수 있는 ‘김병준 형(形)’ 인물이 주로 거론된다. 차기 총리는 보수정부의 총리로서 거대 야당과 원활한 소통을 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김병준 총리 후보자는 참여정부에서 정책실장을 지냈지만 보수적 색채도 함께 띠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여소야대 국회의 특성상 야권 성향에 가까운 인물이어야 국회 인준을 받기도 수월하다.

때문에 보수·진보진영에 동시에 몸을 담았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상대책위 대표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우선순위로 꼽힌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를 넘나들었던 한완상 전 부총리, 이명박 정부에서 총리를 지냈고 호남 출신인 김황식 전 총리도 하마평에 오른다. 이밖에도 진념 전 경제부총리,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와 함께 ‘동교동계’ 원로인 권노갑 국민의당 상임고문도 거론된다. 네티즌들은 참여정부 인사인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을 새 총리로 추대하자는 추천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차기 총리에 대한 관심은 야당에 딜레마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정국 수습을 외면하고 ‘발목’만 잡는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은 오는 12일 있을 ‘박근혜 하야촉구 촛불집회’에 전부 참석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도 이번 주말을 분수령으로 보고 그전에 정국 수습을 위한 야당의 협조를 최대한 구한다는 계획이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우리는 덫에 빠졌다”고 평가했다. 박 원내대표는 “우리는 이미 대통령이 던진 말의 함정에 빠져들었다. 언론과 국민은 여야가 총리 누구를 추천하느냐로 (관심이) 간다”면서 “대통령이 (국회 추천총리 제안을) 탁 던져놓고, 나중에 (여야가) 합의를 안 하면 ‘저것 봐라, 국회에서 총리를 추천하라고 해도 못하지 않느냐’ 이럴 것 아니냐”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지금은 그렇게 공학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야3당 지도부는 9일 오전 대표 회동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대응을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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